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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Mar 23. 2024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

양자리의  소망

베를린에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내가 공간에 집착하는 이유는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후에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안 하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공부만이 나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보였다. 집에서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책상도 없었고 내 방은, 아니 우리의 방은 나와 동생의 것이었다. 안그래도 좁은 방을 나의 욕심으로 채울 순 없었고, 짐을 보관하는 듯이 보이는 방에서 공부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집은 나에게 그저 씻고, 자고, 먹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아프리카 말라위에 가게 되었고, 흙으로 벽돌로 지어진 전기가 없는 집에서도 매일같이 쓸고 닦고 정돈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어쩌면 나는 충분히 내 공간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이런저런 핑계로 그 공간을 그저 실용적인 공간으로만 생가갛고 있었진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스물 셋, 한국 나이로 스물 넷의 나이에 대학교도 마치지 않고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3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보낸 것이. 그리고 크고 작고, 멋있고 안 멋있고를 떠나서 늘 내가 사는 공간은 내가 가꾸고 소중하게 할 때 그 공간의 가치가 생긴다는 것을 안 것이. 


그래서 지금 나만의 공간을 갖기 전부터 엑스와 함께 3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살면서도 그가 소홀하게 한 부분들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말라위에서부터의 습관은 지금의 나에게도 크든 작든 나에게 주어진 공간을 깨끗하게 존중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집 구하기가 좀처럼 어려운 베를린에서 나는 운이 좋게도 거저 지금의 집을 구했다. 특히나, 젊은 힙스터들이 살고 싶어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서울 성수동 같은 곳에 말이다! 엑스와 헤어진 후에 다시 살게 된 독일 친구이자 할아버지 같은 존재인 군타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군타 집에선 나가야 하고, 방 3개 짜리의 120 제곱미터 집을 넘겨 받기엔 외국인이자 학생 신분이 나에게는 가능성이 너무 적었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던 차에 같은 건물의 친구가 군타의 집으로 옮기고 싶다고 부동산에 연락을 했고, 부동산에서는 그 친구가 나에게 집을 넘겨주는 것을 허락해줬다. 그렇게 나는 옆 건물 1층에서 그 친구가 살던 건물의 0층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 친구의 집은 방 2개 아님 1.5개 방으로 혼자서 살기에 충분했고, 월세도 같은 지역의 다른 부동산에 비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들어올 수 잇었다. 


다만, 0층에 오래된 건물이라서 겨울엔 춥고 여름엔 습하지만 이것도 어떻게 더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바닥엔 이전에 살던 이웃이 해놓은 엉성한 마감처리 상태이지만 틈이 생긴 공간은 나뭇가지나 판자 따위로 메꾸고 답답해 보이는 공간은 트이게 만들면서 나만의 아늑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는 더 크고 발코니도 있는 햇볕이 잘 드는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같고 있다. 지금 공간을 그렇다고 불평만 하며 방치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평생 처음 갖은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인을 통해서 볕이 잘 들고 난방이 잘 되는 집으로 갈 기회도 있었지만 오랜 기간 살아보지도 않고 떠나는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뭔지 모를 저항감이 생겼다. 이사하며 드는 비용이나 노력에 대한 부담을 짓고 싶지 않은 이유도 물론있다. 아직 나는 박사 논문을 쓰고 있으니까... 괜히 방해요소를 추가적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어떤 공간이든 주인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공간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공간의 가치와 미적 감각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식물도 더 가꾸고 청소도 열심히 하며, 집중하고 쉬고 건강하게 먹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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