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노애락애오욕
아, 술이 달다.
작업실을 접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작업실이었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래도 1년 지냈다고 치워야 할 짐들이 산더미로 쌓였다.
조카의 짐을 치워주시겠다고 먼 곳에서 막내 외삼촌이 올라오셨다.
함께 짐을 정리하고 순댓국을 먹으러 갔는데,
그때 삼촌이 따라주신 소주 한 잔이 참 달았다.
아마 함께 건네주신 그 말씀이 더 달콤했기 때문일 것.
“괜찮아.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는 거야.
가다가 실수로 진흙에 발을 담가도
뒤에 아직 버티고 있는 다리의 힘으로
건너갈 수 있잖아.
뛰어가면 용케 진흙을 건넌다 할지라도
한번 넘어지면 말짱 꽝이니까.
천천히 가자, 천천히. 꾸준하게!
내가 발 닿고 있는 지금과, 손 닿고 싶은 내일 사이에서
하루는 발을 보고, 하루는 손끝을 움직이며 지냈다.
다리는 퉁퉁 부어서 쓰러지는 것 같다가도,
손끝은 간질거리면서 나를 다시 일으키고.
그래도 그 중심에서 마음 다독이며 지냈던 나날들이었다.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올 때는 아마도,
인생이 언제나 찬란하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매 순간마다 희로애락을 한 번씩 반복해야 이루어지는 것이 삶인 것을 느껴야 하는 시기.
한 번도 좋아할 생각 없었던 비 내리는 날을 차근히 사랑해야지. 마음 한 부분을 기꺼이 내줘봐야지.
서예인 인중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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