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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포그래피 야학 May 05. 2020

01_타이포그래피란 무엇인가?

살아있는 글자

일러두기

1. 앞의 글들을 우선 읽기를 추천합니다.

2. 본문 안에서 타이포그래피 용어는 띄어 쓰지 않았습니다.

3. 윤문이 되지 않은 글입니다.



¶ 타이포그래피란 무엇인가?

타이포그래피는 활판인쇄술을 말한다. 활판은 살 ‘활(活)’자에 판목 ‘판(版)’자로 움직이는 판을 이용하여 인쇄하는 것을 말하는데, 움직이는 판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살아있는 글자라는 의미로 ‘활자’라고 한다. 움직이는 평평한 판 위에 볼록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책의 형태에 맞춰 판면을 짠 다음 오목 판화처럼 인쇄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이포그래피는 우리말로 글자 ‘짜기’ 혹은 판짜기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왜 ‘살아있는 글자’라는 의미로 ‘활자’라고 했을까? 금속활자 이전에 글을 기록하거나 책을 만드는 방법은 언어나 원문 필사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보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비석에 새긴 문자인 ‘비문’이 있다. 필사와 비문은 특징은 한번 기록되면 고쳐 쓰기 힘들거나 어렵다는데 있다. 그래서 글자를 한 자 한 자 새기거나 쓰는 행위는 신중해야 하고, 이는 곧 글자 기록 자체가 권력이 되는 이유다. 중세시대에 종교인들이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성경을 필사하며 해석하고 고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글을 기록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구텐베르크가 서양에서 금속활자 인쇄를 처음 발명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게 주장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텐베리크가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것에 많은 의문에 제기되고 있다. 동양에서는 이미 구텐베르크보다 빠른 금속활자인 ‘직지’가 존재했고, 당시 동양의 왕실과 서양의 교황청이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자료가 남아 있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보다 당시 금속활자에 대한 존재나 방법 등이 생각보다 널리 세계 도처에 퍼져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해볼 수 있다. 어쨌든 14~15세기경에 금속활자 인쇄 방법이 동양과 서양에 두루 퍼져 있었다는 것만큼은 부정하기 힘들다. 다만 구텐베르크가 이러한 금속활자 인쇄 기술을 보편화 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듯하다. 금속활자 인쇄 기술의 보편화는 누구나 책을 인쇄하고 대량으로 출판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만들었다. 


기록과 인쇄, 출판의 보편화를 통해 글자를 고쳐 쓰는 권력이 대량 생산의 기술과 만남으로써 성경의 해석을 다양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활자의 존재는 ‘고쳐 쓰는 것’과 ‘대량 생산’을 모두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환경은 ‘신 중심’의 중세 사회가 ‘인간 중심’으로 생각이 재편되는 중요한 바탕을 마련했다. 인간 중심은 앞서 이야기한 ‘변증법’이 가능한 시대다. 그리스 시대 이후 다시금 '질문'과 '의문'이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전환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구텐베르크 인쇄 혁명이라 부른다. ‘살아있는 글자’라는 의미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리고 ‘살아있는 글자’를 ‘짜는’ 행위를 우리는 ‘활판인쇄술’이라 부르며 이것이 ‘타이포그래피’다. 타이포그래피는 글자뿐만 아니라 문자 권력을 함께 다루는 행위다.



