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조건
능력자를 나의 멘토로 만드는 방법
요즘 직장은 리더 이상과 이하로 나뉜다. 이미 리더의 선을 넘어간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직장 평준화 시대. 선배의 탈을 쓰고 '야, 이런 건 니가 좀 해봐'를 겪어본 억울한 후배들이 많은 만큼, '저기요? 난 니가 누군지 관심없지만 이것 좀 해줄래?'하는 후배들도 많다. 오늘은 선배쪽으로 좀 더 기울어진 자세로 후배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공채 문화도 사라져가고, 입사하는 순간 모두 같은 '님'인 시대에 선후배를 가른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겉으로는 상관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보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에 많은 가르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정리된 재미없는 교육 프로그램을 몇개 던져놓고 '이제 교육을 다 했으니 알아서 해보도록' 이라고 말하는 회사가 많지만, 실전은 다르다.
난생 처음 협력사나 창업자를 미팅하는 자리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한 느낌.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진땀나는 감정을 모른다. 이런 무지랭이 같은 내가 우리 회사를 대표해서 앉아있다니. 자괴감이 들 뿐이다. 자리로 돌아오면 정신없이 일에 빠져있는 선배들이 보인다. 누구에게 물어보지?
실무란 그 어떤 매뉴얼에도 나와있지 않은 노하우의 집합체이다. 업무의 디테일과 시행착오를 미리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면, 혼자 어둠의 터널 같은 삽질의 시간을 길게 겪어야 한다. 예전 같으면 투덜대면서도 밀어주고 끌어주고 옆에 앉혀놓고 하나하나 알려주던 선배들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 직장은 다르다.
어느 순간부터 선배들이 달라졌을까? 직급이 사라진 시대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없이 수시로 업무도발을 해오는 사람들이 많다. 알려줘도 '니가 뭔데'라는 시선도 있으며, 나의 시간을 할애함에 전혀 고마워하지도 않고, 언제 그들이 치고 올라올지도 모를 노릇이다.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각자도생을 택하고 있다.
자신만의 내공을 꽁꽁 숨기고 앞으로 나아가는 선배들과 나보다 더 높은 능력을 탑재해서 줄줄이 입사하는 후배들. 이렇게 삭막한 세상에 멘토 하나 없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능력자 선배를 나의 멘토로 만드는 방법. 꼭 신입사원이 아니어도 새로운 조직에 발령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스킬이다.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
이를 통틀어 '후배의 조건'이라고 칭해본다.
많은 신입사원들이 처음 팀에 오면, 방긋방긋 웃으며 팀의 웃음 바이러스를 자처하는 경우가 있다. 예쁨 받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인간의 본성 같은 것이다. 특히 여직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 "우리 팀의 꽃은 OOO씨이지, 허허."
그러나 예쁜 후배가 되라는 건, 살랑살랑 웃으며 팀의 꽃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꼰대 팀장은 '어떤 팀에 가면 갈 때마다 그 여직원이 너무 방긋방긋 웃어서 기분이 좋다'며, 대체로 표정이 없는 우리 팀 여직원들 보고 그녀를 본받으라는듯 말한 적이 있다. 아니, 여기가 술집인가? 니가 팀에 오면 내가 웃어야 되는 거니?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 직장에도 정훈병과가 있다면, 둘다 정신교육 확실히 시켜줄 수 있는데, 아쉽다.
막간을 이용해 꼰대들에게 말하자면, 제발 정신차려라. 우리는 웃으려고 여기 온게 아니라 일하려고 온 거다. 니가 웃긴 얘길 안했는데 내가 웃을 이유는 없다.
우리 팀에는 선배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막내가 있다. 이직 초반에도 나의 자잘한 업무 도구들을 챙겨주던 후배였다. 매년 마지막 날이면 팀원들에게 손카드를 쓰는 학생 감수성이 있는 친구이다. 몇 년을 같이 지내다보니 나도 자연스레 '저 친구는 참 예쁘다' 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카드를 잘 쓰고, 잘 웃어서가 아니다.
그 후배가 주변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먼저 알아보려고 하는 태도'이다.
선배가 어떤 걸 묻거나 요청했을 때 그 후배는 늘 '제가 알아보겠습니다.'가 1번 대답이다. 본인 업무가 끝나면 재빠르게 일어나 바로 알아보고 최대한 빨리 답을 준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조의금 봉투든, 인사 시스템 조작방법이든, 명찰신청이든. 그 친구의 직급이 높은 편은 아니다보니 보통 주변에서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하는데, 그것이 업무에 대한 것이든 팀 생활에 대한 것이든 그 친구는 늘 진심으로 도우려고 한다.
