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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혜민 Nov 20. 2021

보아 데뷔 21주년, 21개의 명곡 추천

2021 보아노래순위전 기념 띵곡 대잔치

벌써 11월 20일이다. 이럴 수는 없다, 보아 데뷔 21주년을 기념해 열린 2021 보아노래순위전 에 내가 참여하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다면 후회로 땅을 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 썼던 글을 조금만 다듬어 가지고 왔다. 새로운 글을 기대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노래들을 선정해 보았으니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


1. 〈보아노래순위전〉이란?

트위터 유저 @spacce_error 님이 만든 이벤트다. 링크는 여기에 있다. 구글폼을 활용해 보아 노래 중 최애곡이 무엇인지 투표를 받고, 나중에 순위 발표식을 한다. 지난 2019년에는 보아 데뷔 19주년을 기념해 "최애곡 11픽"을 뽑아 발표했었고, 올해는 데뷔 21주년을 맞아 시즌 2로 돌아왔다! 누구나 투표 링크로 접속해, 한-미-일에서 발표한 200개의 후보곡 중에 최애곡 21곡을 뽑을 수 있다. 투표 기간은 11월 21일까지로, 최근 보아가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한 바 있고, 명곡 BETTER가 재조명 받기도 했기 때문에 재미있는 결과가 기대된다. 


 BoA 10th Album 〈BETTER〉 자켓사진 - 20년간 보아가 발표했던 앨범 커버들 앞에 서 있는 2020년의 보아 ⓒSM ent.


2. 나의 2019년 11픽, 그리고 2020년 명곡 & 안 알려진 명곡 TOP 20

재미있게도, 2019년에는 내가 투표할 때 실시간으로 화면 기록을 해두었었다. 

선택한 순서대로 리스트를 나열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First Snow • 사라(Sara) • 공중정원(Garden In The Air) • Woman • Make Me Complete • close to me • 내가 돌아(NEGA DOLA) • Moon & Sunrise • Eat You Up • Shattered • Time to Begin 


그리고 이 리스트를 참고하면서 데뷔 20주년 기념 글을 썼다. 그 때는 친구들이 '안 알려진 곡'도 추천해달라고 했었기 때문에, 명곡 10곡과 안 알려진 명곡 10곡을 골라, 총 20개의 노래를 추천했었다.


명곡 Top 10 : 공중정원(Garden In The Air) • LOVE LETTER • First Snow • Woman • 내가 돌아(NEGA DOLA) • Moon & Sunrise • 사라(Sara) • Eat You Up • Do The Motion • Milky Way 


안 알려진 명곡 Top 10 : Time to Begin • Make Me Complete • close to me • Shattered • Over~Across The Time~ • Butterfly • コノヨノシルシ (코노요노시루시, 이 세상의 증표) • JAZZCLUB • No Matter What (Feat. 빈지노) • 한별 (Implode)



3. 그리고 지금, 21개의 노래

21주년으로 한 해가 넘어왔다고 해서, 내 취향이 크게 변할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변하지 않을 이유도 없으므로, 그리고 보아가 쉬지 않고 명곡을 계속 내며 활동을 했으므로, 리스트에 조금의 변화가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비슷하기에 곡 설명은 미리 써두었던 것을 대부분 활용했다.) 이번 해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보아 노래 21곡은 아래와 같다.


01. 공중정원 (Garden In The Air) 

수록앨범 : 〈Girls On Top〉
발매연도 : 2005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2018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GMF) 

https://youtu.be/TIgdTJ7ngfk

켄지가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아마 타이틀곡을 제외한 수록곡들 중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곡일 것이다. 켄지 본인도 도전적으로 실험해보고 자신에게 성취감을 주었던 곡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보아 20주년 기념 컨텐츠 202020 BoA 참고)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인 〈Our Beloved BoA〉에서도 엑소의 백현이 리메이크해 호평을 받았다. 

공중정원은 우선 가사와 멜로디 모두 몽환적이고 감성적이라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15년 전에 나온 노래인데도 전혀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재즈나 알앤비 편곡으로 들어도 좋고, 원곡의 밴드 느낌도 너무 좋은 곡이다. 사실 가사에 흔하지 않은 표현이 많이 나오다 보니 사람들이 외워서 따라부르기는 쉽지 않은데, 노래방에서 불렀을 때 안 좋아한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봤을 땐 모두의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첫 부분의 샤라랑~ 하는 차임 소리와 드럼 사운드가 정말 환상적이고, 마지막에 스캣 하듯이 이어지는 애드립까지 너무나 완벽하다. 팬들도 정말 좋아하는 곡이고, 2018년 GMF 세트리스트의 첫 번째 곡이기도 했다. 가을 밤 야경과 정말 딱 어울리는 곡이라 속으로 눈물을 많이 삼키며 들었다. 보아의 초기 창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처음 권해주고 싶은 곡이기도 하다. 공중정원은 앞으로도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보아의 명곡 반열에서 내려가지 않고 롱런할 것 같다. 아마 나도 쭉 사랑할 것 같고. 


