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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애 Mar 20. 2024

존재하지 않는 소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탈무드, 이솝우화, 한우와 유방, 그리스 로마 신화, 

학창시절 우리는 자발적이든 강제로든 다양한 이야기를 읽으며 살아가며 필요한 지혜를 얻는다.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창구는 이야기마다 결말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도 시각적, 미적 감각을 위한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개별적 인물과 성격이 가져오는 특정한 결말이 있기에 보게 된다. "저 남자는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사람이 저러면 안 되지" "내가 쟤 그럴 때부터 알아봤어!" 등등, 우리는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안도를 느끼고 그렇게 흘러갈 때, 묘한 정의감을 느낀다. 


타인의 삶을, 누군가의 삶을 그저 보고 읽기만 하면 그들의 (어떤 형식이든) 끝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읽는 이를 일종의 상위 위치에 놓는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각자 삶의) 주인공에게 결말을 강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건 타인으로부터 만들어지기도하고,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한계를 두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소셜 미디어며, 개인이 저작권을 갖는 이 시대에 그런 경향은 더욱더 심해져만 간다. 어떤 것이 해피엔딩이며, 좋은 결말이고, 어떤 것이 불행한 것인지 우리는 미리 가늠하며 아직 경험하지도 들어가지 않은 세계 속에 나를 구겨 넣는다. 


수기나 전기, 또는 자서전에 있어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는 모호하다. 이 경계를 저자도, 독자도 완전히 알 수 없다. 글이 만들어내는 힘이고 마법이다. 글로 쓰여진 것들은 나름의 명확성을 갖지만 그것의 해석되는 과정에서 주관성이 개입된다. 


나에게 최고의 서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한 사람은 별이 되었고, 한 사람은 바다 건너에 있다. 동갑내기 65년생, 부산 여자와 서울 남자의 이야기이다. 6남매 중 다섯 번째 딸인 여자와 큰 형을 둔 막내 남동생의 이야기이다. 별이 된 그의 이야기를 나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 


현재진형중인 여자는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별이 된 그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그가 자신만의 서사를 써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상처투성이지만 자기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감동받길 바란다.  그들의 힘겹고 강인한 생애 서사는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에겐 소설같은 이야기이지만 끝내 소설로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내 안에 살아 있고, 아직은 끝을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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