팀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던 어느 날, 늘 밥을 빨리 먹는 내게 누군가 '작은 숟가락으로 먹어야한다'고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사관학교 버릇 못 버리고 10년째 빨리 먹는 중, 습관은 빨리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 이 참에 천천히 먹고 다이어트도 하자'라는 이야기가 지나간 어느 날, 그 후배가 진짜 작은 숟가락을 선물로 사왔다.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눈치와 센스, 그리고 배려. 그와 업무적인 접점이 없는 나 조차도 '예쁜 후배'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지금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언지 빠르게 파악하고, 본인이 먼저 해결해보려는하는 태도 때문이다. 모르는 걸 덮어놓고 물어보기만하는 많은 후배들을 겪어보니, 그녀가 남들보다 나은 지점이 있는 건 확실하다.
평소에 그렇게 행동하던 친구가 내게 업무를 물어온다면 다른 어떤 사람이 물어보는 것보다 자세하게 시행착오 없이 해결할 수 있도록 대답하게 된다. 이게 핵심이다.
또 하나, 이건 내가 쓰는 방법인데 상대방을 '인간 그 자체'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스무살 때부터 극작을 해왔던 나는 사람을 하나의 캐릭터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인간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다. 모두가 혀를 내두르는 이상한 상사가 있으면 그의 행동과 패턴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나중에 대박나는 드라마의 감초 악역이 될 수 있는, 내겐 아주 좋은 재료이다. 캐릭터의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 인생 그 따위로 살아줘서 땡큐.
누군가를 처음 만나 약간의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 나는 그가 어디서 왔고, 어떤 업무를 했는지, 지금 어떤지 등의 히스토리를 묻는 편이다.
상대방의 짧은 역사를 들어보면 누군가는 여러번 직장을 옮긴 이직 능력자이고,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한 신기한 프로젝트를 해본 사람이고, 누군가는 해외에서, 누군가는 작게 나마 자기 사업을 하다가 온 사람도 있다. 묻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개인의 역사이다.
알고보면 배울 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저 사람은 일을 왜 저렇게 못해?' 라고 생각한 사람도 독특한 역사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일 못함을 미워하되, 사람을 싫어하지마라. 그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알려주고, 그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을 받는 것도 비지니스적인 인간관계의 한 방법이다.
능력자를 나의 멘토로 만드는 방법은 내가 먼저 후배가 되는 것이다.
모든 사업구조를 꿰뚫고 있는 높은 직급의 임원도 최신 핸드폰의 조작방법은 한참어린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야할 때가 있다. 평소에 아랫사람을 존중해오던 분이라면 친절하게 답해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라면 묻는 것에는 답하겠지만, 돌아서서 왜 자기 개인적인 것까지 회사 직원을 동원하냐며 블라인드에 글이 오를 것이다.
댓글 : 회사 직원이 집사임? 개꼰대, 집에 갈 때가 되었네.
업무적인 면에서는 내가 그의 선배일지 모르지만, 그가 후배이든 협력사 담당자이든 어떤 면에서는 그 누군가가 나의 선배이다. IT를 잘 아는 사람에겐 IT를 묻고, 집을 먼저 샀던 지인에게는 집 살때 중점을 묻고, 이직한 사람에겐 이직 노하우를 묻는 것은 인생살이 꿀팁이다. 유능한 선배들을 가능한 많이 내 사람으로 포섭하는 것 역시 직장생활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첫 걸음이다.
'내가 제일 잘 나가?'세상의 모든 것을 내가 다 알 수 있을까?남의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물어볼 선배가 없는 외톨이가 될 수 있다.
가장 유능한 사람은 가장 배움에 힘쓰는 사람이다. - 괴테 -
회사에선 사람을 배운다. 어떤 사람에게선 멋진 능력을, 어떤 사람에게선 경이로운 아부를, 어떤 사람에게선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인생의 다짐을 배운다. 후배님들은 알려주고 싶은 후배가 되고, 선배님들은 알려줄 수 있는 지성과 능력을 겸비하자. 우리모두 좋은 선배이자 예쁜 후배가 되는 그날까지.
[인간관계 꿀팁]
-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한번만 생각해보자. 작은 것을 주면 큰 것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
by. 요즘직장생존법, M과장
ps. 2020.10.23~'요즘직장생존법'이 네이버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온라인 흙수저의 글도 누군가는 읽어주고 계시군요. 데이터 근거이다 보니 언제 사라질지 모를 스티커이지만 한 번이라도 경험하니, 기분은 매우 좋습니다. 더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잠시나마 행복했던 베스트셀러 스티커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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