타입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과거의 인쇄술은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것에서부터 인쇄를 하는 일까지 전체의 과정을 도맡아 진행했다. 글자를 새기고 주물로 떠서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일부터, 제작된 금속활자를 배열해서 단단히 고정한 뒤 잉크를 바르고 종이 위에 찍어내는 일까지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 그래서 과거에 타이포그래피라고 말하는 기술에는 글자꼴을 디자인하여 금속활자로 제작하는 것을 포함했다. 하지만 점차 금속활자를 위한 글자꼴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 났으며, 소규모 인쇄소들은 이러한 곳에서 금속활자를 구매해서 사용하였다. 글자꼴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사람들은 세밀한 부분까지 다듬고 수정해서 각 글자꼴의 형태를 발전시켰으며, 그러한 글자꼴을 수급받은 인쇄소들은 더욱 완성도 높은 판짜기와 인쇄 그리고 제본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19세기를 넘어서면서 글자꼴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은 ‘타입 디자인’ 과정으로 분리되어 독립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디자인된 금속활자를 선택해서 배열하는 식자(植字)’과정을 거쳐 판을 짜고, 종이 위에 인쇄하고 제본해 책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타이포그래피’라고 불렀다.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의 발명 이후 다시 한번 인쇄 제작과 ‘디지털 활자로 글자꼴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방식’(디지털 식자)이 분리되었다. 이를 우리는 데스크톱 퍼블리싱의 약자인 DTP 환경이라고 한다. 개인용 컴퓨터의 발명 이후 디지털 시대의 타이포그래피 의미는 ‘디자인 된 디지털 활자를 의도에 맞게 선택해서 배열하는 전문적인 양식 및 기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서양의 고전주의 타이포그래피

금속활자인쇄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 초기에 금속활자 인쇄본을 보면 형태나 모습은 필사로 이루어진 중세 양식을 닮기 위에 부단히 애쓴 모습이 보인다. 사용된 금속활자는 필사 형태의 글자꼴을 최대한 모방했으며, 책의 장식도 그대로 재현하여 애썼다. 그래서 구텐베르크 초기 타이포그래피는 글자꼴의 형태부터 글줄정렬, 단락 구분 등 대부분의 양식을 중세 시대의 양식을 재현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타이포그래피 양식은 중세를 넘어 과거 그리스·로마 시대의 양식(이라고 생각되는)에서 미적 기준을 찾고 재현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고전주의 타이포그래피라고 부른다. 


고전주의 타이포그래피는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의 미학을 따르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는 타이포그래피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글을 '읽기'의 기능적 측면보다는 '기록'된 것으로써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한다. 고전주의 타이포그래피는 이러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대칭적인 것에서 찾았다. 그리스·로마 예술에서 복각된 대칭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래서 초기의 고전주의 타이포그래피는 '대칭 타이포그래피'라고도 한다. 본문짜기는 대칭을 이룰 수 있는 '강제양끝맞추기'를 사용하고, 제목은 '가운데맞추기'를 통해 대칭적 구조를 만든다. 현재 우리가 '가운데맞추기'를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리스·로마의 예술 문화와 연관된 시각적 인식이 이유일 것이다. 금속활자를 위한 글자꼴 제작도 초기에는 블랙레터나 텍스튜라 같이 중세의 필사가들이 만든 글씨 양식을 토대로 만들다가 점차 확대하여 카롤링거 미네스쿨레와 같은 현재의 라틴알파벳 소문자 양식으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 고전주의 양식도 금속활자 인쇄가 더욱 활성화되고 보편화된 시기인 17세기에 이르러서 타이포그래피의 의미가 ‘기록’보다는 ‘읽는’ 것으로 인식 전환이 서서히 진행되었다. 이때 글을 쓰는 사람과 출판은 점차 인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책에 대한 수요도 증가한다. 이러한 환경적 토대는 다양한 금속활자인쇄술과 다양한 글자꼴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는데, 그래서 서양에서는 17세기 이후 19세기까지를 ‘천재 글자꼴 디자이너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다양한 라탄 알파벳 글자꼴의 원형이 이때 대부분 등장한다. 게라몬드, 보도니, 바스커빌, 캐슬론 등 다양한 라틴알파벳 글자꼴들이 디자인된다. 이렇게 디자인된 글자꼴의 형태와 그리스·로마와 중세 시대를 관통하며 연결된 타이포그래피 양식인 가운데맞추기와 양끝맞추기 문자정렬 방식이 만나 판면 혹은 제본 위치를 중심으로 형태가 대칭이 되게 타이포그래피 하고 이를 ‘대칭 타이포그래피’ 혹은 ‘고전주의 타이포그래피’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19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삶의 방식은 혁신적 변화를 맞이 하게 되는데, 고전주의 타이포그래피도 점차 대칭적 양식에서 벗어나 대량생산에 적합하도록 실용적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 서양의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

