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은 안성탕면]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두고 작년에는 뭐했더라 돌아보았습니다. 작년, 2020년은 거의 모든 것이 코로나로 뒤덮여 다른 기억은 좀 희미했던 해였습니다. 곧 나아질까, 겨울이 지나면 나아질까 막연히 기대감을 품은채 찬바람이 부는 날들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사계절이 지났고 어김없이 겨울도 다시 왔지만 팬데믹 상황이 그리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어디든 적응해서 살기 마련이라는 말이 맞나봅니다. 올 한해, 2021년은 코로나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 우연히 듣게된 지역평생학습관의 글쓰기 온라인강좌가 생각납니다. 숙제로 자의반 타의반 글을 한두장씩 쓰게 되면서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퍽 달라진 제 자신을 느낍니다. 가끔 일기나 끄적이던 제가 '브런치'라는 곳에 입성하며 세상밖으로 고개를 내밀게 된 것도 그덕분이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글쓰기수업이라 그런지, 더 감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삶을 좀더 긍정하게 되었다랄까요?
어설프더라도 무언가를 쓰고 글벗님들과 주고 받는 안부, 그걸로 충분히 좋은 날들이 계속될 것만 같습니다.
글을 읽고 쓰고 나누는 벗님들에게 인사를 보내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추억하는 글을 올립니다. <좋은 생각> 21.12월호에 에세이로 짤막하게 실리기도 했습니다.
2020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홈페이지에 공고가 하나 올라왔다. ‘방역 도우미 모집 공고’란 제목의 구인 글이었다. 진지한 마음으로 지원서를 제출한 건 아니었다. 몇 개월을 두문불출하며 집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하다 보니 그냥 아무 핑계를 대서라도 외출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서류를 내고 면접을 가보니 지원자는 총 6명이었고 그중 학부모는 나 혼자였다. 학부모라는 것이 가점이 되었는지 감점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몇 가지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비록 아르바이트였지만, 6년 만에 ‘출근’이란 걸 하게 되었다.
나의 근무시간은 3시간, 아침 8시 반부터 11시 반까지였다. 11시 반부터 2시 반까지는 다른 근무자가 있었다. 나는 오전 방역 선생님, 다른 근무자분은 오후 방역 선생님으로 불렸다. 방역 도우미로서 할 일은 등교하는 학생들 발열체크를 하고 복도 및 교실문 등 손이 닿을 만한 곳을 모두 닦으며 소독하는 일이었다. 소독약, 일회용 장갑, 소독 티슈 등을 떨어지지 않게 챙기는 일도 포함이었다.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이 컸던 시기라 막상 출근하고 보니 꽤나 긴장이 되었다. 일하러 와서 폐 끼치면 안 된다는 마음에 마스크도 단단히 쓰고 소독도 열심히 했다.
아이들이 모두 교실에 있는 수업시간에는 복도를 오가며 교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기도 했다. 오전 시간에 학교 안을 누비는 사람은 나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시는 아주머니, 이렇게 두 명뿐이었다.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눈인사를 건네곤 했고,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동지애 같은 게 느껴졌다.
12월이 되자 학교 복도는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옷을 여러 겹 단단히 챙겨 입으며 신경을 썼으나 겨울 찬바람을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등교시간 전에 학교에 나가 발열체크 기계를 점검하고 정문 앞에 서있으면 손과 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지곤 했다. 알고 보니 이전에 근무하시던 방역 도우미분은 추워서 못하시겠다고 그만두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학부모라는 이름이 하나 더 달려있던 나에겐 추위보다 약속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다. 겨울방학이 시작될 때 까지는 근무해야 해서 한 달만 힘내자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하루는 집안 사정으로 나가기 어려운 날이 생겼는데, 마침 오후 방역 선생님도 다른 날 일이 생긴터라 서로 번갈아 하루씩 풀타임으로 근무하기로 했다. 내가 일이 있는 날은 오후 방역 선생님이, 오후 방역 선생님이 안 되는 날은 내가, 하루 6시간을 이어서 근무하기로 했다. 내가 6시간을 이어서 일하게 된 날은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별로 특별하다 생각하진 않았다. 어른인 나에게는 다음날이 휴일이고 아이들 선물을 챙기는 날이었을 뿐이었다.
그 날, 근무시간이 3시간에서 6시간으로 두 배가 늘어나자 좀 지루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덧 조용한 오전 시간이 지나고 12시가 가까워오면서 학교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급식실 앞에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줄지어 섰고, 나는 그 앞에서 떨어져 서서 학생들이 거리두기를 하는지 지켜보며 점심시간을 보냈다. 식사 시간이라 출출한 감도 있었지만 하루만 급식실을 이용하기는 어색하기도 어정쩡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 1층 복도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환경미화원 아주머니가 급히 오시더니 2층으로 올라가자며 불렀다. 무슨 일이지? 얼떨결에 아주머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서 직원 휴게공간으로 따라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순간 훈훈한 기운이 훅 감싸는 게 느껴졌다. 그간 근무하면서도 와본적 없던 공간이었다. 아주머니는 쭈빗거리는 나를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는 작은 포트에 라면을 끓여주셨다. 그리고 내가 배고플까 봐 신경 쓰였다는 것과 라면 중에는 ‘안성탕면’이 제일 맛있다는 설명을 늘어놓으셨다. 아주머니와 매번 눈인사만 나누다가 갑자기 오랜 친구라도 만난 듯이 얘기를 나누게 되니 어색함과 미소가 절로 따라왔다. 계란이 없어서 크게 아쉬워하시는걸 나는 충분히 맛있고 감사하다고 거듭 말씀드리며 같이 라면을 나누어 먹었다. 학교 복도에서 으슬으슬 추위에 떨다가, 따스한 햇살 떨어지는 창가에 앉아 라면 국물의 김을 쐬며 면을 후루룩 입에 넣고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 날 남다른 풍미로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라면의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초코파이 광고에서 본 ‘정’이라는 글자가 내게는 ‘안성탕면’을 통해서 실현되었다고나 할까. 짧은 아르바이트 기간의 끝자락에 뜻밖의 호의를 받고 나서 나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바로 어른들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따뜻한 기운을 떠올리니 내년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 건네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