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캐릭터 그리고 플롯의 중요성
사진: 듄 메이킹 필름 북
얼마 전 개봉했던 "듄: 파트 2"의 관객수는 2백만이다.
물론 2백만이 적은 수는 아니다. 그러나 노량과 파묘의 인기에 밀린 것은 맞다. 근래 SF 영화 중 가장 수작이었던 영화니까. 사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파트 1을 보지도 않았고, 소설인 원작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듄 파트 2 영화를 보고는 그 매력에 취해 한동안 빠져 지냈다. 파트 1을 찾아서 보고, 급기야 원작 소설도 읽어보고, 메이킹 필름 책 두 권을 구해서 올 컬러의 제작기를 신나게 들추어 보기도 했다. 메인 사진도 그중의 하나다.
원작 듄은 1965년 프랭크 허버트가 소설로 출판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다. 작가는 타자기로 탈고했다.
놀랍게도 글자만으로 가득한 원작이다. 전집이 총 6권이다. 그전에도 듄을 영상에 옮겨보려는 시도는 두어 번 있었다.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이를 기념비적인 SF영화로 재탄생시킨 것은 오로지 감독 드니 빌뇌브의 힘이다. 드니 빌뇌브는 영화 "컨택트"(2016),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로 이미 역량을 입증한 바 있다. 그는 듄의 영화화에 최적화된 감독이었다. 제작진이 감독을 섭외하는데 15분도 걸리지 않았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증명한다.
그는 십 대 시절 얼마나 듄에 빠져있었던 지, 고등학교 졸업반지 안쪽에 "무앗딥"을 새겨 넣을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무앗딥이 뭐냐고? 무앗딥은 듄에 등장하는 유명 단어다. 아라키스 행성에 사는 사막 캥거루쥐를 무앗딥이라고 하는데, 주인공 폴 아트레이더스(잘생긴 우리의 주인공 티모시 살라메)가 아라키스 행성에 도착해서 부여받은 이름이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든 듄과 같은 작품을 쓰려면 도대체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 것인가? 이런 기상천외한 작품들을 관통하는 공통분모가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오늘도 스토리텔러가 되어 일상을 살아간다. 사소하지만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이야기 중 일부는 특별히 다른 누군가의 흥미를 크게 자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작품이라고 할만한 완성작이 나오기 위하여는 여기에 몇 가지를 반드시 더해야 한다. 바로, 세계관, 캐릭터, 그리고 플롯이다.
세계관, 캐릭터 그리고 플롯
먼저 "세계관"이다. 작가라면 그만의 세계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듄은 외계의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고, 시기적으로 10191년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첨단 기술이 넘쳐날 엄청 먼 미래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도로 발달한 AI나 기계가 없다. 기계가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인류가 기계를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기술 수준이 오히려 낮아져 버린 아날로그 적인 미래. 작가의 획기적인 상상력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여기에 원작자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광대한 스케일, 그 안의 독특한 행성들, 기술과 문화 전쟁이라는 세계를 창조했다.
무엇보다도 "사막"을 기반으로 한 무대를 만들어 냈다. 사막은 인간에게는 그 자체로 폐허이고 두려움과 고립감을 불러일으키는 환경이다. 자비를 모르는 곳이 사막 아닌가? 사막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면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또한 사막은 인간에게 생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낯선 그 세계는 성찰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물에 대한 작가의 상상이다. 영화에서는 '영혼의 저수지'가 등장한다. 이곳에는 아라키스 행성의 토착민인 프레멘들의 시신에서 수거한 신성한 물이 가득 차 있다. 언젠가 사막행성 아라키스를 식물이 우거진 푸른 행성으로 되돌리기 위해 모아놓은 물인 것이다. 작금의 환경파괴나 물부족 지구가 자연스럽게 교차된다. 즉, 작품의 세계는 독창적이되, 우리 인간이 밟고 살아가는 이 땅과 동떨어진 세계도 아닌 것이다.
다음으로, 저자가 구축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독창적인 "캐릭터"들이 필요하다. 프랭크 허버트는 선과 악을 기반으로 대립되는 캐릭터들을 그려냈다. 주인공 폴 아트레이더스와 어머니 제시카, 그리고 프레멘들, 그 대척점에는 하코넨 가문과 빌런 블라디미르 등이 있다. 캐릭터들은 밋밋하지 않다. 듄의 캐릭터들은 이분법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내면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플롯"이다. 감독 드뇌 빌뇌브가 원작에서 가장 좋아하는 표현이 "계획 속의 계획"이었다. 줄거리를 씨줄과 날줄을 엮어 복잡하지만 밀도 있고 정교하게 써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벨라스케즈가 그린 그림 "시녀들"이다. 이 그림을 처음 접하면 가운데에 있는 마르게리타 공주와 시녀들, 여자 난쟁이 등을 주제로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왼쪽에 서 있는 화가는 벨라스케즈 자신이다. 자화상을 그려 넣은 것이다. 공주 뒤에 있는 거울은 또 어떤가? 그 안에는 흐릿하게나마 왕과 왕비가 그려져 있다.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재밌는 그림이면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림이다.
즐겨 듣는 음악 중에 아르보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곡이 있다.
한번 들어보시라. 정말이지 몽환적인 느낌을 받으며 거울 속의 거울에 빠져드는 것만 같다.
위대한 작품들에는 "계획 속의 계획", "시녀들"과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키워드들이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독창적인 세계관 그리고 캐릭터들, 마지막으로 플롯이라는 삼박자가 조화롭게 얽히는 순간 명작이 탄생하는 법이다. 물론, 나부터 한참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