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3일_1120_1940
2024년 3월 23일 토요일
1120 OFF
백수의 일주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일주일에 다섯 번 웨이트를 하고, 이틀은 쉬고, 그 쉬는 이틀 중에 하루는 클라이밍을 한다. 15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에 다녀오기만 해도 한 나절이 지나간다. 클라이밍 하러 서울에 다녀오면 하루가 끝난다. 친구와 약속이 있는 날도 점심이든 저녁이든 상관없이 하루 중 다른 걸 할 여력이 없다. 몸이 느려진 건지, 뇌가 느려진 건지, 정말 그 둘 다인 건지. 게으른 몸과 정신과는 다르게 늘 시간은 성실해서 내가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이미 게을러진 몸과 마음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가 버렸다.
늘 생각한다. 인스타그램에 너무 자주 접속하지 말아야지. 나는 팔로우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 수를 늘리고 싶어 집착하는 사람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늘 접속한다. 괜히 들어갔다가 숏콘텐츠만 하릴없이 보며 무한 스크롤을 내리고 있다 보면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 싶은 생각에 껐다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접속한다. 이걸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통제해 보겠다고 앱 사용시간을 20분으로 제한해서 잠그는 방법도 사용해 봤지만, 그마저도 [15분 후에 다시 알리기] 버튼 한 번이면 다시 접속할 수 있다. 이 방법도 먹히지 않으면 아예 앱을 삭제하기도 하지만 또 얼마 못 간다. 이쯤 되면 병적으로 집착하는 게 맞는 듯하다.
숏콘텐츠를 시청하기도 하지만, 또 보잘것없는 내 하루의 일과 그 어느 부분을 전시하기도 하다. 나는 주로 '인스타스토리'에 사진을 올리는데, 보통은 운동 인증사진이다. 지금 내 일상에 운동뿐이라서 올릴 수 있는 게 그뿐이다. 최대한 남들의 일상은 안 보려고 하지만, 어쩌다가 보게 되면 자괴감만 들뿐이다. 남들의 해외여행사진, 럽스타그램, 결혼 준비 하는 일상을 보고 있으면 내 삶이 너무 비루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내가 전시할 수 있는 일상은 '나 이렇게 자기 관리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뿐인데. 그마저도 정말 자기 관리가 되고 있다면 이렇게 인스타그램을 하루에도 여러 번 삭제했다가 다시 받는 일을 반복하고 있진 않을 것 같다. 굳은 마음으로 정말 일주일 정도는 인스타그램을 삭제 한 채로 살아야지 마음먹은 지 3시간도 안 돼서 오늘 한 인바디 검사 결과를 인스타스토리에 너무 올리고 싶다. 나 이렇게 근육이 많다고(근육 많은 게 자랑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이걸 자랑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
인스타스토리에 무언가 올려야겠다는 강박(?)은 보잘것없는 일상이라도 부풀리고 과장한 단편을 전시하고 싶어 하는 심리와 더불어 한편으로는 유일하게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젠 친구들과의 만남도 부담스럽다. 외식하고 와인이라도 한 잔 하는 게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기도 하고, 여전히 놀고 있는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음이 무거워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던 전과는 달리 이제는 답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친구들과의 만남도 꺼려지고, 대화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인스타스토리를 통해 어쨌든 나는 여전히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걸 드러내려고 한다는 게 모순적이다. 세상과 연결은 되고 싶지만 그게 대화나 만남 같은 쌍방 소통은 또 부담스러운데, 일방적으로 나를 보여주는 거 까지는 아직 괜찮은 그런 단계라고 해야 될까?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런 강박적? 인스타그램의 접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시간이 시작됐다.
1220 - 1340 GYM ~ 가슴/어깨/팔 웨이트, 스텝밀(일명 '천국의 계단') 8분, 풀업머신 40kg*8회*3 Sets
어제의 비가 봄을 알리는 봄비였나 보다. 오늘로 완연한 봄이 되었다.
1440 - 1430 집에 와서 샤워
1430 - 1450 늦은 점심 ~ 커피, 바나나, 시리얼, 요거트, 깜빠뉴(w. 트러플크림치즈)
저녁에는 단백질을 챙겨 먹어야겠다.