02. LOVE LETTER 

수록앨범 : 〈THE FACE〉
발매연도 : 2007 (싱글) 2008 (앨범) 
언어 : 일본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BoA The Live 2018 X-MAS

https://youtu.be/6tORls1ui6E

LOVE LETTER, 솔직히 나는 일본에서 보아가 이 노래로 한참 싱글 활동을 하던 당시에는 막 좋아하지는 않았었는데, 2007년 크리스마스 콘서트의 무대를 봤을 때 화들짝 놀라며 갑자기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팬들에게서 가장 사랑받는 콘서트 중 하나인 2007 BoA The Live X-MAS 에서 베레모를 쓰고 긴 장갑을 낀 보아는, 스트링 반주와 함께 애절하게 이 노래를 부른다. 2018년에 같은 노래를 부를 때 웃기도 하고 살짝 춤을 추기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부르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마지막 부분의 애드립이 나온다. 마치 보아가 또 다른 악기가 된 것처럼, 잘 정제된 고음의 애드립을 화려하게 선보이는데 나는 정말 기절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정작, LOVE LETTER를 최고의 명곡으로 꼽을 정도로 좋아하게 된 것은 2018년의 무대 때문이다. 2시간 가량의 콘서트를 혼자 소화하고 맨 마지막 무대임에도, 반짝이는 눈빛과 활짝 뻗은 두 팔로, 노래를 듣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를 띄우듯이 웃으며 노래하는 보아가 정말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절은 '誕生日は乾杯して同じ景色焼き付けたい (생일에는 건배를 하고 같은 풍경을 새기고 싶어요)' 인데, (바로 여기!!) 내가 생일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생일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그 마음이 와닿아서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이 때의 애타는 발성이 정말 애틋하다. 모든 소절이 가슴이 꽉 죄어들게 애틋하고 애절하고 사랑스럽지만 말이다. 


03. First Snow

수록앨범 : 〈Outgrow〉
발매연도 : 2005 (싱글) 2006 (앨범)
언어 : 일본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BoA The Live 2007 X-MAS

https://youtu.be/1f87QbWmLvA?t=2027

아, 나한테 2007년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정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나 보다. First Snow 역시 2007년의 무대를 너무나 사랑했던 곡이다. 이 노래는 보아가 작사한 곡인데 (보아는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작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모든 가사가 반짝반짝하는 곡이다, 첫눈이 소복이 쌓여 크리스마스 조명에 빛나는 것처럼. 가사에서 (눈이 흩날려서) 우리를 빛나게 하는 티아라가 된다는 가사가 있는데, 그런 이미지가 곧 곡의 이미지이기도 한 것 같다. 

이 곡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절은 당연히 마지막 소절인데, '白く染まってく町に愛の跡を (하얗게 물든 거리에 사랑의 흔적을)' 까지 시원하게 뻗어 가는 고음이며, '사랑해' 라는 한글 가사가 주는 울림까지, 빈틈없이 아름답다. 

보아의 일본 활동이 이어지면서 너무 지쳐 있던 2007~2008년, 그 세 글자 때문에 너무 많이 위로 받았다. 그래서 내가 정말 사랑하는 콘서트 BoA The Live in Seoul 2018 에서 첫 곡으로 이 곡이 흘러나왔을 때 바로 눈물이 터졌던 것 같다. 그 단 세 글자가 어떻게든 한국 팬들과 유대가 이어져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 마음을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 테니까, 콘서트 첫 곡으로 뚝심 있게 First Snow를 선택했다는 것이 너무나 감동이었다. 이미 세트리스트를 들었을 때에 한 번 감동 받았지만, 한국 땅에서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던 것 같다. 안 그래도 감동적인 곡인데, 개인적인 감상까지 얽혀 있으니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명곡이다. 


04. Woman

수록앨범 : 〈WOMAN〉
발매연도 : 2018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2018.10.27. MBC 쇼!음악중심 컴백무대

https://youtu.be/QRRqdsnsQ5w

보아가 여성 연예인으로서 20여년을 살아가는 동안, ‘너무 남자같으면 안 돼’와 ‘너무 여자같이 굴지 마’라는 말 사이에서 얼만큼 갈등했을까? 그 사이를 균형 맞춰 걸어가는 여성 연예인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고, 애초에 서른이 넘어서 꾸준히 활동하는 여성 솔로 가수가 겨우 손에 꼽힐 만큼밖에 안 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가? 그런데도 보아는 Woman이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썼다. '여성성'과 성역할 수행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10대~30대 여성들 사이에서 한창 화제에 오를 당시에 Woman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발표한다는 것은, 어쩌면 실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곡을 발표한 직후에 인스타그램에서 가사의 일부를 가지고 질문하는 사람의 댓글에도 정성 들여 답을 할 만큼, 보아는 작사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퍼포머로서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무대를 수행했다. 

내가 Woman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가 그것이다. 그가 시도할 수 있는 최선에 닿은 노래였기 때문이다. 그 연차의 대형기획사 소속 솔로 댄스가수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여성이라는 젠더를 수행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말해야 하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한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리얼리티 《모두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보아가 상당히 경험주의자라는 사실은, 그가 싱어송라이터로서 내놓는 창작물들 중 상당수가 본인의 경험을 투과한 것들임을 신뢰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가사의 Girls on Top 언급 같은 것을 봐도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노래가 재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험의 한계, 개인의 한계가 명백하나, 적어도 그 한계 내에서만큼은 100%에 가깝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히 노래가 좋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컴백무대와 거의 비등하게 좋아하는 무대가 2018년 나이키 위대한 페스티벌에서 부른 Woman인데, 현장에 있었던 나로서는 그 노래가 가진 파괴력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보아가 'feels good to be a woman' 이라는데 그저 신이 났고 짜릿하고 통쾌했다. 그 후로 이 노래를 콘서트에서 볼 때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관자놀이까지 지끈거릴 지경이다. 


