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 flame becomes fire
올해로 베를린에서 박사 논문을 쓴 지 4년차가 되었다. 실제 기간은 3년을 조금 넘겼지만 횟수로는 4년이 되었고 이 기간 동안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며 생활비를 벌고, 작년부터는 혼자 생애 처음으로 내 집의 주인 (월세를 내지만, 계약은 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이 되었고, 올해부터는 룸메이트 없이 혼자서 월세를 내며 생활하고 있다. 박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해도 (학계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고, 단지 베를린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려면 비자 연장을 해야 했기에, 나에게 가능했던 것 중에 하나로 박사 과정 지원을 했고, 끈질기게 지금의 지도 교수를 설득한 끝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박사생들이 그렇듯이 지도 교수의 연구를 도우며 연구 보조금을 받거나, 독일의 경우는 다양한 정치 재단에서 제공하는 장학금 (stipendium)을 받고 공부를 한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독일 정부 장학금을 노려보았다. 총 두 번 (매년 1회) 지원할 수 있는데, 두 번 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나의 능력 부족이겠지만 독일에서 학업을 한 경험이 없었고, 연구 주제도 독일에는 생소한 탈북 여성의 정치적 주체성을 연구한다는 것을 독일 면접관 교수들에게 설득을 잘 못했다. 지금에서야 학위 논문, 연구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것 같지만 막 박사를 시작했을 때만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도 교수 밑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다른 동료들을 콜로키움에서 만날 때마다 계속 주죽이 들었다. 나에 비해서 그들은 너무나 똑똑하고, 어딘가에서 장학금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지원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하는 연구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서 공개적으로 지도교수에게 매번 따끔한 비판을 받는 모습을 봤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더욱 상했다. 언젠가부턴 콜로키움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는 온갖 핑계를 머릿속에서 생각하며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억지로 누가 떠밀어서 시작한 공부도 아니고, 그만두고 쉽게 다른 일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내 나라도 아닌 곳에서 이것을 그만두면 나의 현지 거주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은 총체적으로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계속 도피적인 생각을 하던 나를 바꿔준 것은 결국 다시 내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내가 왜 이 연구를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왜 이런 접근을 하려고 하는지, 이 연구가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지도 교수도, 각자 자기만의 연구를 하는 동료들도 말해 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은 내가 어떻게 정당화하는지에 달린 것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잘 알아야 했고, 그렇게 나는 도피적인 생각에 갖혀서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까지도 소홀하게 다루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몰두해서 계속 읽고, 다시 쓰고, 도표를 그려보고, 연결 짓고, 다시 분리시키고 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그들을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 물론 그래도 지도 교수는 늘 '어딘가가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는 피드백을 줬고, 이제 겨우 구조를 맞춰가는 나에게 동료들은 이런 저런 소프트웨어를 써 가며 어떻게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는지 발표했다. 속에서는 정말 울고 싶고, 콜로키움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유럽에서 한국과 한반도의 정치적 문제로 연구를 하고, 거기서도 국제 관계적, 거시적 정치 문제가 아닌 탈북 여성의 정치적 행위성을 그들이 직접 쓴 수기/ 자서전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정치학도와 학자가 보기엔 무척이나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에, 이 연구를 구성한 연구자인 나의 설득과 정당화가 더 필요한 것이었다.
예전보다 그래도 스스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이상 숨거나 도망치기 보다는 어디에서 내가 더 발전해야 하는지, 그래서 언젠간 꼭 저들에게서 박수를 받겠다, 그것도 기립 박수를 받겠다는 시각화를 하며 하루하루 연구와 일체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물론, 혼자 타지에서 살면서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에 때론 집중을 잃을 때도 있지만,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는 이제 무엇이 나의 우선순위인지 알고 있다.
목표는 올해 말까지 논문 초안을 완성하고 내년 봄이나 여름 즘 심사를 보고 학위를 받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그 지점에 다다르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의심할 때도 있지만, 의심보단 이제 의지가 더 강하기에 스스로를 더 믿어보려고 한다.
마침내 나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시기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