1450 - 1550 독서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최근 읽은 책들 모두 두 번째 읽는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읽었던 책인지 몰라서 들었다가 계속 읽은 것도 있고, 분명 읽었었는데 기억이 안 나서 다시 읽거나, 처음 읽었을 때 좋아서 다시 읽어보고자 한 책도 있다. 이 책은 가장 후자의 책이다. 분명 좋았다고 기억하는 책이고 책의 여러 구절을 메모해 둔 흔적도 있는데,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적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낯선 단어들의 나열과 배치로 이루어진 수려한 문장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책으로 기억하는 까닭은 아마도 내 마음을 건드린 몇몇 문장이 있었을 까닭이겠다. 단지 그 몇 문장을 발견하기 위해 그 많은 시간 독서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중 그렇게 만난 단 하나의 문장이 내 하루를 움직이기도 하고, 때론 그 한 주를 살게 할 때도 있고, 어떤 때 삶을 다시 살아가게도 한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책을 읽고, 읽은 책을 또 읽는다.
1550 - 1640 이제는 빠지면 아쉬운 낮잠타임
1640 - 1740 다시 독서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1740 - 1840 집안일 ~ 설거지, 토스터 청소, 세탁기 돌리기, 청소기+걸레질
집안일은 늘 쌓여있다. 이삼일만 지나도 뭉근하게 먼지가 쌓인다. 머리카락은 늘 눈엣가시다. 왜 아직도 대머리가 아닌지 늘 의심스럽다. 설거지는 어떻고. 숨만 쉬어도 쓰레기가 넘친다. 나는 환경파괴범이다. 조금이라도 커피맛을 보전하려면 커피메이커도 자주 세척해줘야 한다. 청소기에 먼지통은 얼마나 자주 갈아주고, 또 얼마나 자주 필터를 빨아야 하는지. 필터를 바짝 말리기 위해 날씨 확인도 해야 된다. 토스터 빵 부스러기라도 한 번 터는 날이면 집어넣었던 청소기를 다시 꺼내야 되고, 식초를 넣고 끓인 주전자는 식초냄새를 빼기 위해 몇 번이고 멀쩡한 물을 버려야 하는지. (휴우)
1840 - 1905 저녁 ~ 닭안심살 샐러드
점심을 늦게 먹었는데 벌써 배고프다. 왠지 야식을 또 먹을 모양새다. (결국 먹었다.)
1905 - 1925 명상
처음 명상을 해 본 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였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생전 해 보지 않았던 명상을 시도해 봤다. 아닌 척 괜찮은 척 영원히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사람인 양 지냈다지만 어딘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아침에 명상을 하니 꽤 개운했고, 잠이 달아났다. 명상이 끝나면 마테차를 마시며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오랜만에 다시 명상이 하고 싶어졌다.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말들을 되뇌는 그런 명상이 아니라 호흡을 가다듬고 오로지 10분간 나에게 집중하는 명상. 비우는 시간이 아니라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들을 관찰하는 시간. 그러나 나는 되도록이면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대게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눈감고 명상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 보고 있다고 상상하며 나를 떠올린다. 혹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실에서 명상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두 모습을 번갈아가며 떠올리다가 문득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생각이 튀려고 할 때쯤 다시 호흡에 집중한다. 내뱉어진 호흡이 만들 길을 상상한다. 그렇게 몸의 긴장을 풀고 최대한 호흡에 집중하려는데, 긴장이 덜 풀린 탓인지 가슴께가 묵직하고 답답하다. 오늘 가슴 운동을 해서 그런지, 밥을 먹고 난 직후라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가슴이 답답한 건지 알 도리가 없다. 가만히 가슴 명치께를 눌러본다. 확실히 딱딱하고 아프다. 그래도 10분 간 최대한 몸에 긴장을 풀고 호흡에 집중해 보자.
그런데 몸이 이완되기는커녕 명치께가 더 뻐근해지는 거 같다. 마침내 10분 명상이 종료되고 싱잉볼 소리가 댕 하고 울리자 묵힌 숨을 토해내듯 내뱉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심장박동수가 오히려 더 올랐다. 심장이 펌핑하며 눈물샘을 자극한 건지 종국에 눈물도 나올 것 같았다. 이건 명상을 하고자 했을 때 내가 기대했던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아무래도 무슨 탈이 난 모양이다.
1940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