05. 내가 돌아 (NEGA DORA)

수록앨범 : 〈ONE SHOT TWO SHOT〉
발매연도 : 2018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2018.02.03. 음악중심 컴백 무대 

https://youtu.be/lmdcehLsi8A

언젠가, 2018년~2019년에 발매된 케이팝 중에 라틴 스타일을 접목한 곡이 왜 이렇게 많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한 번 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너무 놓쳐서 머쓱해졌다. 아마 그때 계획대로 글을 썼다면 내가 돌아에 대한 언급도 꼭 들어갔겠지. 아닌 게 아니라, 이 노래는 제목부터가 라틴 문화권의 청자들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라틴 음악을 연상시키는 클래식 기타 사운드가 초반뿐만 아니라 후반부에도 등장하는데, 나는 이 곡이 그것을 정말 그럴듯하게 잘 살려서 좋다. 비록 제목이 그게 뭐냐는 말을 모든 친구들에게서 들었지만, 이 곡은 정말 몸을 흔들고 싶어지게 신나기 때문에 나는 (제목을 포함한) 라틴 문화의 영향에 대해 반갑게 받아들이려 한다. 

슬프게도 내가 돌아의 공식적인 음악 활동은 1주일이 전부지만, 에스엠엔터의 노련파 댄서들이 총출동한 안무도 너무 재미있었고 (어디서는 '선생님'이신 분들이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시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웃겼다), 유영진 목소리가 나올 때 보아의 표정연기도 너무 절묘하고 재밌었다. 

이 노래의 큰 장점은 밸런스가 좋다는 점이다. 춤, 표정, 제스처, 그리고 사운드까지 너무나 풍성하다. 만약 이 곡을 그 전까지 별 감흥 없이 들었다면, 꼭 좋은 사운드 장치를 동원해 다시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스 사운드 위에 얼만큼 풍성한 화음이 쌓이는지, 어떤 때는 퍼지고 어떤 때는 좁아지는지, 대충 들으면 모른다. 게다가 간만에 따라 부를 만한 응원법이 따라붙은 곡이라서, 직접 무대를 볼 때 특히 재미있었던 것 같다.


06. Moon & Sunrise

수록앨범 : 〈VALENTI〉
발매연도 : 2003
언어 : 일본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BoA The Live 2006 Tour

https://youtu.be/1do51cyMVvM

보아 팬 누구에게나 각별한 곡이겠지만, 그래서 너무 뻔한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꼽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노래는 본디 일본에서 먼저 발표된 곡이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한국에서 발매된 한국어 버전을 먼저 들었다. 그럼에도 처음 듣자마자 좋아하게 되었고, 자주 부르기도 했다. 한국어 버전이 실린 라이센스반은 이 노래와 ROCK WITH YOU가 함께 수록되어 있었는데, 가사집을 얼마나 자주 끼웠다 뺐다 했던지 귀퉁이가 온통 너덜거릴 정도고, 어두운 배경사진과 겹쳐 잘 보이지 않는 글씨는 종이에 따로 써서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만큼 가사를 좋아했다. 특히 맨 처음 소절을 입 속으로 늘 웅얼거려 보곤 했다. '푸른 하늘은 언제나 다정하지만 알 수 없는 고독을 주죠'...

그리고 보아 팬들에게 고유명사로 통하는, '정열대륙'이 있었다. 일본에서 명사들을 취재하여 구성하는 ('사람이 좋다' 같은) 다큐 예능 '정열대륙'에 보아가 출연했고, MOON&SUNRISE 작사에 관련된 내용을 말해주었다. 보아가 느꼈던 외로움, 쓸쓸함, 피로감과 불안감이 녹아든 일본어 가사를 그때 비로소 다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방송에는 2006년 라이브 투어 영상이 삽입되었다. 안 그래도 눈물겨운 노래를 통곡을 하듯 온 몸을 써서 부르는 그 날의 보아에게로, 나의 온 마음이 쏟아졌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후 한숨처럼 뱉는 맨 마지막 한 음절이 너무너무 좋다.) 그리고 그 뒤로 좋아한 어떤 아이돌의 공백기나 해외 활동의 고생담도, 그때만큼 나를 울리지는 못했다.


07. 사라 (Sara)

수록앨범 : 〈ID: Peace B〉
발매연도 : 2000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공식 뮤직비디오 

https://youtu.be/Q3aLp8nhXfg

이제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보아를 좋아하게 되었던 시기가 SARA 활동기였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 ID:Peace B 데뷔 무대를 본 기억은 없지만 SARA 뮤직비디오를 TV에서 봤던 기억은 있으며, 내가 처음으로 산 CD인 〈No.1〉 앨범이 나왔을 때에는 이미 보아에게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SARA의 어떤 점이 나를 사로잡았을까, 그건 지금도 알 수 있다. 나는 이 곡이 가지고 있는 미스터리에 푹 빠졌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영원히, 질문을 많이 하게 하는 노래들이 좋다. 

대체 '사라'는 누구인가. '어제는 병원 가 주사도 맞았'던 화자는 또 누구인가. '예쁜 그 애 품에 안겨 왔던 너'가 사라라면, '예쁜 그 애'는 사라가 아니고 누구인가. 왜 품에 '너'를 안고 왔을까. 너무나 신비스러운 가사를, 긴 머리 휘날리며, 컴컴한 지하철역을 배경으로, 파워 댄스 무브와 함께 부르는, 동그란 조명을 눈 안에 담은, 2000년의 보아. 그 장면이 나의 새천년이었다.


