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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Nov 05. 2023

아무 커피나 마시지 말자-광화문/을지로 편

사진: 그리스 이드라 섬


커피를 좋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집 밖을 나가면 보이는 커피 프랜차이즈나 로컬 카페들을 생각해 보라. 정말이지 촘촘하게 있다. 내가 일하는 광화문과 을지로 일대에는 한 집 건너 카페다.


나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다. 유럽 국제 자격증이다. 나는 커피 관련 업자도 아니고 단지 애호가일 뿐이다. 다만 커피 소비자로서 그래도 기왕이면 커피를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애쓰고 있다.


오늘은 그래서 광화문과 을지로 일대에서 찾아가 볼 만한 카페를 소개하려고 한다. 협찬 그런 것은 일절 없다. 내 개인적 선호이며, 내가 이 동네 카페를 다 다녀본 것도 아니기에 감안하고 봤으면 한다. 다만 이 동네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맛집과 카페는 그래도 많이 접해보았다.


선정 기준은 맛이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매장의 분위기. 커피의 맛을 감별하는 "커핑"에 대하여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쓰기로 하고, 일단 초보자라도 마셔보고 “아 좋다…“ 할만한 곳 위주로 골랐다.


스벅 같은 프랜차이즈는 제외한다. 프랜차이즈 커피를 소개하고자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어보인다. (나중에 프랜차이즈 커피 맛 순위 이런 것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나도 스벅을 종종가지만 사실 맛보다는 브랜드와 장소를 소비하는 곳이다.


그럼 탑 5를 추천해보겠다.


1. 카페 이드라 (3호선 안국역)


이드라 혹은 히드라는 그리스에 있는 자그마한 섬이다. 나는 아테네를 갔다가 직접 가본 경험이 있다. 아테네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다. 야트막하게 솟아오른 섬을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그리스 하면 떠올리는 파란 지붕과 흰 외벽의 건물들이 있는 산토리니나 미코노스 섬. 이런 섬이 예쁜 것은 당연하지만 아테네에서도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다.


반면에 이드라 섬은 아테네에서 배 타고 2시간도 안 걸려 갈 수 있다. 산토리니 정도는 아니어도 충분히 예쁜 곳이다. 레몬트리가 집집마다 심어져 있는 눈부신 풍경을 즐기며 섬을 한 바퀴 돌고 선착장에 오면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커피 한잔을 안 할 수 없다.


감고당길의 카페 이드라에 처음 갔을 때 주인장에게 말을 걸었다.

"이드라 섬, 참 좋지요? 언제 다녀오신 거예요?"

“어…. 난 가본 적 없는데, 사진으로만… 예뻐서요.”


듣고 아주 살짝 실망했으나, 드립 커피 맛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내가 먹어본 드립커피 중 탑 3에 들 정도. 애초에 그리스가 커피로 유명한 곳도 아니고…


언뜻 봐도 환갑이 넘어 보이는 사장님은 젊었을 때 “조직”에 계셨나 싶은 그런 외모다. 인상이 강렬한데 머리도 올백으로 하고 계신다. 그런데 말을 붙여보면 그렇게 자상할 수가 없다. 옆에 나이 비슷한 여자분이 계신데 부인이다. 부인이 드립해 주기도 한다. 3호선 안국역에서 가깝다. '서울 공예박물관'을 돌아보고 둘러보면 더 좋다. 이건희 박물관이 들어설 송현동 터도 바로 옆이다. 손님이 더 많아지기 전에 다녀오시길.

  


2. 커피 리브레 (명동성당)


성북구 안암동 고대 캠퍼스의 정경대 후문에는 카페 “보헤미안”이란 곳이 있다. 우리나라 카페 역사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박이추 선생이 일본에서 커피를 공부하고 돌아와 운영하기 시작한 곳이다. 학교 다닐 때 “미요”라는 여자 프랑스인 교수님이 계셨는데, 이 보헤미안 카페를 으뜸으로 치셨다. 내부에는 커피 원두를 담았던 자루들이 잔뜩 있었고, 커피 향 자체는 그윽하고 좋았다. 그러나 나는 그때만 해도 믹스커피 밖에 모르던 촌놈이었는지라, 교수님과 그 카페를 방문하면 보헤미안의 그 쓴 커피가 뭐가 좋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커피 리브레는 이 보헤미안의 후계자인 서필훈 대표가 설립한 곳이다. 고대를 나온 그는 한국 최초의 큐그레이더다. 커피 전문 감별사라고 보면 되겠다. 송강호가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나왔던 영화 “반칙왕”이 생각나는 리브레. 사실 잭 블랙이 출연한 코메디 “나초 리브레”가 모티프이기도 하다.


