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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다 Aug 10. 2020

쉽게 쓰여진 유럽 여행기. #2

#2. 쾰른에 대해서

쾰른


 쾰른은 과거 한자동맹의 중심 도시이자 독일 최대 도시 중 하나였을 정도로 번성한 도시였지만 지금은 중앙역 근처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쾰른 대성당을 제외하면, 과거의 영광같은 느낌을 줄 만한 이렇다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유럽 배낭여행객이라면 한 번쯤은 들러 갈 수밖에 없는 곳이기도 했는데, 독일 철도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독일에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라고 수식할 만한 도시가 너무 많긴 하지만) 내가 쾰른을 선택한 이유도 프랑크푸르트에서 네덜란드를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쾰른을 지나쳐 가기 때문이 가장 컸다. 


 어쩐지 쾰른에 관한 이야기는 고딕체로 써야만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쾰른의 랜드마크인 쾰른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딕양식의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도시 내 모든 것들이 뾰족하고 직선적이며 수직 지향적으로 보인다. 중앙역에서 호스텔까지 가는 도로의 마찰계수 마저도 금세기 최고 수준을 지향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내 캐리어를 잡아 끌었다. 아스팔트라는 석유화학시대의 발명품을 으레 선호하지 않는 유럽의 도시 중에서도 쾰른의 돌 바닥은 최고다. 6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쾰른 대학에 도시공학과가 존재한다면,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졸업 논문 주제는 아마 ‘여행자의 캐리어 바퀴가 가장 잘 걸릴 수 있도록 하는 도로 타일 설계에 대한 공학적 접근’일 것이며, 그러한 논문은 여행자들의 부서진 바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쾰른시 여행가방 생산인 협동조합’의 후원을 받아 쓰여질 것이다. 


 일찍이 움베르트 에코는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쓰러지게 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통해 어리석음은 인류의 천부적인 특성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그 어리석은 바보들의 봉급이 얼마나 될까를 고민한 적이 있다. 그가 멍청한 여행용 가방을 가지고 쾰른을 여행했다면, 그리고 쾰른시 여행가방 생산인 협동조합과 쾰른 대학, 쾰른 시청 도시정책 담당관 사이의 삼각 카르텔을 알아차렸다면 그는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요컨대 인류 문명사의 최대 발명품으로 꼽히기도 하는 바퀴란 것은 쾰른의 도로타일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블리스터 포장법 같은 것이 된다. 가위가 필요해서 가위를 샀는데, 포장을 개봉하기 위해서는 가위가 반드시 필요한 그 딱딱한 플라스틱 포장 말이다. 아무리 뾰족한 것이 좋다지만, 바닥에 바퀴가 달린 가방을 머리에 이고 다녀야 하는 도시라니. 


 그러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만큼 고딕양식의 정수라 불리는 쾰른 대성당의 인상이 지울 수  없을만큼 대단하다는 소리다. 우선 고개를 끝까지 치켜 올려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다. 누구든 그 크기에 압도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상당히 아름답다. 기차를 타고 쾰른에 들어서게 되면 철길과 마주한 라인강을 따라 서서히 가까워지는 대성당을 볼 수 있는 데, 어서 빨리 기차에서 내려 한 눈에 저 대단한 건축물을 담고 싶다는 두근거림이 기차 소리만큼이나 크게 울린다. 그리고 중앙역에 내려 실제로 그것을 마주했을 때는 그 크기가 인간의 시야각을 압도하기 때문에 한 눈에 이것을 담는 다는 건 거의 불가능 한 일이구나 생각한다. 그래서 맹점이 없고 시야각도 훨씬 넓어 인류의 눈보다 진화론적으로 훨씬 더 완벽하다는 오징어의 눈을 가지고 싶다거나 하는 탄식 섞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쾰른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성당에서 시작해 성당 앞 광장에서 끝난다, 수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 아이들이 성당 앞 광장을 채우고 있었고, 버스킹 공연을 하는 이들이 항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쾰른 성당 계단에서 뒤집어 놓은 패인트 통, 돌 계단, 철제 난간, 자신의 허벅지만 가지고 버디 리치급 미친 연주를 보여주었던 어떤 연주가는 내가 쾰른을 다녀온 몇 년 뒤 유투브에서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쾰른에 가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특이하게도 실험용 메스실린더처럼 생긴 얇고 긴 잔에(마치 두루미가 여우를 골탕 먹이기 위해 만든 잔처럼 생겼다.) 담겨 나오는 쾰시라는 쾰른 맥주. 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친구가 추천해준 어느 호프집에서 끝도 없이 이 맥주를 들이켰는데, 내가 한 잔 더! 라고 외치지 않아도 종업원이 양손에 그 전용 잔들을 스무 개 가량 들고 다니며 빈 메스실린더를 가져가고 채워진 메스실린더를 계속해서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홀 안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쾰시를 마시고 있었고, 맥주를 따르는 사람은 기계처럼 메스실린더들을 채워서 서버에게 전달했다. 맥주가 콸콸 쏟아지는 디스펜서는 넓은 홀의 천장을 따라 거대한 파이프와 연결되어 이어졌다. 그 파이프들이 어디서부터 연결되어 오는지는 짐작이 불가능했지만 규모를 보았을 때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었다. 이 도시의 지하에는 수도관이 세 종류가 존재해야만 했다. 하수도와 상수도 그리고 맥주도.


 물 대신 맥주를 마시는 독일인 손님들과, 이에 지지 않기위해 날아 온 여행객들의 공동저작쯤 되는 그 맥주 회전율에 적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마 수백 잔의 쾰시 실린더가 필요했을 것이다. 내 자리에서는 기계처럼 실린더를 채우는 종업원의 작업 모습뿐만 아니라 그 수백의 실린더들이 어떻게 설거지 되는지가 훤히 보였는데, 정말 단순하게도 둘로 나뉜 싱크대의 한 쪽에는 거품을 가득 풀어놓고 다른 한 쪽에는 그냥 물을 담아둔 뒤 두 싱크대를 휙휙 거쳤다 나오는 방식이었다. 그 모습을 직접보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잔류세제 검사 따위를 할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그런 작업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반복되다 보면, 첫 번째 비누탕과 두 번째 헹굼탕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 보일만큼 양쪽 다 거품이 넘치기 마련인데, 적어도 내가 그곳에 있는 한두시간여 동안 그 비누탕 물을 새로이 간다거나 하는 일은 본적이 없다. 아마 한강 시민 수영장과 비슷한 주기로 환수를 실시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방금 받은 실린더의 하얀 거품이 처음 내가 생각했던대로 여전히 맥주 거품일까? pH14 정도의 염기성 거품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하게 될 텐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혈중 세제농도에 대한 고려나 NaOH를 중화하기 위한 HCl의 양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그들의 신들린 서빙과 설거지에 즐거워하며 그 후로도 몇 잔의 쾰시 맥주를 기쁨에 넘쳐 마시는 사람이었다. 



쉽게 쓰여진 유럽 여행기#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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