08. Eat You Up

수록앨범 : 〈BoA〉
발매연도 : 2008
언어 : 영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2013년 한국 콘서트 'Here I Am'

https://youtu.be/QvqdefwMB_A

보아 노래 중에 제일 섹시한 곡을 뽑자면 나는 이 노래를 뽑겠다. 모두들 차은택 감독이 연출한 뮤직비디오, 보아의 춤으로 강풍이 불고 천장이 무너지던 바로 그 장면으로 이 노래를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 Eat You Up의 정수는 2013년 한국 콘서트다. "Tasty"하다는 그 표정, 관중들을 사로잡는 무대매너, 라이브 답게 평소보다 훨씬 허스키한 발성. 퍼포먼스가 멋진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덜 추면서 부르는 걸 보고 나자 진짜 명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너무 신이 나고 (쓰다 보니까 점점, 나를 신나게 해야 명곡이라는 듯이 쓰고 있지만 넘어가자) 밴드 사운드랑 정말 잘 어울린다. 

Eat You Up을 들을 때마다, 보아가 미국 활동을 하던 때 내가 열심히 찾아본 영상들이 기억난다. 한국에서 활동해주겠지 한참 기대하고 있던 때 급작스럽게 발표된 미국 진출 소식, 파리한 얼굴의 보아가 목발을 짚고 나와서까지 기자회견을 했던 것, 미국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며 거의 맨바닥과 다름없는 무대에서 줄이 달려있는 마이크를 쥐고 공연을 하던 것 등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메인차트에 진출했다며 떠들썩하게 기사가 나기도 했었지. 솔직히 지금 하기에는 머쓱한 회상이지만, 그땐 그만큼의 성과라도 내는 한국 가수가 거의 없었다. 하물며 한국에서 낸 곡을 번안한 것도 아닌, 미국의 아티스트들과 스태프들이 영혼을 갈아 협업하여 만든 빼곡하게 좋은 앨범으로 낸 성과이다 보니,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어깨가 으쓱했었다.


09. Do The Motion

수록앨범 : 〈OUTGROW〉
발매연도 : 2005 (싱글) 2006 (앨범)
언어 : 일본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BoA The Live 2018 'Unchained'

Do The Motion은 재지한 무드의 노래인데, 첫 시작부터 팡 터지는 후렴구가 강렬하고, 이 노래를 부르는 보아의 도전적인 눈빛이 언제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愛し合うっていいじゃない (서로 사랑한다는 것 좋잖아)" 부분을 부를 때, [아이시]를 스르륵 넘어가 곧바로 내지르는 [아] 음절, 그 까슬까슬함이 정말 매력적이다. 

게다가 Do The Motion은 가사가 매우 서사적인데, 예를 들어 "戶惑う乙女の純情 / 君が手招く波音 (방황하는 소녀의 순정 / 그대가 불러온 파도 소리)" 이런 가사도 그렇고, "泣いてみても素敵じゃない / 君と夢を見れるなら (울어 본대도 좋지 않아? / 그대와 꿈을 꿀 수 있다면)" 같은 가사가 정말 좋다. (취한다, 세기말 아니메 감성...)

좋아하는 무대로 언체인드 콘서트를 뽑은 이유는, 당연히 의상과 무대 연출 때문이다. 언체인드 때 의상 다 예쁘지만, 이 때 입은 쉬폰 스커트가 진짜 Do The Motion하고 찰떡이다. 워낙 화려한 노래라서 무도회 같은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노래인데, 보아가 스탠드 마이크 세워 두고 레트로 느낌 나는 편곡으로 부르니까 완전 내가 위대한 개츠비 된 것 같고 짜릿한 기분... 언체인드 콘서트의 이 무대 덕분에 Do The Motion이 얼마나 좋은 노래인지 다시 발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꽃놀이처럼 팡팡 터지는 보아의 시원한 고음 속에서 황홀경에 빠져 있다 보면 순식간에 5분이 흘러간다. 정말 명곡이다.


10. Milky Way

수록앨범 : 〈Atlantis Princess〉
발매연도 : 2003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2020.12.11. SBS MTV 라이브 온 언플러그드 

https://youtu.be/arDSixXYAQo

보아와 함께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아마도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가장 사랑받은 후속곡 중에 하나인 Milky Way. 공중정원과 마찬가지로 〈Our Beloved BoA〉 프로젝트에 포함된 곡이기도 하다. 원작자 켄지가 직접 편곡하여 레드벨벳이 불렀는데, 훨씬 동화적이고 섬세하게 그려진 리메이크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젠 너에게 줄" 부분에 전자음이 없으면 왠지 허전함과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 원곡의 발랄함과 장난기를 정말 좋아했다. 뭐랄까, Milky Way를 부르는 보아는 인기 많은 밴드부 마스코트 같은 느낌이라서 괜히 막 더 따라다니고 싶고 그냥 너무 예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앞머리도 너무 깜찍했고.

그런데 얼마 전 라이브 온 언플러그드에서 부른 Milky Way를 듣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노래가 꽤나 쓸쓸한 노래였구나, 그냥 예쁘기만 한 노래가 아니었구나. 그래서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건가, 했다. 시간이 지나가고 변화가 찾아올 것은 분명하고, 그 미래가 두렵지만, 그래도 지금의 감정에 집중하고 싶어하는 빛나는 마음들. 2020년의 보아가 부르는 Milky Way가 그 감정을 너무 선명하게 눈 앞에 그려줘서 너무 좋았다. "어디론가 그렇게 흘러가지 on my milky way"...


