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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Oct 11. 2023

전두환과 노무현의 33년

퇴임 후 33년간 끝까지 무릎 꿇지 않았던 전두환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려 한다. 


작가 정아은은 장편소설 "모던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다. 창작이 본업인 작가만의 장점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방대한 사료를 기초로 상상력을 가미하면서 전두환이라는 한 인간을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해체한다. 작가가 양파를 벗기다 맨 안쪽에서 발견한 것은 의외로 작고 평범한 인간이었다. 


"무신경한 낙천성"을 가진 "내면의 성찰"을 생략한 "한없이 가벼운" 한 인간. 전두환 말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촉발시킨 전두환. 광주 시민에 대한 발포 명령을 그가 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작가는 발포 명령을 누가 내렸는 가에 대한 시시비비보다는 그가 "공수부대 투입"을 지시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민들의 저항이라는 형식과 내용이 통치자가 보기에 못마땅할 수는 있다. 전두환의 문제는 시민을 상대로 최강의 전투력으로 무장한 공수 특전단을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점이었다. 동시에 흥분한 군인들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를 것과 희생자가 다수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할 리가 없다는 점이다. 나이브함으로 가득찬 전두환이었다. 그 결과는 다들 알듯이 5.18 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희생이었다.


전두환을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 "가벼움"


작가가 지적하는 저 가벼움을 가볍게 보면 안된다. 사과하지 않은 채 끝없이 국민에게 지탄받았던 전두환, 33년간의 기나긴 몰락은 그의 기질, 가벼움과 나이브함에서 상당 부분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내면의 일정 깊이 이하로 내려갈 수 없도록 만드는 단단한 막이 존재해, 그 내면의 소유자가 언제나 의식의 표면과 그 언저리에서만 맴돌게 했다. 이 막의 기능으로, 특정 사건과 마주쳤을 때 전두환은 그 사건을 깊이 파고들지 않을 수 있었다. 핵심을 파고들어 가 진상과 대면하며 괴로워하는 대신, 현상에 표면에 머물다가 내상을 입기 전에 철수할 수 있었다. p.100




33년 만의 무죄 판결의 기폭제, 변호인 노무현


나로서는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이 어쩔 수 없이 계속 떠올랐다. 전두환과 대척점에 서 있었던 한 사람.


송강호가 열연한 영화 "변호인"을 기억하는지? 2014년 9월 25일 이른바 '부림사건'의 피해자 5명이 33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판사는 판결과 동시에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사법부가 가혹행위를 눈감고 인권의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


1981년 6월 11일 부산대학교에서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데모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지검은 사건의 배후로 부산의 독서 모임을 지목하고 20여 명을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불법 체포했다. 독서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가 반국가단체 행위에 해당한다며 누명을 씌운 것이다. "부림사건"의 시작이었다.


피해자들은 영장도 없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연행됐다. 이들은 독방에 갇혀 구타와 고문에 시달리다 거짓 자백을 하게 되었다. 자술서 내용은 하나같이 누군가가 불러준 내용을 받아 적은 듯 내용이 거의 같았다.


부산의 평범한 변호사 노무현이 무료 변론에 나섰다.

부림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격정적인 법정 내 변론 장면은 영화에서도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하 사법부는 가혹했다. 피고인 모두에게 징역 5년에서 7년 사이의 중형을 선고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은 재심을 청구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대법원은 마침내 무죄를 확정했다. 33년 만에 얻어낸 무죄 판결이었다.




33년간 자기 성찰 없이 살다가 간 독재자 전두환과, 33년 만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내는 단초가 되었던 노무현


독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33년간 죽는 날까지 평온하게 살았다. 골프를 치러 다니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광주하고 나랑 무슨 상관이야?" 했던 전두환. 그의 부인은 남편을 '민주화의 아버지'라고까지 했다. 그러고는 천수를 누리고 91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반대로, 자신이 말한 대로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했던 노무현. 그는 부림사건 33년 만의 무죄확정을 끌어낸 기폭제였다. 늘 자신의 말과 삶의 일치가 중요한 인간이었다. 그리고는 퇴임 후 제 말과 삶을 일치시키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다가 62세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전두환과 노무현은 '자기 성찰'이라는 프리즘을 투과했을 때 극과 극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전두환이 내면 깊은 곳의 자신과 대면하지 못한 채 자꾸만 외부 세계를 지향했던 무지한 리더였다면, 노무현은 자신을 지나치게 들여다보았던, 그래서 외부세계를 입체적으로 통찰하고 냉철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불운한 리더였다. P.268

물리적으로 같은 33년의 의미와 무게가 이다지도 다를 수 있던가?


전두환과 노무현은 한 쌍의 거울이었다. 그 거울이 비추는 대상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양면성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폭력과 비폭력, 야만과 문명, 돈과 영혼, 뻔뻔함과 부끄러움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의 양 극단을 보여주었다.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지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이기도 하다. 나 역시 전두환이 가졌던 낙천적 기질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식의 자기 성찰도 틈나는 대로 하고자 노력한다. 


전두환의 문제는 나와 관련이 없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제로였다는 점이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事 일 , 必 반드시 , 歸 돌아갈 , 正 바를 정.

처음에는 그릇되어 보였던 일도 결국 바른대로 수렴한다는 말, 얼마나 멋진가?  

현실에서는 삐끗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의 삶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매달리게 되는 네 글자다.


사죄 없이 떠나버린 전두환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사필귀정은 어쩌고?


전우원은 마법처럼 그때 등장했다. 그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전두환의 육체적 DNA를 물려받은 손자가 제발로 광주를 찾았다. 웃옷을 벗어 비석을 닦으며 할아버지를 대신해 참회하고 속죄를 빌었다. 바로 저 네 글자 사필귀정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소설가 한강이 5.18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남긴 인터뷰가 있다.

그녀는 고작 한 줄 쓰고 몇 시간을 울고는 다시 한 줄을 겨우 썼다고 했다. 


전두환은 한강이 왜 그랬는지 끝끝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자기 성찰이라는 것을 할 생각도 없고, 할 줄도 모르는 존재였으니까.


정작 책의 내용은 드라이하다. 감정을 절제하고 전두환에 대한 해체와 평가에 집중했다. 그래도 정아은 작가도 한강과 같은 심정으로 책을 써내려 가지 않았을까?


이 땅에서 전두환이라는 세 글자가 무엇을 말해주는지 깊이 있게 그러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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