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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중 이정화 Jan 28. 2020

춤추라,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것처럼.

정 중 동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서예는 종이 위의 무용이고, 악보 없는 음악이다.



큰 작품을 하시는 날,

나는 서동書童이 되어서 글씨를 아주 가까이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자 붓의 스텝이 눈에 띄었다.     


‘어? 이 곳에서 ‘하나’,

그 아래로 살포시 이어져 ‘두울-’ 띄고 ‘셋’.’


종이 위에 표현된 붓 자국은 마치 땅의 기운을 받기 위해 깊게 즈려밟는 한국무용의 디딤을 닮았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친구가 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전의 호흡을 놓치지 않도록 유지하며 정중동靜中動을 지키는 것이라 하였다. ‘춤의 결은 곧 마음의 결’이라고.     


그 춤의 결을 붓으로 옮겨 가만히 바라보니,

그녀가 사실은 저 모습을 보고 이야기 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춤과 닮아 있다.


단전의 호흡을 지키기라도 하듯 바르게 서서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격동적으로.

응축된 마음을 여한 없이 풀어헤치며

지워지지 않는 자신의 지난 흔적을 부끄럼 없이 기록하려 하고 있다.     


온 생生을 바치며 돌이킬 수 없는 춤을

오로지 마음결에 맡기며 춘다.

땅의 기운을 받아 하늘로 날아갈 수 있도록,


까만 먹빛이 눈부시게 빛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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