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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뒷것으로 더 나은 사회를 기획하셨던 어른의 영면

김민기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by 한량바라기 Jul 24. 2024

지난 21일 김민기 선생님께서 향년 73세로 별세하셨습니다. 몇 년 전에 발견된 위암이 악화되었다고 하네요.


제가 김민기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노래를 통해서였습니다. 중학교 교지 편집위원 당시 담당 선생님들과 노래방을 갔었고, 그때 선생님들이 불렀던 <아침이슬>을 처음 들었습니다.


양희은도, 데모도 몰랐던 그 시절, <아침이슬>은 그 멜로디와 가사만으로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평소에 노래를 즐길 때 멜로디 위주로 듣는 나도 그 가사만은 기억에 남았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비장하고 가슴 뜨거워지던 그 노래. 덕분에 난 그때부터 김민기라는 음악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김민기를 마주친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입니다. 이미 학습을 통해 그의 노래가 얼마나 큰 힘을 가졌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흘러간 옛 추억일 뿐이었습니다. X세대 97학번에게 우리 사회는 분명히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의 노래는 더 이상 거리에서 불려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2002년 노짱이 TV에 나와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불렀을 때 잠시 그를 떠올렸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이후 나는 대학원 시절 김민기 선생을 대학로에서 <지하철1호선>을 통해 다시 접했습니다. 그는 이미 가수가 아닌 유명한 연출가였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와 가수들을 배출해 낸 기획자였습니다.


그는 뮤지컬을 통해 우리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직업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도전을 하는 김민기 선생을 보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업의 꿈은 잠시 접은 채 영업매출에 매달리던 그때, 그녀는 김민기 선생님과 관련된 논문을 쓰고 있었고, 심지어 김민기 선생님을 인터뷰하더니 그의 밑에서 작가로 함께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내 옆에서 김민기 선생님과 대면하고 말도 섞고 인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듣고, 노래로만 부르고, 책에서만 보던 선생님을 바로 내 눈앞에서 보게 되는 영광이라니. 아이들이 태어나고 우리 가족은 새해에 학전으로 가 선생님에게 세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막둥이는 선생님 무릎에 앉기도 했고, 아이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세뱃돈도 받았습니다. 그 김민기가 바로 내 앞에 서 있다니.


그렇게 일상은 이어져 나갔고, 김민기 선생님은 항시 아내와 함께 제 옆에 계셨습니다. 아내는 그로부터 배운 어린이에 대한 희망,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힘, 좌절하지 않는 끈기를 작품으로 풀어냈습니다.


아내가 그런 사회의 큰 어른을 선생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만 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아내를 소개할 때 김민기 선생님과 함께 작품을 했었다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가 아내의 지표인 것이 뿌듯했고, 그렇게나마 먼발치에서 그를 뵈었다는 것만 해도 감격스러웠습니다. 조금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뒷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겸허함.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배워야 할 덕목이기도 합니다.


그런 김민기 선생님이 가셨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라 안타깝지만, 워낙 많은 일을 하셨고, 많은 이들에게 빚을 지워준 분이기에 후회는 없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마지막 유언이 ‘할 만큼 했지’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와 함께 살아있는 자로서의 책무도 생각하게 되네요.


평생 뒷것으로 더 나은 사회를 조율하고 기획하셨던 그분을 보내며, 내가 혹여 악다구니 쓰며 꼭 앞것이 되겠다고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스스로를 되돌아 봅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택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정치이지, 정치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선생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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