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히, 더 과감히.
실수로 벼루에 물을 쏟다시피 부어버렸다.
고작 내 손에는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의 먹 밖에 없는데…….
‘투명한 이 물이 먹물이 될 수 있을까?’
‘아..안될 것 같은데, 물을 조금 빼야 할까?’
‘이 먹은 작으니까 더 큰 걸 찾아봐야 하나?’
‘갈다가 먹이 모자라면, 지난 시간이 아까워서 어쩌지?’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는 생각의 꼬리를 잘라 내고,
손을 움직여 먹을 갈았다.
그러자,
걱정과는 달리 먹빛도 적당한 아름다움을 내뿜었고,
먹 또한 많이 남았다.
아르헨티나의 이구아수 폭포를 보러 갔을 때도 그랬다.
나이아가라의 몇 배나 되는 폭포가
몇 미터 앞에 있다고 했지만,
한참을 걸어가도 정글 같은 분위기에 물이라고는
온통 미역국을 닮은 잔잔한 개울물뿐이었다.
걷고, 걷고 또 걸어도 나오지 않는 폭포 생각에
‘이 길이 맞는 걸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면 어쩌지?’ 하며
의심만 가득했다.
하지만 작은 숲을 지나니 웅장한 폭포가 쏟아졌다.
그 모습은 마치
녹차케이크 위에 생크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작은 개울물들이 없었다면, 거대한 폭포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의심이 증폭되어 더 이상 가지 않고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섰다면, 이구아수 폭포가 녹차 생크림 케이크를 닮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에게 쉼을 주지 않고
무작정 저질러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어떠한 생각은 너무 깊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이 되어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때도 있다.
의심에게만큼은 희망을 떠먹여 주지 않기를,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더라도
일단 한 발 더 내디뎌 보기를.
또다시 벼루에 물이 가득 차 있는 상황이 오더라도
차근히 먹을 갈아 볼 용기가 생겼다.
서예인 / 인중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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