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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 Feb 26. 2024

여덟 번째 로그아웃

이라고 쓰고 이사하다가 빡친 썰 2024년 2월 25일_1630_2210

2024년 2월 25일 일요일


드디어 본가 생활을 정리하고 이사를 했다. 며칠 전부터 자잘한 잡동사니들은 미리 옮겨두고, 어제 오전에는 용달을 불러 큰 가구(침대, 소파, 서랍 등)들을 옮겼다. 침대를 조립하고, 침실에 커튼을 달고, 부엌의 상하부장을 다시 다는 것까지 아빠가 해주시고 부모님은 떠나셨다. (그래봤자 본가와 차로 20분 거리) 그리고 이제부터 하나씩 짐 정리를 해 나갈 예정인데, 게으름을 떠느라 드레스룸의 행거를 늦게 주문하는 바람에 앞으로 한동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야 한다. 


사실 그것보다 이사한 집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 걱정이다. 하자 있는 부분을 여기서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오늘 안에 끝나지 않을 거 같지만, 일단 바닥 들뜸 현상도 심하고, 도배도 지저분하고,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스티커 자국으로 현관은 엉망이고, 현관에 이중 안전고리도 없고, 스토퍼도 없다. 진짜 아무렇게나 막 지은 집 같다. 입주 청소를 불렀는데도, 화장실 물때가 벗겨지지 않은 건 어쩔 도리가 없다. 현관 타일도 깨져있다. 서러운 을의 입장인 세입자로서 소심하게 몇 가지 요구해 봤으나, 은근히 이 정도는 다들 그냥 참고 사는데…라는 뉘앙스를 보이는 공인중개사와 한 두 개 바꾼다고 해서 아니 전부 고칠 수 있다고 해도 이 집에 대한 애정을 앞으로도 전혀 가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단념하게 됐다. 아, 그냥 살지 뭐… 내 집도 아닌데… (현관 타일은 임대인에 전달한다고 하였으나 아직 회신이 없다.) 


특히 이 집에서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부엌인데, 하부장은 그 유명한 체리색이었고 상부장은 과거에는 하얀색이었겠으나, 누렇게 바래져 굉장히 눈에 거슬렸다. 그리하여 이 집을 선택했을 때부터 셀프로 시트지를 붙일 작정이었다. 중개인은 예쁘게 바꾸는 건 뭐든 괜찮다고 해서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이내 후회했다. 힘들기도 하거니와 내 손재주를 (또) 과대평가하고 말았다. 결과물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겉면만 그럴싸할 뿐 문 안쪽까지 전부 깨끗하게 붙일 수가 없어서 열어보면 다시 체리색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의 다른 세입자(혹은 집주인)가 원상복구를 요구한다면, 나는 그 시트지를 그저 떼는 걸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워낙 오래된 가구들이라 시트를 떼면서 훼손될 가능성이 59000%이기 때문. 그건 2년 뒤의 내가 해결할 수밖에 없고, 어쨌든 이미 시작한 이상 후퇴 할 수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문 16개에 시트지를 붙였다. (벽에 고정되어 있는 테두리 부분이 엄청 힘듦)


이미 얘기를 시작한 김에 한 가지 더 털어놓자면, 입주 청소를 요청했는데 점검을 한 청소팀에서 창틀에 곰팡이 제거 추가 비용으로 10만 원을 요구했다. (이미 계약된 금액은 22만 원이었다.)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알겠다고 하고 슬며시 중개인에 집주인이 곰팡이 청소 비용의 일부를 부담해 줄 수 없는지 물어봐달라고 했지만, 중개인 선에서 딱 잘라 말했다. 곰팡이 청소 비용을 부담해 주는 임대인은 없다. 뭐 통상적으로 그렇다고 하니 나도 딱히 두 말하지 않고 알겠다고 했지만, 전 세입자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혹 집 구조상 곰팡이를 막지 못해서) 생긴 하자를 왜 내가 처리해야 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 금액이 과도한 거 같아 속상했다. 그리고 보통 투룸 청소는 3시간이면 충분하다 했던 청소팀은 5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러면서 전 세입자가 청소를 전혀 안 하시는 분이었던 거 같다며 슬며시 고충을 토로했다. 아무튼 전날(잔금일) 집이 비어진 상태에서 점검할 때, 이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수십 가지의 하자들 때문에 이 집에 대해 상당히 실망해 있던 상태였던지라, 청소 상태가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어도 그냥 단념해 버렸다.


