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를 보면서 신기하다, 대단하다 했지만
구동원리를 잘 따져보면 우리가 결국 이야기 만들 때 쓰는 메카니즘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존에 읽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플롯을 뽑아내고
그 플롯을 적당히 각색해서 줄거리를 만들고 키워드를 넣고
그 과정에서 인풋을 받아 전개를 변형하고...
물론 그게 표절과 다를 게 뭐 있냐! 라면 백번 공감합니다만.
사실 대부분의 창작은 모방을 잘 하는데서부터 시작하지요.
그런 거 없는 진정한 창작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게 세상에 있다면 말이죠.
여튼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애들이 이야기를 해달라 해달라 조를 때 하루는 귀찮아서 챗GPT를 써본 적도 있습니다.
챗GPT에 키워드를 알려주고 이런 이런 이런 이야기 소재로 동화를 만들어줘~라고 물어본 다음 나오는 답변을 그대로 애들한테 읽어주는 거죠.
내 머리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나 AI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나 원리는 비슷하니 기술의 힘을 빌려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결정적인 부분에서 디테일이 떨어지더라고요?
이를테면 도깨비가 엄마아빠를 납치했을 때 내는 수수께끼라든가
절정의 순간에서 아이들을 자지러지게 하는 말장난이라든가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는 그럴듯하지만 뭔가 설익은 초안이랄까,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랄까.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전개되는 아무말 대잔치를 엿본 느낌이랄까.
챗GPT를 써보신 분이라면 다들 그 느낌 아실 겁니다.
그날, 결국 애들은 챗GPT에 실망해서 이게 뭐야~ 엄마가 직접 해 줘요~를 시전했고
나는 힘들지만 뭔가 뿌듯한 느낌으로 다시 엄마GPT를 구동했지요.
어차피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아무말 대잔치인 건 똑같지만
그래도 급이 다른 아무말 대잔치라는 것! 아이들이 만족하는 아무말 대잔치라는 점!
비록 엄마GPT가 챗GPT보다 학습한 콘텐츠는 적을지언정
우리가족에 특화된 맞춤형 학습경험은 AI보다 더 많다는 사실!
이렇게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 느낌으로 오늘도 인간 부심 부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