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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Jan 06. 2024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권리

누가 아직도 쓰고 읽는가?

독서 모임을 준비한 것은 지난 해 10월이었다. 


내가 독서모임은 북한을 나와 한국에 살고 있는 여성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만들었다. 코로나 덕분에(?) 나는 한국에 거주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국내 도시에 있지 않으면서도, 온라인이란 공간에서 두 선생님과 함께 매주 모임을 갖고 있다. 두 선생님 다 평소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시기에 모임에 열정도 있고 책임감도 강하신 편이다. 두 분 정도 더 계셨는데 지금 하시는 일들이 바쁘셔서 가까운 미래에 다시 합류하시겠다하시며 단톡방을 나가셨다. 


난 탈북 여성이란 단어는 쓰면서 탈북자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영어 뉴스나 해외 학술 논문을 보면 한국에 살든 중국에 살든 유럽에 살든 우리가 '새터민'이라고 부르는 의미에 더 맞게 '이민자 migrant/ immigrant' 또는 '난민 refugee'이란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언어라는 것은 참 신기하고 강력하다. 난 탈북이란 단어 자체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현실 그 자체로 '북조선을 나온' 이란 뜻으로만 한국 사람들에게도 인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언어의 사용의 문제를 politically correct - 정치적으로 옳게하기 -와도 관련이 깊다.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부르는 이름들이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했기에 섞어서 부르지만 '누가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서 정치적 문제가 된다.  


2017년 런던에서 석사 공부를 하면서 생전 처음 만난 '북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면서 북한 내부의 인권 현황과 탈북 후 중국에 이름없이, 국적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현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다수의 탈북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탈북할 기회가 많은 대신에 중국에서 겪어야 하는, 감당해야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정말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왔다. 사람의 생존력이라는 것은 어느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본능적이고 강력하다. 나는 그 생명력과 용기를 동경하고 존경한다. 평균적으로 탈북한 사람들이 한국까지 오는 데 평균 3년이 걸린다고 한다. 누구는 며칠만에 오기도하고, 어떤 이들은 7년, 10년이 지나서 오기도한다. 한국에 오는 이유도 다양하다. 어디서 살기로 하든 그것은 누구의 선택도 아닌 그들의 선택이고 그것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미비할 수도 있고 기적같은 독서 모임을 직접 운영하기까지는 지난 4년 동안 북한 인권 단체에서의 인턴십, 비정기적 번역/통역 자원봉사, 작년 겨울부터 박사 연구까지 마침내 하게 되었음에도 조직이나 기관에 '취업'을 하지 않고, 이름 없는 '봉사자' 지위를 벗어나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무언가를 만들고 더불어 (희망컨데) 기여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컸다. 다시 말해, 지난 4년 간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주변만 기웃기웃하고 정작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컸다.  


생각보다 모집 과정은 쉽지 않았다. 탈북 청소년, 대학생들과 함께하는 캠페인, 멘토링은 그래도 자리를 잡고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으나 성인 여성들의 활동에는 합창단, 정기 취미반 모임 등을 운영하는 소수의 여성 단체들이 전부였다. 책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은 찾아 보기가 힘들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홍보를 해야할지 막막했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북한 관련 연구자 분들, 관련 기관에서 일을 하시는 선생님들, 아는 탈북 선생님들, 탈북 과정을 돕는 선교 단체 등 정말 다양한 곳에 연락을 돌리고 나름 공고 모집문도 만들어서 활동 취지와 목표가 담긴 제안서와 함께 보내드렸다. 대부분 알아보겠다, 주변에 홍보 해 보겠다, 이런 말씀만 하시고 실제로 그 뒤에 다시 연락이 온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친절히도 주변에 그럴 만한 사람이 없는것 같다며 연락이 오신 한 선생님을 붙잡고 통화로 긴급 상담신청을 했다. 그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여성분들은 한국에 오시면 정말 0살 아이처럼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해요. 그래서 이런 문화 생활을 즐기는 여유까지 갖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요. ... 그리고 북한에서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지 않기 때문에 독해에도 어려움이 있어서 거부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네요. ... 취지는 정말 좋고, 필요한 활동이라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어떡하죠..." 


그때 깨달았다. '아, 책을 읽는 것도 사치일 수 있구나.' 라고 말이다. 지금 함께 참여하고 있는 두 선생님도 사실 한 분은 철학으로 석사 공부를 하시고, 한 분은 블로그며 실제로 브런치에서도 활발히 소통하고 책도 쓰신 출간 작가분이시다. 두 분과 모임을 하면서도 이분들은 소수의, 예외적인 케이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그만두어야하나? 내가 사전 조사가 너무 부족했나? 그러니까 여태 독서 모임을 찾기가 힘들었던거지. 나만 몰랐던거야. 책 읽는 게 사치라고 여기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겠어? 무슨 댓가나 물질적 이득이 가는 것도 아닌데.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는 한 사람, 두 사람 지금 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숫자에 연연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지금 그런 상황이 안 되는 것이 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독서가 사치이거나 어려운 일이 되어서는 안 될것이다. 그 어느 누구에게든 말이다. 책을 읽는 것은 안식처가 되어야하고 지금 내 상황을 새로운 눈으로, 타인의 삶과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그런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1월 첫 주부터 윤 선생님과 둘이서만 모임을 하다가 2월에는 5명, 그리고 3월은 다시 3명이 되었다. 우리의 활동이 쌓이고 쌓여서 조금씩 다른 분들도 들어오고 싶어하는 그런 독서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강 작가님의 말씀처럼 나중에는 남과 북이 함께 참여하고 벽을 허무는 그런 독서모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큰 꿈인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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