아직도 해야 될 게 많다. 사야 할 게 수십 가지나 남아있고 (자잘한 제외하고도 식탁, 책꽂이, 부엌용 수납장 등), 고쳐야 할 것(예를 들면, 노란색으로 변해버린 부엌의 실리콘 교체, 현관에 남은 강력한 스티커 자국 등), 그리고 기사님이 방문하셔서 봐줘야 할 것(전 세입자가 이사 나가면서 찍힌 방문, 깨진 현관 타일 등)들도 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한 와중에 이사하면서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그래도 공간에서 리프레쉬할 수 있지 않을까도 기대도 했는데, 그 기대가 시작도 전에 꺾인 거 같아 속상하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나는 왜 이 집을 선택한 건지 의문이 드는 동시에 왜 나는 늘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걸까 자괴감까지 나아가는 건 요즘 내가 너무 우울한 탓이기도 하다. 어휴, 2년 뒤에는 좋은 집으로 이사 가야지. 


1630 – 1715 이사한 집에 대한 실망감 + 고충 토로


1715 – 1915 침실 정리

40프로 정도 정리된 듯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가구 배치만 했다.


[추가적으로 더 해야 할 것들]

침대 프레임 시트지 작업(테이프로 포장했던 부분을 떼어냈는데, 가구가 같이 벗겨짐...)

침대 침구 바꾸기 (무슨 색으로 할지 세상 고민 중)

소파 커버 세탁 후 씌우기(소파를 침실에 두기로 함)

멀티플러그 세팅 및 전선 정리 작업

침대 수납장 정리하고 채우기

진열장 채우기

벗겨진 벽지 부분 채우기(실크 벽지가 아니라서 뭘 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벽시계 달기(못질하기 싫은데…)

러그 깔기

머리맡 창문 블라인드 설치


1925 – 2130 싱크대 실리콘 셀프 교체 -> 망함

부엌이 최악인데, 앞서 말한 체리색 하부장은 어찌어찌하여 노란색 시트지를 입히는 거 까진 했다. 타일에도 시트를 붙이려고 했으나, 서랍장처럼 탈부착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기존 타일이 울퉁불퉁한 거라 깔끔하게 붙일 자신도 없어서 그냥 눈을 감기로 했다. 대신 노란색으로 변색된 실리콘을 교체하려고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역시나 실리콘 기능장이 있는 이유가 있다. 망했다. 다시 한번 나의 똥손을 망각하고 과신했다. 노란 실리콘을 벗겨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실리콘을 짜고 헤라로 고르게 펴는 작업은 완전히 망쳐서 아예 다시 들어냈다. 게다가 실리콘도 다 써버려서 새로 사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2시간 가까이 실리콘과 씨름했더니 한 시간 후부터는 왼쪽 눈밑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2130 – 2200 작은방(드레스룸이 될 예정)에 아직 풀지 못한 짐 욱여넣기… (언제 정리하지?)



이번주 로그아웃은 집 정리하다가 끝났다. 중간에 다이소에 다녀오고 싶었는데, 대략적인 위치는 검색한 적이 있지만 낯선 동네라 핸드폰 없이 다녀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가지 않았다. 핸드폰 켜서 지도만 잠깐 확인했어도 되는데, 이럴 땐 꼭 쓸데없는 아집을 부린다. 또 침실 정리와 실리콘 작업을 마무리하고 책 읽으러 근처 카페에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실리콘 작업은 마치지도 못했다. 어쨌든 아침부터 꼬박 열두 시간을 움직였는데, 아직 며칠이나 더 짐을 풀고 정리해야 할지 걱정스럽다. (난 짐도 별로 없는데... 이 집에 수납할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게 문제) 


새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 더불어 이번주는 여러모로 고달픈 일이 많았다. 남몰래 펑펑 울기도 했다. 예전에는 부러 밝은 척도 잘하고, 힘든가 싶다가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탄력회복성이 꽤 높았는데, 이번에는 꽤 오랜 시간 침잠한 마음이 부유하지 않는다. 집을 꾸리는 일도 마음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도 너무 한꺼번에 하려 하지 말고, 하나씩 차분히 차근히 풀어가보자.


2210 끝. 

5시간 40분. 20분을 어떻게든 채울 수 있었겠지만, 이 적막에서 어서 깨어나고 싶다. 이제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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