11. スキだよ -MY LOVE- (스키다요)

수록앨범 : 〈スキだよ -MY LOVE-
발매연도 : 2019 (싱글)
언어 : 일본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BoA The Live 2019  

https://youtu.be/5pGuslb27Ic

제대로 된 발라드라서 좋다. 보아가 내는 좋은 고음과 좋은 저음을 두루 들을 수 있어서 정말 맛있는 노래다. 가사는 꽤나 전통적인 러브스토리인데, 요즘 들어 이런 정공법을 쓰는 가사가 그닥 흔치 않다 보니 또 새로웠다. 이 노래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단순한데, 콘서트에서 정말 잘 불렀기 때문이다. 

보아 더 라이브 2019 #mood 에서 사랑에 빠져 버린 곡이 두 개인데 그게 이 노래와 Amor다. 보아의 능력이 정말 대단한 것이, 그 해에 발매된 노래를 꼭 라이브를 통해서 다른 눈으로 다시 보게 만들어준다. 처음 이 노래를 들을 때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겨울에 잘 어울리는 스트링 반주가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아래를 받쳐주고 있고, 보아의 가성이 그 위를 반짝반짝거리게 장식하고 있는, 캐롤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진행의 곡이었다. 마음이 들뜨지 않는 게 이상하다, 겨울이고, 사랑 노래고, 보아인데. 


12. Make Me Complete

수록앨범 : 〈私このままでいいのかな〉
발매연도 : 2016 (싱글) 2018 (앨범)
언어 : 영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BoA The Live 2018 

https://youtu.be/ErnOUohCCMA

이 노래는 일본에서 싱글로 발매되었지만 전곡 영어로 작사된 곡이다. 일본 대하드라마 《오오쿠SP》의 엔딩곡으로 삽입되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굉장히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는 노래다. 보아의 많은 노래들 중에서도 손꼽게 슬픈 노래라고 생각한다. 끝 모를 기다림에 힘들어하며 자신의 마음을 날 것 그대로 꺼내놓는 화자의 마음이 너무 절절하게 와닿는다. 

영어 가사이다 보니 한국어나 일본어 가사보다 더 직설적인 느낌이 드는데, 예를 들어 "I'm a victim of your uncertain love (난 네 불확실한 사랑의 희생자)" 이런 후렴구, "don't be the one to close the door (문을 닫는 사람은 되지 마)" 이런 애절함, "You only have to turn the key to / Make me complete (네가 날 완성시켜 주기 위해선 그저 열쇠를 돌려주기만 하면 돼)"  이런 절묘함이 좋았다. 그 좋은 가사들을 감정을 가득 담아 외치듯이 불러주니까 마지막까지 슬픈 분위기가 유지되고, 연주 역시 쭉 고조되다 보니, 꼭 추락할 걸 알면서도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이를 보는 것처럼 마음이 아린다. 무대에서 자주 부르지 않는 곡인데, 언체인드 투어 때 불렀었고 덕분에 라이브 음원이 나와 있기도 하다. 


13. close to me

수록앨범 : 〈Who's Back?〉
발매연도 : 2014
언어 : 일본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BoA The Live 2018

https://youtu.be/EzL8BLH6Y8I

이 노래야말로 2018년 Unchained 콘서트 버전이 진짜배기다. 원곡보다 아주 심플하게 편곡되어서 감정이 훨씬 잘 느껴진다. Make Me Complete가 끝의 끝까지 달려가는 절절함을 보여준다면, close to me는 이제 막 시작한 연인의 애틋한 절절함이다. 가사는 한없이 달콤하고 따뜻한데 전혀 잔잔하지 않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조용한 격정'이랄까. 듣다 보면 가슴이 술렁거리고 막 그런다. 

보아가 어릴 때 발표한 노래 중엔 '숨... (Breathe Again)'처럼 투명하게 슬프고, '七色の明日 ~Brand New Beat~ (일곱 빛깔의 내일)'처럼 가없이 기쁘고, 그렇게 솔리드한 컬러의 사랑 노래도 많은데, 2010년대 이후 발표한 노래들 중엔 그냥 슬프기만 하거나 기쁘기만 한 노래가 없다. 이 노래도 그렇게 복잡하고,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인다. "Am I getting too close?(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갔어?)" 라는 질문에 왜 내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 같을까. 아마도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는 화자의 마음을 내가 먼저 헤아리게 되니까 그렇겠지. 제목은 왜 또 소문자로만 쓰는지, 왜 가장 중요한 말들은 영어 가사인지,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는 보아가 처음에는 가성을 섞어 섬세하게 부르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꽉 들어찬 고음을 내는지... 그 모든 것들이 표현하는 이 노래의 조심스러운 사랑을, 아끼지 않기가 어렵다.   


