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늘바람 Jun 06. 2020

최근에 읽은 것과 본 것과 들은 것들

2020년 상반기 보고 듣고 읽은 것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 기록

'본 것'


캐피탈리즘 러브 스토리

  민영화를 주제로 동화책을 쓰면서 찾아보게 되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는 식코도 보고, 볼링 포 콜롬바인도 보고, 로저와 나도 보고, 화씨 9/11도 보고, 심지어 마이클 무어 뒤집어보기도 봤지만, 캐피탈리즘 러브 스토리가 가장 좋았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연설과 현시점의 시위대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장면에서 왈칵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공부를 하다 보면 항상 개운한 느낌보다는 찝찝한 뒷맛이 한동안 감정을 지배하게 되는데, 캐피탈리즘 러브 스토리는 그렇지 않았다. 이와 같은 결의 또 다른 멋진 드라마가 바로,


Years and years

  이렇게 멋지고 세련되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니! 

  무릎을 팡팡 치며 흠뻑 빠져들어 보았다. 상상력과 현실감과 통찰력과 강요하지 않는 의식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드라마다. 영국의 드라마를 즐겨 보지만, 앞으로는 단연코 이 드라마를 최고로 뽑을 것이다. 이 작품을 쓴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닥터 후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아, 정말로 화가 난다. 이렇게 잘 쓸 수가 있다니. 어떻게 해야 이렇게 잘 쓸 수 있단 말인가. 무릎을 꿇어도 알려주지 않을 테지. 


인간 수업

  크게 유행하는 것은 그 시기에 보지 않고 조금 지나서 보려고 노력하지만, 인간 수업은 n번방 사건과 그 시기가 맞물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투적인 교훈을 읊지 않아서 좋았다. 주제가 주제여서 그랬는지, 어느 캐릭터에도 감정을 부여하지 않으려고 작가가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한창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건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내용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내 생각을 정리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작가라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언제든지 뭐든지 물어보고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 캐스팅에 대한 것이나, 감독과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서나, 하다못해 대본에 쓰이는 사소한 용어 하나라도 금방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작가라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데이빗 핀처

  세븐, 조디악, 패닉 룸, 나를 찾아줘, 마인드 헌터까지 핀처 감독의 작품들 중에 범죄 수사와 관련된 작품들을 몰아봤다. 담배 냄새와 땀냄새가 쩔어서 쉰내 풀풀 풍길 것 같은 형사님들이 많이 나오고, 특히 마인드 헌터는 특유의 잔인한 장면이 많아서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그런 기분을 느끼려고 일부러 찾아보게 되는 듯도 하다. 이런 작품을 멍하니 보고 있자면 그 끔찍한 영화 속과 현실의 내가 비교되면서 묘하게 편안하고 쉬는 기분이 된다. 형사님들은 저렇게 고생하는데 나는 시원한 방바닥에서 선풍기를 틀고 이걸 보고 있네, 라는 것이 휴식의 감정을 충분히 안겨준다. 


'들은 것'


(팟캐스트) 탁PD의 여행 수다 - 산티아고

  8시간 정도 분량이었는데 몰아서 듣고 진지하게 여행 계획을 세운 것이 지난 2월. 그리고 코로나 19로 떠나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제주도 올레길 한 구간과 지리산 둘레길 한 구간을 걸었다. 걷고 나서 이렇게 한 달을 걸어야 한다니 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젠가 꼭 갈 것이다. 꼭. 그때까지 체력을 단련시켜 놓으려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천천히 걷고 벤치가 나오면 꼭 앉았다 가는 나의 속도로는 만보를 걷는데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 이상문화예술정책평론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팟캐스트 에피소드이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예술에 정부의 지원금이 들어가는 금액으로 따져봤을 때 우리나라가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한다. 무수히 많은 지원 내역 중에는 전시, 공연, 출판, 각종 지자체 문화 행사, 몇 년 전부터 시행되어 온 예술인 창작지원금 등이 있다. 


