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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 May 01. 2023

수리산 성지순례

V 버킷리스트 55. 율이 첫 영성체에 마음을 다했다

첫 영성체 아이들을 위한 가족 성지순례를 어제 다녀왔다. 특별히 몸이 힘든 일은 아니었는데,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내내 자고 집에서도 푹 쉬었다. 어제 사진을 넘겨보다 문득, 첫 영성체 아이들을 위한 성지순례가 ‘수리산 성지’인 까닭을 오늘 아침에 깨달았다. 이런 큰 그림을 어제는 왜 몰랐을까?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것이로구나!


어디로 간데?

안양이라던데?


수업에는 일도 관심 없이 멍하니 교실을 채우던 때처럼 어딘지도 모르고 버스를 탔다. 목적지인 수리산 성지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부모님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복자 이성례마리아’를 기리는 성지였다.  사실 어제는 수리산성지 성당에서 본 봉헌의 멤버십 이름 (250만 원 일시불 봉헌: 경환회원, 월별분납 봉헌: 성례회원)이 너무나 단도직입적이어서 남편이랑 깔깔 웃었는데 오늘 아침 몹시 민망해졌다. 토요일에 수녀님께서 다정하게 강의해 주신 ‘자녀에게 신앙을 선물하는 방법’ 이 고스란히 떠올라 가슴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어부바의 ’ 업다 ‘라는 동사에서 존재의 유무를 이르는 ’ 없다 ‘라는 동사가 파생되었다는 수녀님의 말씀이 신자와 냉담자를 오가는 내 정체성에 등짝스매싱을 날려주셨다. 엄마가 아기를 업고 있으면 아기는 엄마의 얼굴을 볼 순 없지만, 엄마가 보여주는 세상을 볼 수 있다. 아기에게 엄마는 없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안전하고 따뜻한 믿음이다.


“아이에게 신앙을 선물하세요. 우리가 언제까지나 아이를 업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잖아요. ’ 내가 없는 세상이 오면, 나머지는 예수님이 업는다.‘ 그러면 못할 것도 없지요.”


머지않아 신의 존재유무를 두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낼 아이에게 아직 감도 못 잡고 있는 내가 어떻게 신앙을 선물할 수 있을까?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제였는데 수녀님은 다정하게 말씀해 주셨다.


“신앙은 기억이에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아이와 함께 아침기도, 저녁기도를 하며 하루의 시작과 끝맺음을 해보라고 하셨다. 성당을 오고 가며 맛있는 떡볶이도 사 먹고, 주일학교에서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고 웃고. 따뜻한 등으로 아이의 가슴을 언제고 데워줄 수만 있다면, 까꿍놀이처럼 다정하고 재미나게 아이의 기억을 채워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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