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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10월에 세시반 콘서트 끝내고 번아웃 비슷하게 왔었다. 음악 이까짓 게 뭐라고 그렇게 열 올리며 했을까, 클래식 음악 어렵다고 거북해하는 사람에게 '이거 좋은 거예요' 하며 구차하게 강요(?)하는 것도 지치고, 실적을 위해 연주해야 되는 거면 꾸역꾸역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것도 아닌데 그냥 때려치워버릴까 싶었다. 한 번 사는 인생, 지금까지 재미있게 원 없이 음악 해봤으니 이제는 나도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도 옆에서 시름시름 기운이 없으신 게 딸내미 연주회 한다고 신경 쓰신 게 아닌가 싶어서 미안하고... (이때는 아직 입원하시기 전이다 - 지난 글 https://brunch.co.kr/@bkp711/55 참고)
심신이 너덜너덜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엄마가 쓰러지셨고, 그래서 병원엘 가서 있어보니 음악이라는 게 더욱 하찮게 느껴졌다. 세상은 병원 안 세상과 병원 밖 세상으로 나뉘는 것 같다. 특히 종합병원에서 환자들이 생사를 다투는 풍경을 보면 인간이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지는데 아무리 봐도 음악은 쓸데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병원에서 지나가다가 '찾아가는 미술관'이라는 코너를 봤다.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인 내가 봐도 그닥 잘 그린 그림은 아닌 것 같은데도 그냥 그림이 걸려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앞을 지나가는 내 마음이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잠시 숨통이 트이면서 마음이 밝아지는 느낌? 예전에는 봉사활동이라고 하면서 병원에서 학예회처럼 음악회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제 알 것 같았다. 연주를 잘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구나. 음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엄마가 처음엔 옆에서 다른 환자가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도 주무시기만 하더니 2주쯤 지나 조금 살아나시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보경아, 음악이 너무 듣고 싶어."
“어?? 그래그래 엄마, 무슨 음악을 틀어줄까? 우리 아침마다 듣는 라디오 틀을까? 아니면 유튜브에서 뭐 찾아줄까?”
"니가 친 거." (엄마는 내 1호 팬이다.)
음악을 틀어드리자 엄마가
"아, 이제 살 것 같다~"
라고 하시는 거다. 거기서 울컥했다. 그래, 지금 이렇게 엄마한테 들려드릴 수 있게 음악 하길 잘했구나. (엄마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앞으로도 그만두진 말아야겠다.) 음악은 의사나 간호사처럼 사람 살리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 ‘사는 것 같은’ 기분을 줄 수 있는 일은 되는 것 같다.
음악이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일만은 아닌 것을 병원에 있으면서 납득하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