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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늘바람 Oct 09. 2019

요리와 나

나름 시골의 삶 01_2014 가을

  요리를 배워본 적도 없고, 엄마 역시 지금까지도 요리책에 의존하는 상황이라 딸에게 전수해 줄 비법 같은 것이 없어서, 나의 요리는 언제나 제멋대로이다. 결혼을 하고 삼 년이 지나자 그럭저럭 하루 세끼는 때울 수 있는 정도이지만 결코 맛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못 먹어줄 정도는 아니니 배를 채우자, 라는 심정으로 먹을 때도 있고, 오 나름 괜찮은데, 싶을 때도 있고, 꾸준히 비슷한 맛도 있다. 


  처음에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별 힘들이지 않고 음식을 해 먹었다. 시골로 이사를 오면서 인스턴트를 꽤 많이 줄였지만, 그래도 시어머니가 보신다면 기겁할 정도로 많이 먹는다고 할 것이다. 내가 만든 만두는 만두피도 맛이 없고 속도 별 것 없다면 사 먹는 냉동만두는 점점 발전해서 쫄깃한 겉 피에 고기 야채가 가득한 속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육즙이 줄줄 흘러내리는 끝내주는 냉동만두 맛이다. 소시지나 베이컨은 보잘것없는 볶음밥을 완성시켜주었고 사 먹는 김치는 참치캔과 찌개를 끓이면 일품이다. 


  붉은 햄 종류에 포함된 발암 물질 때문에 유해 식품으로 규정된 것이 얼마 전이다. 그렇다고 먹던 것을 안 먹을 수도 없고 해서 요즘은 간 고기를 사다가 이런저런 양념을 하고 빚어서 얼려놓고 햄 대용으로 쓰고 있다. 그것도 귀찮아지면 다시 손쉬운 햄을 사 먹게 될 것이고, 그때 즈음에는 유해 식품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까맣게 잊게 될 것이다. 몸에 좋은 것을 먹겠다고 마트에서 청국장을 사다 끓이면 청국장 세균 문제가 뉴스에 나오고, 설날이라 떡국이라도 끓여볼까 해서 샀던 떡국떡은 대장균 뉴스가 난 이후에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냉동 만두에는 알루미늄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뉴스를 보고 있자면, 결국 손쉽고 맛있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김장을 해보았다. 멋모르고 뿌려놓은 배추씨가 이렇게 잘 자랄 줄이야 누가 알았는가. 몇 포기나 할지, 성인 두 사람이 얼마 큼의 김치를 먹는지도 모르면서 텃밭 가득 네 줄이나 배추를 심어놓았으니 김장이 얼마나 고된지 나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무작정 배추를 뽑고 흙을 씻고 보니 담을 곳이 없다. 배추는 수돗가에 쌓아놓은 채로 버스를 타고 시장으로 갔다. 버스 안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뭘 사야 하는지 물었다. 새우젓, 쪽파, 무, 고춧가루, 찹쌀풀, 설탕, 액젓, 다라야, 김치통, 끼니를 때울 햄버거까지 사고 돌아와서 다시 김장을 시작했다. 


  배추는 반통으로 잘라 다라야에 착착 깔고 소금을 한 바퀴 슥, 뿌리고, 다시 그 위에 배추를 깔고 소금, 다시 배추, 소금 그리고 소금물을 풀어 배추가 잠길 만큼 부었다. 무는 다섯 개는 깍둑 썰어서 역시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 간식으로 햄버거를 먹고 새우젓, 액젓, 배, 굴, 고춧가루, 무채, 쪽파, 설탕, 마늘을 섞으면서 이게 맞는지 아닌지 알게 뭐야 라는 심정으로 김칫속을 만들었다. 도대체 김칫속이라는 게 어떤 맛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라고 이미 체력이 다한 나는 속으로 외쳐댔다. 소금에 절여둔 배추는 얼마큼 짠맛이 나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김치와 깍두기는 너무 짰다. 깍두기는 그래도 다른 음식과 먹으면 얼추 먹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김치는 다음날 이웃집에서 가져다주신 전라도식 김치와 비교되어 냉장고 속에 방치되었다. 찌개를 끓여봐도, 김치전을 해봐도, 도저히 맛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먹을 수는 있으니 배를 채우자, 는 심정의 음식이 된 것이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새우젓을 많이 넣으면 금방 쉬지 않고 오래간다'는 말로 어느 정도의 위로를 하셨다. 


  우리 동네의 집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을 보면, 팔십 프로 이상이 김치를 위해 짓는 농사로 보인다. 봄에 심는 마늘부터 항상 한켠에 자라고 있는 쪽파, 대파, 나무처럼 무성히 자라는 고추들, 무, 배추, 갓, 모두 직접 키워 그것들을 한데 모아 김치를 담그니 이웃집들의 김치는 맛이 있을 수밖에. 하지만 나는 멋모르고 뿌린 배추씨 때문에 억지로 시작한 김장이기 때문에 맛이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일 뿐이었다. 


  돼지 뼈를 사 와서 나의 짠 김치를 넣고 푹 끓이기 시작했다. 김칫국물도 살짝 넣고 시장에서 사 온 집 된장에 배도 반쪽 갈아 넣었다. 시장에서 신문지를 깔고 할머니가 파는 들깨도 갈아 넣었다. 돼지뼈는 한 시간 이상 끓여야 한다고 마트 정육점 아저씨가 설명해주었다. 보글보글 지금도 끓고 있다. 정말 감자탕 같은 맛이 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먹을 만하고 운이 좋으면 맛이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아주 맛있을 것이다. 맛있겠다. 

2014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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