14. コノヨノシルシ (이 세상의 증표)

수록앨범 : 〈Best Of Soul〉
발매연도 : 2004 (싱글) 2005 (앨범)
언어 : 일본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ARENA TOUR 2005 "Best of Soul"

https://youtu.be/7GMT2mnVK0Q

이번에 글을 쓰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 노래가 일본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꼽힌 적이 있다고 한다. (위키백과 참고) 그럴만도 한 게, 너무나 반짝거리는 노래니까. 처음 도입부에 들어갈 때의 일렉트릭 피아노 소리부터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 같고, 선율 위를 흘러가는 보아의 목소리는 밤하늘 아래의 시냇물 같다. 막상 녹음된 음원을 들어 보면 어린 시절의 보아 특유의 힘찬 목소리인데, 라이브로 들으면 유난히 더 예쁘고 반짝거린다. 아마도 연주 덕택인 것 같다. 후렴구에 들어가기 전에 딩- 하는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있는데, 이게 정말 백미다. 만약 당신들이 2000년대를 진심으로 겪었다면 16화음 벨소리를 기억하겠지… 이 노래는 이상하게 그런, 옛날 핸드폰의 벨소리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낡지도 촌스럽지도 않은, 우리 세대의 레트로 같은 느낌. 근데 이 부분을 쓰면서 자료를 찾다가 놀랍게도 보아가 No.1 발매 후 16화음 벨소리를 직접 소개하는 영상을 발견했다. 너무 절묘하다.


15. Jazzclub

수록앨범 : 〈私このままでいいのかな〉
발매연도 : 2018
언어 : 일본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BoA The Live 2018 한국 콘서트

https://youtu.be/DTu5aM5iKD8

보아가 대단한 퍼포머라는 것을 다시 또 느낄 때가 언제냐 하면, 바로 내가 심드렁하게 들었던 곡을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다시 보게 만들어줄 때다. 이 글에서 소개한 음악들만 해도 그렇다. 공연장에서 밴드 연주로 들어보거나, 보아의 퍼포먼스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재발견할 수 없었을 곡들이 정말 많다. 사실 나는 보아가 한국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부터는, 일본에서 발표하는 곡들에 다소간의 흥미가 떨어져 있었는데, 이 곡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도 한국 앨범에 심취해 있느라 마음껏 못 즐겼던 기억이 난다. 간만에 뮤직비디오에 다인원이 출연해 화려하게 꾸민 것을 보고 감탄했던 것 정도? 

그런데 보아가 2018년부터 콘서트에서 Jazzclub을 보아 콜(*B-o-A를 연호하는 것으로, 엔딩으로 달려가기 전 흥을 돋우기 위한 필수과정이다)과 댄서/밴드멤버 소개를 하는 레퍼토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세트리스트에서 가장 신나는 노래를 활용하는 그 시간에, 이 아이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너무 신나버린다. 그야말로 머리 풀고 방방 뛰게 만드는 그런 노래였다. 떼창을 하기도 얼마나 좋은지….. 가사도 짧고 곡 길이도 짧은데 그 사이에 엄청난 다이내믹이 휘몰아치는 그런 노래다. Jazzclub을 듣고 있으면 너무너무 보아 콘서트에 가고 싶어진다. 진심으로.


16. No Matter What (with. 빈지노)

수록앨범 : 〈No Matter What - SM STATION〉
발매연도 : 2016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2019 나이키 위대한 페스티벌 

https://youtu.be/Nelr-y2_IEQ

이 곡은 보아의 목소리를 빌려 저 먼 밤 하늘을 마구 누비는 로켓 같은 곡이다. 보아 보컬 부분에서는 막상 BPM이 대단히 빠른 것 같지는 않은데 신기하게도 속도감이 굉장하다. '빠르지 않아도 신나는 노래'를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인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참고가 될 교본이랄까. 보아가 작사한 가사도 너무 낭만적이고, 여름 노래처럼 들리는데 가을에 들어도 잘 어울리고, 콘서트 현장에서도 백이면 백 무조건 환영받는 곡이다. 특히, 나이키 위대한 페스티벌 무대와 정말 잘 어울렸다. 스타일링도, 무대의 흐름도, 관중들도 이 노래를 맞이할 준비가 200% 되어 있었다. 앞으로도 락 페스티벌 필수 곡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SM STATION 프로젝트(a.k.a. 슴스테)는 에스엠엔터가 한 일 중에는 몹시 드물게도 팬들의 호평을 받는 프로젝트인데, 소속 가수들의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들을 끌어내는 데 꾸준히 성공해왔을 뿐만 아니라, 그룹 앨범에 실리기에는 다소 애매한 노래들, 또는 의미 있는 노래들을 발매하는 좋은 통로가 되어주기 때문에 늘 환영받는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슴스테 곡들 중에는 f(x)의 'All Mine'이나 소녀시대의 '그 여름 (0805)' 같은, 그룹 팬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곡들도 있고 NCT DREAM과 HRVY의 'Don't Need Your Love'이나 텐의 'New Heroes', 디오의 '괜찮아도 괜찮아' 같이 곡 자체가 잘 나온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도 사운드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최첨단 기술력을 쏟아부은 No Matter What은 초 하이 퀄리티에 속한다. 이 노래가 다행히도 보아를 만나 발매될 수 있어서 팬으로서 정말 기쁘고, 에스엠엔터의 A&R 팀도 두고두고 뿌듯해 할 거라고 생각한다. 


