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구직자의 자기소개
나는 30대 후반의 여성 구직자다. 마지막 회사를 퇴사한 지는 벌써 1년 6개월이 지났다. 쓰면서도 소름이 돋는다. 생각보다 길어진 무직 기간이지만 불안해하거나 우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특별히 돈이 많거나 긍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슬프다고 절망해봤자 침대에나 드러눕고 싶어질 뿐 실질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살면서 한번도 겪어본적없는 '노답의' 문제 상황을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다. 누구나 운 나쁘면 겪을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온 것 뿐이다. 그래서 내 딴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하루를 보내고, 입사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면접을 준비한다.
나는 IT 기업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다. 무슨 일인지 쉽게 설명하면 모바일앱이나 웹사이트 등을 만들 때 어떤 기능과 화면으로 구현할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업무다. 주로 개발자, 디자이너와 협업하면서 일한다.
일한 기간은 총 3년 11개월. 경력이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지도 않고 애매하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다니면서 맡은 업무에 충실했고, 내 연차에 적당한 프로젝트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면접의 기회를 위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에 성실히 정리해두었다. 크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초라하지도 않은 내 지난 사회 생활의 요약본.
가장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몸담고 있던 부서가 사라졌고, 새로운 일을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 원래 하던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있던 시기여서, 의도치 않게 찾아온 환경 변화가 또다른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좋은 마음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생은 늘 기대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다만 지금은 그 결과로 인해 내가 다시 바쁘게 면접을 보러다니고 있다는 사실만 이야기해두고 싶다.
첫 직장 생활을 이 분야에서 시작하지는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IT와 전혀 상관이 없는 직종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어느 스타트업에 취직하게 되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이에 비해 경력도 짧다. 아마도 그 점이 구직 활동이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면접관이어도 이력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고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보통은 결혼했을 것으로 짐작할만한 나이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면접에서 그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은 없다. 반대로 내가 먼저 밝힌 적도 없다. 다만 “혹시 은근슬쩍 먼저 티내야 하는건가?” 하고 고민한 적은 있다. 구직자는 조금이라도 합격에 불리한 요소들을 없애고자 온갖 생각을 하기 마련이니까.
지금도 나는 면접을 보러 다니는 중이고, 오늘도 보고왔다. 이력서를 많이 내는만큼 서류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종종 오곤해서 제법 많은 회사에 방문을 했다. 지역도, 업종도, 규모도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부터인가 면접관이 나를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하듯이, 나도 하나둘씩 회사들이 비교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채용 공고 내용을 정확하게 쓰지 않았구나(이 경우는 면접에서 떨어져도 내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면접관은 질문 준비를 하지 않았구나, A회사는 B회사보다 매출도 적고 평균 연봉도 적은데 채용절차가 더 까다롭구나... 등등.
그러면서 나의 다양한 면접 경험담을 담은 글이 쓰고싶어졌다. 나처럼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다니는 수많은 구직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예를 들어 '다들 이런 식으로 면접을 보는구나', '이렇게 면접을 보는 회사는 특이하네?' 등등 저마다의 면접 경험을 떠올리며 위안도 얻고 앞으로 방문하게 될 면접장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대기업 합격 수기처럼 멋들어진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궁금하고 눈길이 가는 이야기일 수 있다.
어디선가 취업은 '주차 자리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는 비유를 보았다.
타이밍과 운이 팔할이라는 뜻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갈 곳이 있다고 믿고 나의 주차장을 계속 찾아다닐 예정이다.
아직 방황 중이지만, 이 시간을 담담하게, 조금 덜 다듬어진 흙길을 밟듯이 지나가려 한다.
나와 같은 길을 지나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