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프라하로 가는 길에 대해서
프라하로 가는 길
암스테르담에서 다음 도시인 프라하에 가기 위해 나는 야간 열차를 이용했다. 여름 성수기의 경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탑승조차 할 수 없기에, 한국에서 미리 기차표를 예약하고 갔었다. 만약 당신이 현지(유럽 내)에서 이 야간 열차 티켓을 구입할 경우 좌석 선택이 가능하나, 유레일 패스 소지자의 경우 온라인 예매 시 추가 비용을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좌석선택이 불가능하다. (EU내 모든 국가, 심지어 편리하고 정확하기로 소문난 독일 철도청에서도 전부 마찬가지이다. 담합을 한 것은 아닌지 조사가 필요하다.) 이것은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는 정책일 수 밖에 없는데, 유레일 패스 자체가 비 유럽 국가 거주자 전용으로 발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유레일 패스를 발급 받은 후 야간열차의 좌석을 선택하고 싶다면, 13시간 정도(베트남 항공을 이용하는 한국인이라면 20시간) 비행기를 타고 유럽 현지에서 기차표를 예약한 뒤 다시 13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 다시 동일한 방법으로 여행을 와야 한다는 뜻이다.
침대 칸이 있는 야간 열차를 타는 데 있어 좌석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절대로 3층으로 되어있는 침대들 중 가운데 침대를 사용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여행 이전에 이용했던 파리의 야간 열차를 포함, 3번의 야간 열차를 이용하면서, 온라인 예매시 임의로 배정되는 침대 칸에서 항상 가운데 끼인 칸을 받는 불운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이것도 담합의 일종이 아닌가 의심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쿠셋’이라고 불리는 이 침대 칸은 해군 초계함들의 군용 침대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해군 출신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 침대들은 한 쪽 면이 벽에 붙어 있는 3층짜리 침대로, 일단 침대에 누운 후에는 전신 마취를 한 뒤 수술대에 올라온 것처럼 절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기 코에서 위 침대와의 간격을 측정하는데 손가락 한마디 정도면 충분한 정도의 틈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야간열차의 침대들은 한 뼘 정도로 그 틈이 좀 여유로운 편이다. 해군 침대 위에서는 옆으로 돌아눕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야간열차에선 돌아눕는 것도 가능하니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곳에서 잠을 잘 땐 항상 전범 수용소의 6인실 수감자가 된 기분을 느낀다.
따라서, 이 침대칸의 상석은 누가 뭐래도 제일 위층인 3층이다. 천장까지 공간이 여유로울 뿐 만 아니라(심지어 고개를 약간만 숙이면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머리 맡에 짐을 올릴 수 있는 공간도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1층으로, 짐 관리가 편하고, 밤에 소변이 마려워도 몸을 조금만 돌리면 복도로 나올 수 있다. 반면 가운데 침대를 이용하는 사람은 이리 저리 몸을 굴려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애를 쓰다 결국 실패해 그 자리에서 실례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잠들기 전에 반드시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기저귀를 차고 자야 하는 불편함만이 존재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가운데 침대가 적혀 나온 내 예약들을 보자마자, 독일과 프랑스 철도청(이후 다시 한 번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기로 되어있었다.)에 각각 메일을 보내 맨 위층 침대를 원하며, 정 안 되면 아래 침대라도 달라는 메일을 보냈으나, “만약 당신이 현지의 어느 기차역이든 방문한다면 예약을 변경 할 수 있을 겁니다!”라는 대책 없이 유쾌한 어조의 똑같은 답장 두 통만이 돌아왔다.(다시 한 번 담함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프랑크푸르트로 잠깐 돌아가 보면, 나는 이 이메일 응답을 토대로 그때 만났던 독일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나의 예약을 변경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러자 우릴 응대했던 철도청 직원은 나의 요구가 독일 철도청을 휘청거리게 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의 몸값 요구라도 되는 것처럼 심각한 표정과 어조로 내 친구에게 독일어로 답변 했고, 내 친구는 좌석 예약 변경은 불가능하다, 만약 정 원한다면 예약비에 육박하는 금액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그 철도청 직원의 표정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유쾌하게 메일을 보낸 그 직원이 그 문장을 복사해 붙여 넣을 때의 표정도 이랬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이들은 불가능한 것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놓아 줄 것처럼 하다가 다시 잡아 날개를 망가트리는 잠자리 살인마들처럼 희망을 고문한다. 그날 아침 프랑크푸르트 호스텔의 리셉션 직원 역시 그러했던 것처럼.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도, 나는 꼼작 없이 가운데 침대에서 밤새 소변을 참아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침통함을 감추지 못한 채 시간에 맞춰 기차에 올랐다. 짐을 이리저리 끌고 내 침대가 있는 칸으로 가자, 인도인 가족으로 보이는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여성이 나와서는 자신과 자리를 바꿔주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다. 그녀의 티켓을 보니 맨 위층 침대였기에 나는 너무 기뻐 두말하지 않고 물론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어쩌면 이것은 앞으로의 여정은 탄탄대로일 것이라는 징표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5분 후 찾아온 검표원에게 우리가 자리를 교체한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리고 나서야 그것이 경솔한 생각이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그것은 불가능하며 당신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의미의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내 말을 알아듣더니 아! 그런거였소? 그럼 문제없소! 진작 말하지 친구여! 라는 대답을 주었다. 마치 돈오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한 시간의 점수 과정을 거쳤다는 듯이.
나의 경솔함에 대한 벌로, 독일 철도청은 나에게 8시간 연착이라는 시련을 주었다. 분명히 아침 9시 정도엔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해있어야 할 열차는 오후 12시가 넘도록 독일과 체코의 국경조차 넘지 못하고 있었다. 20시간을 오직 기차 안에서 보내는 경험은 살아있는 한국인 중에선, 인도에서 열차를 타봤거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한 모험가들을 제외하면 비둘기호를 타고 20시간 정도 걸려 부산을 내려가 본 경험이 있는 배우 이순재 선생님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7박 8일짜리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게 된다.) 나의 객실 동행들은 최초로 유럽을 방문해 최초로 야간 열차를 타본 미국의 20대들이었는데, 나보다도 유럽 철도 시스템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도가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누구도 내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