17. 한별 (Implode)

수록앨범 : 〈Hurricane Venus〉
발매연도 : 2010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2018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GMF)

https://youtu.be/VZJ9Wu_QKQs

첫 소절에서부터 진하게 느껴지는 김종완 님의 향기... 어쿠스틱 기타로 사람 심장을 어떻게 조지는지 잘 알고 계신 분의 싸운드... 이 노래는 내가 한국 6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발매 당시부터 뛰는 심장을 어떻게 주체를 못 하고 그냥 너무 감사한 마음 뿐이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첫 한국 콘서트 때 들을 수 있었고, 정말 첫 음을 듣는 순간 눈물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참 설명하기가 복잡한데, 물론 가사도 좋고 멜로디도 좋고 다 좋은 곡이지만은 그게 꼭 핵심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말하자면, 이 노래가 나에게 주는 감정에 휘말리는 게 아닐까 한다. 너무나 조심스럽게 건조하게 시작하는 이 곡은, 후반부로 갈수록 스트링에 김종완의 코러스까지 더해지면서 엄청난 대곡처럼 스케일이 커지는데, 그런데도 신기하게 안에 들은 감성은 처음 시작할 때처럼 계속 쓸쓸하고 외롭고 초라하다.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을 때 들어도, 그렇게 적막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2018년 GMF 무대에 선 보아가 이 노래를 불러주었을 때 정말 좋았다. 야외이기도 하고, 감기에도 걸렸었고, 라이브 반주이기도 해서 음원하고는 전혀 다르게 불렀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아무것도 그의 목소리를 보호해주는 게 없었고, 그냥 노래랑 정면으로 맞서 고개 하나 하나를 넘어가고 있는 느낌이라서 더 외로워 보이고 더 쓸쓸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냥 그 상황이 너무 슬펐는데, 그게 참 이 노래의 감성과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부서지고 있는 어떤 것, 흩어지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 역시 보아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점점 줄어들고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슬펐던 것 같아서. 


18. LISTEN TO MY HEART 

수록앨범 : 〈LISTEN TO MY HEART
발매연도 : 2002
언어 : 일본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BoA The Live 2014

https://youtu.be/7Moj-A34o1w

LISTEN TO MY HEART는 첫 소절부터 마치 대서사시의 서곡처럼, 음악을 듣고 있는 모두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모험심을 자극하는 듯한 비트와 가사로 시작된다. 사실 사랑 노래인데, 흔하게 쓰지 않는 단어들을 활용하여 비장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로 다른 차원, 서로 다른 우주에 있는 연인에게, 닿을지 닿지 않을지 없는 편지를 부치는 것과 같이, 막막하고 아련한 노래다.

2002년 처음 발매했을 때부터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지만, 편곡을 어찌 하느냐에 따라 또 감성이 휙휙 바뀐다. 내가 그 중에 좋아하는 무대 하나는, 2014년 BoA The Live 〈Who's Back〉 때의 무대다. 아주 미니멀하게, 사운드 몇 개만 놔두고 반주를 많이 생략한 덕분에, 이 음과 저 음 사이의 빈 공간이 텐션으로 꽉 찬다. 분명 소년만화적 감성을 품고 있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편곡해 놓으니 섹시하기까지 하다. 이후로도 부디 다양한 편곡으로 만나보고 싶은 노래다. 보아의 많은 명곡 중에서도 이 노래만큼은 절대 나이들지 않을 것 같다. 


19. 천사의 숨결 (Beat of Angel)  

수록앨범 : 〈Atlantis Princess
발매연도 : 2003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없음 

https://youtu.be/atmlppjf9_4

이 노래는 무대를 정말 드물게 했었고, 그 중에서 지금까지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되는 무대가 있지는 않아서 공식 음원을 첨부한다. 천사의 숨결은 정말 보아의 초기 음악 스타일을 잘 표현해주는 곡인 것 같다. 영어 제목부터가 보아의 대표곡 중 하나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흔히 알고 있듯 보아는 본명을 따서 예명을 지었는데, B.o.A.라는 알파벳으로 매번 기획사에서 붙이는 수식어가 많기도 많았다. Best of Asia 같은 게 제일 많이 쓰였던 것 같은데, 공식 응원봉에도 들어간 수식어가 바로 이 노래의 부제이기도 한 Beat of Angel 이라는 점! 천사의 비트는 어떠냐 하면... 일단 에스엠엔터 외길인생을 살아 온 오타쿠의 심장을 뛰게 한다. 장엄하게 시작하는 도입, 자연 경관을 담은 듯 시원한 브릿지 파트, 떼창하기 너무 좋을 것 같은 반복되는 마지막 소절들. 공격적인 비트와 희망찬 가사의 결합, 약간의 R&B 스타일 애드립까지도 너무나 완벽하게 SMP의 그것이다. 

어렸을 때는 시원하게 푸르른 하늘만 보면 거의 습관적으로 천사의 숨결 첫 소절을 흥얼거렸고, 지금은 산책할 때나 여행 갈 때 플레이리스트에 항상 끼워 넣는다. 곡의 만듦새와 분위기, 개인적인 추억까지 얽혀 정말 좋아하는 노래다. 그리고 이 노래에 얽힌 일화가 있는데, 다름 아니라 내가 직접 팬싸인회(10집 발매기념 영상통화 팬싸)에서 보아한테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는데, 안 부른지 너무 오래된 노래이다 보니 보아가 어떤 노래인지 기억이 안 나서 못 불러줬다 엉엉. 정말 통한이 서려 있는 노래다, 다음 번 팬싸인회에서 다시 도전할 건지 아니면 안전하게 신곡을 불러달라고 요청할지 아직도 못 정했다. 천사의 숨결.. 포기할 수 없는데....


