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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Nov 27. 2023

정신과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

정신과 환자의 일상 고찰

그 일이 있은지 어언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깊은 우울이 지나가고 매 순간 요동치던 조울도 전보다 많이 잦아들어서 이제서야 약을 먹으면서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나는 회사 점심시간마다 정수기 앞에서 약을 털어 넣으면서 "나는 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만 하는 걸까. 평생 환자로 살아야 하는 걸까"와 같은 불안가득하였는데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약을 언제까지 먹을지, 의사 선생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들을지 말지, 선택 내가 하는 것이다. 다른 이의 의견은 참고사항이 될지언정 답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다시 조금씩 자아를 찾아간다.



다만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 더 이상 전과 같지는 않음을 느낀다. 노오력과 적절한 운으로 평생 속을 썩이지 않던 딸이 자신감 과잉 및 조증의 발현으로 한 번의 잘못된  결정을 내려 넉다운 상태가 되어 수개월을 보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다시는 똑같은 아픔을 겪고 싶지 않겠지. 그 이후 내 결정에 대한 엄마의 시선은 "믿음과 지지" 보다는 "불신과 불안"에 가까워졌다.


아쉽고 서운하지만 그 시선은 틀리지 않았다.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조울증은 한번 나타나고 나면 재발할 확률이 매우 크고,  그다음 조증으로 인한 피해는 더 큰 게 보통이며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회복하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즉 나는 이제 언제 또 내가 또 충동적이고 지나치게 자신만만해지지는 않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조울병의 특성으로 인해 당뇨병환자가 평생 혈당을 조절하는 약을 복용해야 하듯이 조울병 환자도 평생 감정의 폭을 조절해 주는 약을 먹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내 임의로 약을 끊어보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마다 나는 주기를 달리해가며 무기력과 약한 조증상태를 오갔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금은 상황과 내 정신상태가 많이 나아졌으니 "지금 끊으면 또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은 상태에서 굳이 모험을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정신과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금 내 목표는 "잘" 사는 것이지 약을 끊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정신 약 없이도 "잘"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랜 강박 "약을 끊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정신과 환자에게 약을 먹고 말고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리고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난 당분간은 전문가의 말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결정권은 내게 있으며, 나는 나를 위한 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해 끊임이 공부하고, 바라보고, 기록해 나갈 것이다.












아, 지막 다짐을 보고 나니 알겠다. 나는 결국 약을 끊고 싶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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