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른아이 Oct 28. 2022

우울증 환자가 아침을 맞이하는 방법

일어날 이유가 없잖아


핸드폰 화면을 보니 오전 6시 조금 넘는 시간었다.


언뜻 보면 이른 시간인 듯 하지만 어제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며 낮잠을 잔 것과 그러고서도 오후 10시쯤 일찍 잠자리에 누운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빠른 기상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이 떠진 시간이 몇 시든 간에 나는 일어날 생각이 없다. 그저 이대로 있을 것이다.


몸은 충분히 쉬어서 괜찮은 것 같지만 이놈의 정신이 문제다. 천하에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놈. 매일 아침 '일어나야 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없다.


무직. 해야 할 일 없음. 하고 싶은 것 없음. 오늘 예정된 일정 없음.


되려 일정이 있으면 더 큰 문제다. 나가기 직전까지 그 일정을 취소할까 말까 끊임없는 고민을 반복하다가 때로는 취소하고 때로는 일어나 고양이 세수만 하고 집 밖으로 나간다.


예를 들어 오늘처럼 8시에는 일어나야 준비를 하고 나갈 수 있는 일정이라면 눈이 떠진 6시 전후의 시간부터 정신이 들 때마다 시계를 확인하며 일정을 취소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며 억지로 눈을 붙이기를 열댓 차례는 반복한다. 심지어 그 와중에 코로나 자가 키트 검사로 양성이 뜨는 꿈까지 꾸었다. 애지간히도 가기 싫었나 보다.


중간중간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면서 드는 생각은 아래와 같다.


'아, 아직 7시도 안 됐구나 다행이다.'

'아 30분 정도 남았네?'

'8시 5분 전이구나 지금이라도 못 간다고 전화를 할까?'

'8시 반이네.. 아... 아....'


그렇게 오늘은 일어나서 나름대로의 외출 준비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다.


그 저항을 뚫고 나온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견하다. 하지만 동시에 아침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는 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내가 한심하고 원망스럽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또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지..? 나. 나아질 수는 있는 걸까..?






그 일이 있은지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 간다.

그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년 전에 쓰다가 차마 마무리하지 못한 글을 발견했다. 오늘의 나와 뭐가 다르지? 오히려 시간이 지났는데 같은 상태라는 게 더 끔찍해.


나.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걸까?


이대로 시간만 흐르고 나는 금 상태 그대로일까 봐. 혹은 나아지더라 그게 너무 늦어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것이 무엇보다 무섭고 두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망가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