  예술인 복지재단에서 한 사람이 격년으로 신청할 수 있는 이 창작지원금을 나도 몇 번 신청하여 받은 적이 있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면 2년에 한 번 삼백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출판된 책의 표지, 계약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작품 활동을 증명했다. 공연을 올리게 되면 포스터에 들어간 내 이름으로 증명이 되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올해 받았다면 내년에는 신청하지 못한다. 거칠게 평균을 내자면 1년에 150만 원으로 창작지원금을 받고, 출판사의 인세로 대략 150만 원을 받는다 (동화책의 경우 글작가는 7%의 인세를 받고 초판은 2천 부를 찍는다고 가정하고, 책값이 만원이라고 계산했을 때 140만 원이다). 일 년에 나의 작가라는 타이틀로 버는 수입은 삼백만 원 정도인 것이다.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면 어떻게든 빌붙어 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병행한다. 아주 가끔 들어오는 포스터, 리플릿 등의 디자인 작업이 있지만 전공자가 아니라서 실력이 좋지 않아 꾸준히 하지는 못한다. 꾸준히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 목공일도 잠시 했지만 손목이 좋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다. 올해도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지만 이제는 삼십 대 후반이 되어서 그런지 이력서를 내도 연락 오는 곳이 없다.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한 가지 정책은, 미술계의 이야기이다. 갤러리와 화가를 매칭 시켜서 월급을 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쉽게 말하자면 갤러리가 화가를 고용하는 방식인 것이다. 안정적으로 수입이 있는 상황이 되면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도서관에서 작가를 고용하는 형태인 도서관 상주 작가라는 방식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예로는 프랑스의 영화계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영화계의 지원을 하기 위해서 지역의 낡은 영화관을 수리하고 영화를 홍보하는 비용을 투자한다고 들었다. 영화를 찍는 돈을 주거나 배우, 감독, 스태프들에게 직접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다. 어떻게든 영화를 찍으면 상영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도록 영화관을 늘리는 것이다. 아, 이것도 멋지다. 동네에 서점이 늘어나면 사람들이 책을 많이 살까? 

  또 다른 예로는 독일의 한 연극학교를 다니는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그 학교에서는 졸업 전에 한 학년이 모여 다 같이 졸업작품을 만든다. 배우, 연출, 스탭, 미술, 음악 등 동기들이 모두 모여 만든 졸업작품으로 일 년 동안 전국을 돌면서 공연을 한다고 한다. 아. 이건 또 얼마나 멋진 소리인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일본에서는 온라인 매체의 소비보다는 오프라인 매체 소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서 책, 잡지, 음반 등이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어떤 방식도 정답은 없기에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탁! 떠올랐으면 좋겠다. 


9와 숫자들 - 서울시 여러분

  그냥 좋다. 아 좋다. 24시간 틀어놓고 싶다. 한 번씩 꽂혀서 반복해서 듣는 밴드가 생기는데 올해는 당분간 9와 숫자들로 갈 것 같다. 


신지혜의 영화 음악 - CBS 라디오

  한동안 꾸준히 들었던 프로그램인데 최근에 다시 듣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가지라도 꼭 해야 할 일이, 그것이 라디오 듣기라도 꼭 지키는 어떤 습관 같은 것이 있다는 게 묘한 안심을 준다. 


'읽은 것'


20세기의 셔츠

  얀 마텔의 책은 도서관에서 읽고 꼭 새 책을 주문하게 된다. 꼭 내 옆에,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 

  희곡이라는 형식을 소설 중간중간에 끼워 넣은 구성이 탁월하다. 희곡의 등장인물은 버질과 베아트리체인데, 둘의 대화 중에 과일 배를 설명하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배를 모르는 상대방에게 배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나도 함께 고민하며 읽었다. 홀로코스트를 모르는 사람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이 꼭 이럴까, 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넣은 장면이라고 생각되었다. 파이 이야기처럼 동물이 많이 나오지만 이 작품에서는 모두 죽은 동물들, 박제된 동물들이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두고두고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이 책도 공교롭게 동물이 많이 나온다. 습지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이다. 갈매기가 가장 친한 친구이고, 굴을 따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습지의 새들을 관찰해서 그림으로 그리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영화배우 리즈 위더 스푼이 극찬을 하며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로 만들 예정일까? 


어느 작가의 오후

  페터 한트케의 잔잔한 소설이고, 위로가 많이 된 책이다. 영화 패터슨이 떠올랐다.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외부의 묘사와 감정의 묘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정말 겨울의 공기와 그 공기를 맡을 때의 기분이 느껴졌다. 아. 묘사란 이런 거구나. 그리하여 또 다른 책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도 주문했다. 이제 곧 읽을 것이다. 


  코끼리의 마음도 좋은 책이었지만 도서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전자책으로 읽어서 온전히 읽지 못한 기분이다. 다시 도서관이 문을 열면 꼭 빌려서 볼 테다. 읽어보고 좋으면 소장할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산책과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