20. Kiss My Lips 

수록앨범 : 〈Kiss My Lips〉
발매연도 : 2015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2015 삼성 플레이더챌린지 행사

https://youtu.be/MSMP81tV89U

Kiss My Lips 를 정말 좋아한다. 컨텍스트를 먼저 얘기하자면, 이 곡을 포함해 〈Kiss My Lips〉 앨범의 모든 노래에 보아가 작사/작곡으로 참여했고, 총괄 프로듀서로 이수만 옆에 보아가 이름을 올렸으며, 그 앨범으로 서가대 최고앨범상을 탔고, 그 다음 해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물론 이 노래 하나만으로 그 모든 영예가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노래가 좋지 않았다면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을 거라는 예상도 능히 되는 바이다.

Kiss My Lips가 발매된지 벌써 6년이나 지났건만, 이 노래는 여전히 너무 모던하다. 신디사이저 음이나, 아찔한 메아리처럼 울리는 코러스, 미니멀하게 딱 떨어지는 후렴구까지도 다 기가 막힌다. 내가 잘 쓰지 않는 화법이지만, 케이팝이 아니라 팝 같다. 다른 어떤 팝 가수가 불렀어도 어울렸을 것 같은, 도시적인 분위기의 신스팝. 그렇지만 구성이 너무 단순해서 노래방에서 부르면 분위기가 한도 끝도 없이 가라앉을 법한 류의 노래이기도 하다. 듣기는 좋지만 부르기는 어려운 노래를 하는 것은 보아의 꾸준한 특기다.

특히 좋아하는 무대로 꼽은 2015년 저 행사장은, 일단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무대를 보았기 때문에 더 기억이 남기도 하고, 너무 무대가 좁아서 깃털 부채가 다소 꽉 차 보였던 게 기억나서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아가 너무 예뻤다. 사실 저 무대에서 부른 No.1을 정말 좋아하는데, Kiss My Lips도 유난히 여유 있게 잘 불러서 모두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무대영상 중 하나다. 음방활동 하는 동안 긴 머리도 보여주고 짧은 머리도 보여줬었는데, 나는 지금 이 스타일링을 제일 좋아했다. 


21. L.O.V.E. 

수록앨범 : 〈BETTER〉
발매연도 : 2020
언어 : 한국어 

가장 좋아하는 무대 : 없음

https://youtu.be/9Nsn5NRnWc0

켄지의 노래로 시작했는데 켄지의 노래로 끝내게 되다니 신비롭다. 아무래도 보아와 켄지 조합은 나를 저절로 끌어당기는 것 같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꼽아봐도 Moto나 My Name, Milky Way 같은 명곡들이 있고 특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Time To Begin이나 봄비 같은 곡들도 있다. 켄지 곡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되는 노래 안에 특이한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흔해질 생각도 없고, 흔해질 이유도 없는 이 별난 사람들의 협업이 내게 늘 짜릿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그리고 이 노래 역시 특이하고 너무 좋다. 굳이, 2020년에 LOVE를 엘.오.브이.이. 라고 읽는 가사를 넣는 이 뚝심. 그리고 거기에서 왠지 모르게 낭만을 느껴버리고 마는 나. 처음 앨범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질린 적이 없이 늘 새롭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들었을 때, 소녀시대 10주년 앨범에 실린 'FAN'이라는 노래가 생각났었는데 그것도 켄지 곡이었다. 약간 옛스러우면서 화성 많이 들어가고 신디사이저가 비장한 이런 노래, 마치 한밤중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모터사이클 같은 노래. 이렇게 확실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곡들을 너무 좋아한다. 언젠가는 음악 장르와 음악 역사를 제대로 배워서 켄지의 노래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분석해보고 싶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보아의 소화력이 엄청나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이야기하지만, 보아는 목소리 자체가 오토튠을 씌운 것처럼 독특해서, 말할 때도 그렇고 노래 부를 때도 그렇고 이 음과 저 음 사이 반쯤 걸쳐진 가성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게 이런 일렉트로닉 반주에는 너무나 철썩 잘 달라붙는다. 항상 그렇듯 백그라운드보컬도 보아가 직접 했기 때문에, 화성도 정말 많이 들어가 있고 왠지 호화로운 느낌이다. 정규 10집에 정말 잘 어울리는 수록곡이었다. 〈BETTER〉 발매 이후 콘서트를 못 해서 이 노래는 아직 무대에 오른 적이 없는데, 얼른 시간이 흘러서 눈 앞에서 라이브로 보고 싶다. 2019년한국 콘서트의 Encounter 무대가 주었던 것과 비슷한 충격을 주지 않을까, 기대감이 든다. 




이렇게 해서 나의 21곡을 모두 소개 해봤다. 처음에는 분명히, 적당히 다듬기만 하고 끝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갈수록 신이 나고, 보아 예전 라이브를 보면서 매번 감탄하게 되고, 도저히 대충 쓸 수가 없었다. 왜 좋고 어떻게 좋은지 조금씩 더 추가했고, 영상도 더 좋은 것으로 첨부하기 위해 쭉 둘러보고 그랬다. 

이번 기회를 통해 보아노래순위전에도 다들 함께하고, 잘 모르고 있던 보아 노래도 소문이 나고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보아가 여태까지 근면성실하게 만들어 온 디스코그라피는 팬으로서도 자부심이 크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질을 갖추고 있다. 노래는 안 들어주면 힘을 잃는다. 좋은 노래가 정말 많으니, 다시 재발견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꼭 들어주시길 바란다. 



Better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춘 퍼포먼스 클립. https://youtu.be/zwe0mFHsQQ4


그리고 다음에는 보아의 춤에 관련된 글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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