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즈 Dec 06. 2021

지혜를 찾아라

feat.탈무드

작은 아이는 서재 뒤지기를 좋아한다. 서재에는 남편이 결혼 전부터 써오던 넓직한 책상과 그와 세트인 서랍장 겸 책장이 있다. 이사를 여러 차례 하면서도 멀쩡하고 튼튼하여 처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안에는 여러 잡동사니가 있다. 주로 남편이 학생이거나 총각때 취미삼아 모으던 것들이다. 내가 잔소리를 해서인지 남편은 몇 차례 물건들을 정리하고 처분했는데 아직도 남은 것이 있나 보다. 작은 아이는 한 번씩 숨겨져 있던 추억의 물건들을 찾아내 놀이를 한다. 언젠가는 오래된 전자사전, 여행가서 사들인 자동차 모형을 발견하고 쾌재를 부르며 제 방으로 가져가 놀았다. 남편은 아쉬운듯 마지못해 아이에게 내어주기를 반복해왔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투박한 삼각대를 찾아내 놀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고 카메라를 세워두는 기구라고 설명을 들었다. 아이는  카메라도 달라고 응석을 부렸다. 그러나 아빠가 순순히 응해주지 않자 단념하고는 삼각대만 가지고 집안을 누볐다. 가만 지켜보았더니 삼각대를 세워두곤 카메라가 있는  처럼 자신을 찍는 시늉을 했다. 뭐하냐고 물어보니 Vlog찍는 중이란다. 하하하.... 참고로 작은 아이는 올해 10살이다. 없는  있는 것처럼 노는   어린 나이에 하는 놀이 아닌가, 오죽 심심했으면 저러고 노나, 이렇게 심심해할 때가 아닌데, 며칠  수학 단원평가 준비시켜야....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과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이제 내꺼야."

"너는 아빠꺼를 다 네꺼라고 하냐... 나 원, 그래, 니꺼해라. 대신 니가 내꺼다."

"아냐, 아빠가 내꺼야."

어휴 유치찬란한 대화가 오간다.


내가 시큰둥하게 쳐다보고 있자니 남편은 뭔가 생각난 듯 얘기를 꺼냈다. 그 있잖아, 옛날이야기인데 유산에 물려주고 하인이 등장하는. 서로 몇 마디 나누지 않고도 탈무드 이야기라는 것을 떠올렸다. 같은 시대 동일한 공교육을 받은 결과인가?


아무튼 아이에게 탈무드를 알려주면 좋겠다 싶어서, 우리는 기억을 더듬어서 줄거리를 말했다.

"들어봐, 예전에 부자인 어떤 노인이 있었는데, 아들이 멀리 다른 곳에 공부하러 가 있었데. 그런데 그 부자가 갑자기 중병에 걸려서 아들을 보지도 못하고 죽게 생긴 거야. 그래서 하인에게 유언을 남겼어. 모든 재산을 하인에게 물려주고 아들에게는 원하는 것을 단 한 가지만 주겠다고 말이야. 부자 노인이 죽고 하인은 모든 재산을 가질 생각에 기뻤겠지? 하인은 아들에게 노인의 죽음을 알리러 달려갔어.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퍼했고 유언을 전해 듣고는 고민에 빠졌어. 아들은 단 한가지 유산으로 과연 무엇을 골랐을까?"


"음, 아버지? 시체를 받아서 무덤을 만들어야 하니까."

엥? 정답은 아닌데 그럴듯했다. 아들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의지로 접수했지만, 나는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아니, 재산 중에서 고르는 거야."


갸우뚱하는 아이을 본 남편은 기다리지 못하고 정답을 알려주었다.

"하인을 고르면 재산도 모두다 가져오는 거잖아."


아이는 그런가? 하다가 무언가 해결이 안된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나는 아이의 얼굴에서 시대의 어긋남같은 걸 느껴졌다.

이 이야기는 현시대의 아이들에게 온전히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구나. 먼저 '하인'이라는 개념부터 낯설었다. 물론 어떤 것인지 짐작은 한다. 하인이란 시키는 일을 해주고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재산목록에 들어간다? 아이에게 이건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하인이라 해도 물건이 아닌 사람이므로. 또한 하인을 본인 소유라고 하면 그가 가진 것도 모두 가져올 수 있다? 이것도 이상하게 보인 듯 했다. 누군가 하인이 되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도 모두 주인소유가 되는 무자비한 세상을, 아이는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다.


탈무드는 지혜를 일깨운다. 유산처럼 지키고 전해져야 한다. 기존의 이런 생각도 고정관념이 된걸까? 하나의 토막글이라지만 탈무드가 이제 낡은 유물이 된 듯 느껴졌다. 어쩌면 변화된 시대에 따라 각색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종종 이런 순간을 맞닥뜨린다. 내가 유용하다 여기는 지식, 배우고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알려주고자 한다. 품고 있을때는 진주알처럼 여긴 것들이다. 그러나 막상 꺼내 보이면 돌멩이처럼 보인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니 그런 순간이 더욱 잦아진다. 그러다보면 내가 가르치는 쪽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처지인가 싶다. 배우고 변하고 적응해야 하는 건 바로 낡은 나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탈무드를 통해 한가지 깨달은 건 아닐까? 지혜란 한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며, 같은 줄거리라도 매번 다른 걸 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과 기록을 비교해보기 위해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탈무드>, 저자 마빈 토케이어 (2013, 브라운힐), 중에서

[어떤 유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고장에 살고 있는 한 지혜로운 유대인이 아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학교에 입학시켰다.
아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된 아버지는 아무래도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되리란 예감에 유서를 작성키로 마음먹었다. 재산 전부를 한 노예에게 물려주되, 그 가운데서 아들이 갖고자 하는 것 단 한 가지만은 아들에게 준다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그가 죽자, 노예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기뻐하며 예루살렘에 있는 아들에게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며 유서를 내보여 주자, 아들은 몹시 놀라면서 슬퍼했다.
장례식을 끝마친 다음 아들은 어찌 해야 좋을까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랍비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아버지께선 무엇 때문에 제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을까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살 만한 짓이라곤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요.”
“천만에! 너의 아버지는 너를 가슴속 깊이 사랑한 매우 지혜로운 분이셨다. 이 유서를 읽어 보면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지 않느냐.”
랍비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아버지같이 지혜로운 생각을 가지고 아버지께서 진정 바란 것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되짚어 본다면 너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 아들이라면 이 유서에서 어떤 사실을 발견해 낼 것인가?

“아버지는 너마저 없을 때 자신이 죽으면, 노예가 재산을 가지고 달아나거나 탕진해 버리거나 너에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숨겨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전 재산을 노예에게 준 것이다. 그 재산을 물려받은 노예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며 재빨리 너를 찾아갈 것이고, 재산 역시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라 여긴 것이지.”

“그것이 제게 어떤 이득이 된단 말입니까?”

“너는 역시 지혜롭지가 못하구나. 노예의 재산은 전부 주인에게 속해 있다는 걸 모르느냐? 너의 아버지께서는 한 가지만은 너에게 준다고 유서에 밝혀 놓지 않았느냐. 너는 전 재산을 물려받은 그 노예 한 사람만 택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가, 이 유서 내용이야말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담긴 지혜가 아니겠는가!”
뒤늦게나마 깨우친 아들은 랍비의 조언에 따랐고, 훗날 노예를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그러고는 노인의 지혜는 따라가기 어렵다고 입버릇처럼 뇌까리곤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올해 몇 권이나 읽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