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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진 Oct 22. 2023

엄마GPT

챗GPT를 보면서 신기하다, 대단하다 했지만

구동원리를 잘 따져보면 우리가 결국 이야기 만들 때 쓰는 메카니즘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존에 읽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플롯을 뽑아내고

그 플롯을 적당히 각색해서 줄거리를 만들고 키워드를 넣고

그 과정에서 인풋을 받아 전개를 변형하고...

물론 그게 표절과 다를 게 뭐 있냐! 라면 백번 공감합니다만.

사실 대부분의 창작은 모방을 잘 하는데서부터 시작하지요.

그런 거 없는 진정한 창작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게 세상에 있다면 말이죠.


여튼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애들이 이야기를 해달라 해달라 조를 때 하루는 귀찮아서 챗GPT를 써본 적도 있습니다.

챗GPT에 키워드를 알려주고 이런 이런 이런 이야기 소재로 동화를 만들어줘~라고 물어본 다음 나오는 답변을 그대로 애들한테 읽어주는 거죠.

내 머리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나 AI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나 원리는 비슷하니 기술의 힘을 빌려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결정적인 부분에서 디테일이 떨어지더라고요?

이를테면 도깨비가 엄마아빠를 납치했을 때 내는 수수께끼라든가

절정의 순간에서 아이들을 자지러지게 하는 말장난이라든가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는 그럴듯하지만 뭔가 설익은 초안이랄까,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랄까.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전개되는 아무말 대잔치를 엿본 느낌이랄까.

챗GPT를 써보신 분이라면 다들 그 느낌 아실 겁니다.


그날, 결국 애들은 챗GPT에 실망해서 이게 뭐야~ 엄마가 직접 해 줘요~를 시전했고

나는 힘들지만 뭔가 뿌듯한 느낌으로 다시 엄마GPT를 구동했지요.

어차피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아무말 대잔치인 건 똑같지만

그래도 급이 다른 아무말 대잔치라는 것! 아이들이 만족하는 아무말 대잔치라는 점!

비록 엄마GPT가 챗GPT보다 학습한 콘텐츠는 적을지언정

우리가족에 특화된 맞춤형 학습경험은 AI보다 더 많다는 사실!

이렇게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 느낌으로 오늘도 인간 부심 부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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