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에스뚜디안떼!
27살 때의 일이다. 친구와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 당시 3년 차 직장인이었던 나는 연차를 끌어모으고 앞뒤로 공휴일을 붙여서 9박 10일의 휴가를 냈다. 같이 간 친구는 이미 여러 번의 해외여행 경험이 있었다. 한 번의 출장 외에 해외여행은 생소한 나에 비해 그 친구는 이미 베테랑 여행가였다. 자연스레 예약이나 일정 등의 준비과정을 그 친구에게 기대게 되었다. 비행기표를 끊고 출발을 기다리는 몇 개월간 내 안에서는 기대감과 부채감이 사이좋게 부풀어 올랐다. 그 때문인지, 뜬금없이 스페인어를 배워야겠다 결심했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도 여행은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현지어를 익혀가면 좋지 않을까. 나도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의 한몫을 해내며, 현지 사람들의 친절도 기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툰 우리말로 길을 물어오는 외국인들에게 괜히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것처럼.
서점에서 ‘스페인어 첫걸음의 모든 것’이란 책을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외국어 독학이라니. 요즘 같으면 ‘파파고’에게 도움을 청해볼 수도 있을텐데, 어학에 별반 소질이 없는 내겐 사실 무모한 일이었다. 낯선 외국어의 모든 것을 한걸음에 배워보려 호기롭게 책을 펼쳤다. 알파벳을 공유하므로 생김새는 영어와 제법 비슷하다 느끼며, 문법이 꽤나 복잡하다 갸우뚱하며. 낯설고도 낯선 거리감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출발일이 다가오자 조급해진 나는 짧은 문장들을 무작정 외우려 했다. 인사말과 행선지나 가격을 물어볼 때 쓸만한 문장들로. 그러나 스페인어로 물어본다 해도 역시 스페인어로 대답해줄 텐데, 그걸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어쩐지 모두 소용없는 일 같았다.
그러다 꼭 필요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에스뚜디안떼’. 스페인말로 ‘학생’이라는 단어였다. 서양인들 눈에 동양인은 몇 살 더 어려 보인다고 하던데. 사회인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어리숙한 외모와 얇은 지갑을 갖춘 나와 친구는 내심 학생할인을 기대하며 대학 학생증도 찾아둔 터였다. 에스뚜디안떼. 그래, 이 말은 꼭 써먹어 보겠어. 학습서를 뒤적이며 독학으로 익힌 몇 가지 단어를 이어서 중얼거렸다.
올라. 에레스 에스뚜디안떼. 꾸안또 에스? (Hola! Eres estudiante. Cuánto es?) - 학생인데 할인하면 표가 얼마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스페인의 네 도시(마드리드, 그라나다, 톨레로, 바르셀로나)를 누볐다. 20대의 튼실한 체력과 설렘을 갖추고, 기차를 타고 도시들을 이동하며, ‘솔’이나 ‘마요르’ 혹은 ‘카탈루냐’라고 불리는 광장들을 두 발로 꾹꾹 밟았다. 알려진 관광지들을 빠뜨리지 않고 찾아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알함브라 궁전, 프라도 미술관 등을 들어갈 때면 그 유명세와 활기에 전염되어 목소리의 톤이 올라갔다. 에레스 에스뚜디안떼. 스페인 사람들은 웃음이 많았고 밝고 친절했다. 지중해에서 넘어온 햇살은 더할 나위 없이 눈부셨고, 공기는 딱 기분 좋을 만큼 뜨거웠다. 열흘 내내 그 환한 에너지를 최대한 흡수하려고 애쓰며 들뜬 발걸음으로 돌아다녔다.
우리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바르셀로나에서 인천까지는 열 시간이 넘게 걸렸다. 여행지에서의 일들을 되짚어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영수증을 정리하고 일정과 소비한 액수를 되짚어 수첩에 끄적이며 간간이 여행책자를 들춰보던 나는 서서히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어딘가 묻어온 지중해의 햇살이 내 머릿속을 환하게 밝혀준 걸까? 스페인 사람들의 유독 크고 밝았던 환한 웃음. 그 미소의 의미. 서툰 발음으로 자신 있게 외쳤던, 내 입에서 나온 말의 진짜 뜻.
나는 줄곧 스페인 사람들에게 "너.는. 학생이야!"라고 외치며 표를 달라 손 내밀 곤 했던 것이었다.
내 인생의 흑역사 한 페이지를 정리해봤다. 그 당시에는 낯 뜨거웠으나 이렇게 적으니 그저 웃을 수 있는 추억으로 간직되어 즐겁다. 창피한, 난처한, 민망한, 무안한, 부끄러운... 사실 그런 일들이야 기억 창고에 수두룩하게 뒤엉켜있다. 이제 하나씩 조심스레 꺼내보며 뽀득뽀득 닦아서 차곡차곡 정리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