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화를 쓰는 이유_2019 가을
나에게는 세 명의 조카가 있다. 모두 2년 터울로 태어나서 나이를 기억하기가 쉽다. 지금은 6, 4, 2학년이다. 첫째 조카는 태몽이 노루여서 애기 때는 노루라고 불렀다. 둘째 조카는 태몽이 검은 송아지였다. 셋째 조카는 유일하게 남자아이고 태몽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교 4학년, 나는 이미 26살이었다. 학교를 늦게 들어가기도 했고 휴학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앞으로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어떡하나 어떡하나, 그런 생각만 잔뜩 하고 있었다. 졸업하고는 뭘 하나, 취직은 자신이 없고 전공은 연극인데 계속 연극을 할 수 있을지도 두려웠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편하지 않은 성격이기 때문이다. 유학이나 대학원을 가자니 더 이상 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 그랬다. 먼저 졸업한 선배 언니는 '지나가다 빈 벤치만 봐도 눈물이 났다'고 했다. 졸업 후 막막함을 요즘은 졸업 유예라는 것으로 미룰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학비도 아까웠다.
마지막 학기에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학생이 4~5명 정도 되는 작은 수업이었고, 철학책이 교재였다. 하지만 철학적인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한 챕터를 읽고, 아무거나 쓰고 싶은 글을 써가고, 읽고, 얘기하고, 그런 수업이었다. 나는 그 수업이 너무나 좋았다. 매주 그 수업에 가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정말 재밌었다. 토마토에 대해 쓰기도 하고, 청설모와 대화하는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어떤 학생은 선풍기의 바람에 대해 묘사하기도 했다. 비평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평가받지 않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다들 이런 거 재밌다, 이런 표현 좋아,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즈음에 첫째 조카가 태어났다. 나는 수업의 마지막 과제물로 조카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었다. 모두들 재밌어하며 읽어주었다. 그렇게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림책은 꾸준히 만들어오고 있지만 출판이 된 것은 한 권이다. 이후로는 공모전이나 출판사에 보내보아도 모두 거절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만든 그림책들은 모두 다락방에서 잠든 상태로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우연히 당시 살던 동네에서 만나게 된 선생님께서 동화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해오셨다. 정말 그냥 동네 소모임 같은 곳이었는데 누구 아는 사람의 누구가 이런이런 동화 시리즈를 만들 거라는, 아직 이름도 없고 출판사는 곧 차릴 예정인데 서울은 아니고 전라북도로 이사를 갈 것이고, 그곳에서 나올 책이고......라고만 들었다. 처음에는 뭔가 신뢰가 안 가고, 대표님은 항상 만날 때마다 개량한복만 입고 오셨고(만나지 않을 때도 그럴 것이다), 회의라고 해도 제대로 뭔가 얘기를 하기보단 술만 마셨다. 몇 명의 작가가 더 있었는데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으시고 이미 책도 여러 권 내신 작가님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동화를 써본 적이 없었다. 희곡은 몇 편 썼지만 미완성인 것이 더 많았고, 그림책도 만들어오고는 있었지만 아동문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릴 때 동화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은 첫째 조카가 IS에 관한 뉴스를 보고 물었다. "왜 저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거야?"
아무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엄마도, 이모도 우리 중에 아무도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지 못했다.
종교에 대해서 시작해야 할지(이슬람교는 나도 잘 모르는데), 시리아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부터 얘기해야 할지, 파리의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도 얘기해야 할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아니, 나도 잘 몰랐다. 저 사람을 왜 불태워 죽여야 했는지를. 도대체가 나도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이 동화책 시리즈를 쓰기로 결심했다. 물론 IS 얘기는 쓰지 못했고 앞으로도 쓸 수 있을지 확실친 않지만, 시작에 대한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여러 주제들 중에 음식문화에 대한 얘기를 첫 번째로 쓰게 되었고, 그렇게 세 권의 책이 나왔다. 보신탕, 핵발전소,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하여 썼다.
아이들이 어려운 질문을 했을 때, 아이에게 설명해주기 힘든 어른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냥 그뿐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큰 목적도 없었고 어떤 정치적 색깔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사람이 사는 세상은 이렇게 모순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게 진짜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걸 얘기하는 것은 동화라는 장르와 맞지 않는 것일까? 모르겠다. 아.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공부를 더 해야 한다. 희곡도, 동화책도 꾸준히 공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쓴다.
예전에는 번역되어 출판되는 최신 희곡이 별로 없어서 구해 읽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은 많이 출판되어서 좋다. 나는 영국의 희곡 작품들이 참 좋다. 해롤드 핀터, 사라 케인, 코너 맥퍼슨(은 아일랜드 사람이지만), 닉 페인 등의 작가를 좋아한다. 공연을 만들 때에 여러 가지로 시도할 여백을 많이 주면서 글을 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가장 배워야 할 점이다. 한국 희곡 중에서는 언제나 최고로 좋아하는 작품은 윤영선 선생님의 '임차인'이다. '키스'가 더 유명하지만 그래도 나는 항상 '임차인'을 최고로 뽑는다.
동화책은 미하엘 엔데를 다시 읽고 있다. 엔데는 평생 읽을 것 같다. 또 다른 독일 작가 발터 뫼르스의 작품도 주기적으로 한 번씩 다시 읽는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첫째 조카 때문에 도서관에서 청소년 소설도 눈에 띄는 대로 빌려보고 있다.
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조카들은 "이모 책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정말이다! 세 권 모두 초등학교 4~6학년 정도로 기준을 맞추었기 때문에 아직 저학년일 때 읽은 조카들에게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로 재밌었다. 이렇게 솔직하고 즉각적인 반응은 처음이었다. 글쓰기 수업에서도 솔직한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솔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모 책이라고 읽고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나는 너무나 고맙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해주었다는 것에 감동받았다. 사실 책을 이해하고 뭔가를 배우고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출판된 책은 첫째 조카에게 재밌다는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