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떨어지면 게을러지고 편안함을 찾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라는 생각에 체력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잠을 잘 자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지도 못하면서, 스스로의 컨디션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김태호 작가가 회사원들에 대해 그린 만화 '미생'에 나오는 대화를 마음 속에 새기고 살아간다.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 밖에 안돼."
건강에 민감한 것은 이십대에 크게 아팠던 경험 때문이다.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으며 스스로를 부축한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나름의 노력도 계속 한다.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꼭 몸과 마음의 건강 관리 방법을 캐묻는다. ‘어릴때부터 체력 하난 좋았지.’라는 말에 좌절하기도 하고, 몸에 좋다는 영양제, 운동, 명상 등을 꾸준히 챙기는 습관을 열심히 메모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강철처럼 버티는 남편의 몸이, 질투나고 부럽다. 사랑하는 대상의 체력을 질투하고 부러워한다는 것은 어쩐지 유치하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끌리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리라. 공공연하게 '술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끄떡 없이 가뿐해 보이는 그의 체력. 다음 날이 걱정되어 쉽게 잔을 꺽지 못하는 사람의 사정을 그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룬 성과들이 '체력' 때문이 아니라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덤덤히 말하곤 한다. 뛰어난 체력과 회복력을 근거리에서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부자가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 채, 노력으로만 재산을 일구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느끼는 그런 기분 말이다.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체력은 일을 지탱하는데 너무 중요한 요소였다. 남자 동료들과 늦게까지 술마신 다음날, 체력적으로 힘든건 말 못할 설움이었다. '여자라서'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진 않지만 인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곤 했다. 결국, 술자리 대신 선택한 생존법은 궃은 일을 조금 더 많이 떠맡는 것이었다. 티 안나는 많은 일들을 해온 시간들에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체력은 일순간이 아니라 천천히 오르내린다. 이는 '점진적 둔감화'를 일으키는 건강의 속성이다. 인내심이 낮아지고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된다. 어쩌면, 건강은 정직한 존재라고 여긴다. 퇴근 시간에 술집이 아닌 헬스장을 전전해야 겨우 최소한의 근육이 유지되기에, 그 시간에 조금 더 투자하며 살아간다.
미래에는 건강한 할멈이 되고 싶다. 함께 사는 이의 체력에 대한 질투, 그것이 동력이 되어 나는 조금씩 더 건강해져 갈 것이다. 마트 장바구니를 번쩍 들어주고, 집안의 가구를 스스로 옮기고, 둘만의 100m 달리기 시합에서 우승도 하고 싶다. 지금부터 차근 차근 체력 자본을 쌓아나갈 것이다. 과거의 허약함을 비웃으며 함께 산에 오르는 남편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