19세기 이후 타이포그래피와 변증 유물론 관점이 만나면서 형태적 양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 타이포그래피 운동'은 대체로 좀 더 쉽고 빠르게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만드는 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체계화하여 다양한 사람들에게 교육한다면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기존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장식’은 비효율적이었으며, 대신 흰 여백을 통해 타이포그래피의 빈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을 발견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리드’는 공간을 직조하는 수단으로써 타이포그래피의 형태적 논리를 부여하기 위해 적극 활용되었다. 덕분에 글자로 된 다양한 정보를 글자꼴의 양식이 아닌 공간으로 구분하는 방법들을 발달시켰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으로 공간을 비대칭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비대칭 타이포그래피의 사상이 확산되었다. 비대칭 타이포그래피는 공간의 구성이 대칭하는 것보다 비대칭으로 구성하는 것이 정보를 구분하는데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속활자 크기 사용을 제한하고, 소문자만 사용하는 극단적 타이포그래피 양식을 주장함으로써 금속활자를 소유해야 하는 비용을 줄였다. 과거의 금속활자는 지금의 디지털 글자꼴과 달리 물리적 공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공간 비용과 유지에 대한 문제를 고려해야 했다. 이러한 활자 크기, 글자꼴 종류, 소문자 쓰기 운동은 더욱 그리드를 이용해서 공간으로 내용을 구분하는 방법에 몰두하게 했다. 또한 이러한 방식은 방법을 체계화해서 타이포그래피 사용설명서로 만들기 편했는데 이러한 방법을 저술하고, 체계적 교육 방법으로 발전시킨 것이 20세기 초 '신 타이포그래피 운동'이다.


신 타이포그래피 운동은 사소해 보이는 '문자정렬'방식에도 큰 변화를 만들었는데. 문자를 '가운데맞추기'와 '양끝맞추기'가 아닌 '왼끝맞추기'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왼끝맞추기'는 신 타이포그래피 운동을 주장하던 타이포그래퍼들에게 논리적 주장을 만들었는데, 첫 번째는 금속활자 작업의 편리함이었다. 대체로 금속활자 조판에서 양끝맞추기는 금속 활자를 식자하는 과정에서 글줄의 꼬리가 각 글줄마다 일정하게 끝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하이픈영역' 혹은 '낱말분리영역' 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양끝맞추기는 타이포그래퍼들에게 활자를 알맞게 벌려 놓아야 하는 '배자' 과정을 추가로 요구한다. 하지만 '왼끝맞추기'는 단어별로 글줄이 끝나면 바로 다음 줄부터 식자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조판 작업이 더 빠르다. 두 번째는 이렇게 조판하면 각 글줄이 일정한 글자사이와 낱말사이로 통일된다. 일정한 글자사이와 낱말사이는 가독성에 있어서 더 유리하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 세 번째는 각 글줄이 낱말 별로 분리됨으로 해서 독자가 글을 읽는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낱말 별로 분리된 글줄을 글을 가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네 번째는 이렇게 조판된 단락은 자연스럽게 단락 그 자체도 비대칭적 형태를 만든다. 이는 그리드를 활용한 공간적 구분을 만들어내는 비대칭 타이포그래피에 좋은 바탕이 된다. 이러한 왼끝맞추기의 여러가지 이유들은 타이포그래피가 '논리적'이라는 명분을 얻기에 좋다.


신 타이포그래피 운동은 비대칭 타이포그래피를 장점들을 주장하면서 등장하였다. 20세기 초 넘쳐나는 콘텐츠와 광고, 그리고 정치적 선전문구 틈에서 그리드를 이용한 공간의 구성은 글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구분하고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만들었다. ‘양끝정렬’에서 ‘왼끝정렬’로의 전환은 금속활자를 일정하게 벌려 놓기 위해 들였던 조판 시간을 아꼈다. 제한된 글자꼴과 크기를 사용하자는 운동은 금속활자를 소유해야 하는 비용을 아끼고, 그동안 국가를 대표하는 글자꼴을 사용하여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부채질했다는 양심적 부채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이는 20세기 초 세계대전에 대한 신 타이포그래피 운동의 대안이기도 했다. 이러한 신 타이포그래피 운동을 우리는 비대칭 타이포그래피 혹은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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