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내 얘기를 한다고 뭐가 달라져?
심리 상담을 받던 첫 시간, 가장 나를 괴롭게 하는 감정들에 대해 횡설수설 풀어놓았다. '지금까지 온 건 다 운 같고.. 앞으로도 이렇게 운이 좋을 리만은 없는데. 너무 불안하고 무섭고...' 첫 상담 후 얼굴은 눈물범벅이었지만 상담실 문을 닫고 나오는 마음은 후련했다. 뿌연 감정이 눈물에 씻겨 내려간 걸까. 말갛고 가벼운 기분을 받았었다. 약간의 해방감? 그리고 기대와 희망이 꿈틀거렸다. '아 심리 상담받기 잘했다. 앞으로 달라질 내 모습이 기대돼! 드디어 이 깊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구나!' 그런 기대감으로.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상담부터는 내 안의 삐딱이가 자꾸 삐죽 튀어나왔다. 선생님은 자꾸 오늘의 내 기분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고 싶은 얘기는 뭔지 물어보는데 '그냥'이란 단어만 머리에서 맴돌았다.
'오늘의 기분이요? 그냥..'
'해보고 싶은 싶은 얘기가 없냐고요? 아니 뭐.. 그냥..'
슬슬 짜증이 난다. 저기요. 선생님. 저는 저를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여기 왔다구요! 그런데 왜 자꾸 나한테 뭘 물어보는 거예요! 상담 초기, 아무리 심리상담사 선생님이라지만 내 치부만 풀어놓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울화가 올라오는 것을 체면상 몇 번은 꾹 참다가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아마 그날로 그만둬야지,라는 생각도 하면서.
"근데요. 이렇게 해서 뭐해요? 뭐가 달라져요?"
'왜 아무 해답을 주지 않고 나한테 물어보기만 하는 거죠?' 즉 '내가 지금 여기서 시간과 돈을 쓰며 뭐 하는 거죠? 얻어 가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를 함축한 삐딱한 질문이었다. 나름 논리와 예의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무례한 날것의 질문이라 생각하면서. 이런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나에게 조금은 심취된 채로, 선생님에게 공을 탁! 쳐서 넘겼다. 물어보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되물었다.
"왜요? 뭐가 달라지고 싶은데요?"
그러니까 그게... 음.. 예상 못 한 공이 넘어왔다. 내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반응을 그때 내가 느낀 대로 풀어보자면 조금은 당황하는 게 느껴지면서도, '그래 이거지' 하는 반가움? 묘한 톤 업을 느꼈었다. 그리고 한참을 빙글 뱅글 도는 대화 끝에 내가 느끼고 있는 찝찝함, 솔직함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저는 아마도 '자, 당신의 문제점은 이거니까, 앞으로 이거에 대해 해부해 볼 거고, 이렇게 해결해 가세요' 이런 답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러자 선생님은 말했다
"아 당신은 그런 게 중요한 사람이네요. 그럼 우리 오늘부터 상담 목표와 방향을 정해볼까요?"
'아 그렇구나'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나에 대한 걸 깨달았다. 나는 굉장히 목적과, 방향, 해결법이 명확한 걸 좋아하는 성취 중심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선생님을 나를 납득시키고 상담의 방향을 잡아주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한번 심리 상담의 문턱을 넘은 것 같다. 만약 그때 그대로 그만뒀다면 나는 두고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을 거다 '내가 심리 상담 그거 몇 번 받아봤는데 비싸기만 하고 별거 없어~' '그냥 그 돈으로 맛있는 거사 먹어' '나한테 얘기해 내가 들어줄게'
선생님이 말하길, 내담자의 이런 삐딱함은 종종, 대다수에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라? 내가 생각한 반응은 이게 아닌데. 나는 지금껏 단 한 명의 심리상담사 선생님과 70회차 가까운 상담을 받고 있지만, 지금까지 올수 있었던 첫 신뢰가 이때 쌓인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정하고 던진 '해서 뭐해요?'라는 질문. 그 질문으로 끝내버리려던 나의 심리 상담은,
'해서 뭐해요?'라는 솔직한 심 을 털어두는 그 순간부터 물꼬를 튼 게 아닐까.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