시장통에서 시작해 연남동으로 옮긴 커피 리브레가 수요미식회에 나와서 유명세를 탄 것으로 안다. 최근에는 던킨 도너츠와 콜라보해서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리브레는 명동성당에 있다. 내가 가톨릭 신자여서 사심을 갖고 추천한다. 점심때 혼밥해야 하는 데 간단히 먹고 싶을 때, 명동성당 내 르빵에서 빵을 사와서 반입할 수 있다. 나는 리브레의 커피와 함께 즐긴다. 퇴근 후 평일 미사가 가고 싶으면 그전에 잠시 들리기도 하는 곳이다.


3. 다동 커피집 (중구 무교동/다동)


이곳은 내 직장 후문 뒤 골목길에 있는 카페다. 일층에는 무교동에서 유명한 수 십 년 된 “알뜰 골뱅이”가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 사라져 버렸다. 주로 2차, 3차로 가던 병맥+골뱅이 식당이었다. 이제 직장인들이 그렇게 늦게까지 술을 먹지 않으니 운영이 어려웠나 보다. 카페 지하에는 이발소가 있고, 카페는 2층에 있다. 골목에 있기 때문에 잘 찾아가야만 하는 곳이다. 다동 커피집의 특색은 커피가 위크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커피를 한잔 마시면 다른 커피도 무제한으로 더 마셔볼 수 있다. 구수한 맛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는 이곳이 잘한다. 내부는 아재 위주의 직장인들이 와서 커피 한잔 하는 올드한 분위기다. 커블인가 그 간이 허리받침 의자가 있는데, 나는 사실 이게 이해하기 어렵다. 안 그래도 올드한 바이브를 더욱 올드해 보이게 한다. 한때 3층에서 커피 관련 강의도 했는데, 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다.


4. 알레그리아 커피 로스터즈 (ACR) (광화문 디팰리스/청계광장 케이스퀘어)


우리나라에 언제 커피가 처음 전파되었는지에 대하여는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을 기점으로 보는 평이 많다. 고종이 덕수궁 바로 옆이었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는데, 러시아 공사였던 베베르가 커피를 내놓았다는 설이다.

백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 만추의 정취가 물씬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 보자. 러시아 공사관 터를 넘어가면 디팰리스라는 모던한 레지던스가 나온다. 그곳 일층에 알레그리아 커피가 있디. 블루보틀과 비슷한 느낌의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커피집이다. 엠지 친구들과 가면 좋아한다. 청계광장 쪽 케이스퀘어(구 시티은행 본사 사옥) 안에도 있다. 청계천 쪽은 마호가니 커피가 대로변에 있다. 그래서 알레그리아는 폐업했나? 하면 안 된다. 안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 청계천 쪽 매장은 꽤 넓다. 나는 하우스블렌드인 “메리제인”이라는 원두를 즐겨 마신다.


5. 앵글 340 (세운상가)


뉴욕으로 치면 첼시나 브루클린 같은 느낌의 곳이다. 을지로를 요즘 힙지로라고 하지 않는가? 모터 소리가 요란한 살풍경 속의 힙지로다. 앵글 340 역시 ‘이런 데에 카페가 있다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서면 근사한 카페가 있다. 이곳은 뷰가 좋다. 날이 좋으면 통창을 열어 놓는다. 세운상가의 오래된 풍경과 재개발 중인 첨단 오피스텔 건물들이 뒤섞여 있다. 이미 을지로에서는 '커피 한약방'이나 '호랑이' 등의 카페는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두 곳은 좁고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단점이다. 앵글 340은 요즘 친구들 말로 갬성이 충만한 곳이다. 내부도 널찍하다.


다음 편에는 집에서 내려 먹는 드립 커피 그리고 원두 직구 등에 대하여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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