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해, 하지만 달라.
또박또박, 아주 정교히.
숨도 마음대로 쉬지 않고 글씨를 썼다.
바라보던 친구의 한마디.
어쩜, 정말 컴퓨터에서 뽑아낸 글씨체 같아!
좋아해 주는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한 기분은 왜일까.
혼을 담은 나의 육필이
0.1초 만에 적히는 모니터 속의 그 모습과 비슷하다면,
서예가도 언젠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섬뜩한 예측이 통하면 어쩌나.
세상이 갈수록 넓어지고
시간 역시 나날이 쪼개지면서
인간의 일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 거의 첫 번째로 줄어든 직업은
톨게이트 안내원이다.
여전히 안내원이 있긴 하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직업이라는 것은
아마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차종에 따라서 가격만 다르게 받으면 되니
굳이 그 자리에 인간이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내 기억 속 톨게이트 안내원은
그저 교통비를 계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준 큐피드였다.
이십 년 전 즈음,
가까이 지내는 이웃과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각자 가족의 차를 타고 나란히 고속도로를 가다가
톨게이트에 들어갔다.
통행료를 내기 위해 창문을 여시는 아빠에게
안내원은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앞 차가 계산을 함께 했어요.
날씨 참 좋네요! 운전 조심하시고 즐거운 여행 되세요.”
안내원의 미소와 맑은 목소리에
긴 교통체증으로 답답했던 차 안으로
꽃향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아빠는 안내원께 감사하다며
차에 있는 사탕을 한 움큼 건네 드렸고,
얼마 안가 도착한 휴게소에서 옆집 아이들과 우리 자매는
아빠의 카드로 간식을 실컷 사 먹었다.
인간은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스스로를 더 외롭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과 인공지능로봇은 비슷하지만,
그러나 극명히 다르다.
실패했을 때에 한숨을 쉴 줄 아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눈빛으로도 대화가 가능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
더 명확히 말하자면,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살아있거나,
그렇지 않은 것.
뽑아낸 것 같다며 한껏 칭찬해준 내 글씨를
다시 한번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천천히 적어 내려간 글씨들.
더 가까이 다가가니,
먹이 종이에 번진 모습과
삐죽 나온 한 가닥의 붓털이 인사한다.
그러자 완벽하지 않은 그 틈으로
나의 숨이 보이면서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서예인 / 인중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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