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만나다.
조성진은 화면에서 보는 것보다 더 호리호리했다. 늘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할지 생각을 하고는 느릿하게 말하는 그다. 2024년 6월 2일 일요일 저녁, 제10회 강원도 계촌 클래식 축제의 피날레 무대에 오른 그의 표정은 평소의 그와는 사뭇 달랐다. 얼굴은 웃음을 머금어 환했고, 상기되어 있었다.
강원도 시골마을에서 클래식 출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그게 벌써 10년 차가 된다는 소식을 지인이 알려주었다. 흔히들 하는 인터파크로 표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었다. 네이버 예약을 통해 신청하면 추첨을 하고 당첨된 이들만이 초대받는 것이었다. 2장을 신청했다. 신청사실조차 잊고 있었을 무렵, 문자가 왔다.
"제10회 계촌클래식 축제 6/1(토) 별빛 콘서트 관람에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잠시 후 문자가 하나 더 온다. 앗! 6.2(일) 콘서트도 당첨이 된 것이었다. 일요일은 무려 조성진의 공연이었다. 조성진은 클래식 공연에서는 임영웅이다.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지인이 그랬다. 백만 원으로도 표를 못 구한다고. 설마.
우리나라에 클래식 마을이 있다고? 그것도 강원도 평창 배추밭 계촌리에?
계촌 클래식 마을은 2015년에 조성되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가 공동으로 시작한 예술마을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시골 계촌리에서 배추농사를 짓던 마을 주민들은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다.
"시골에서 무슨 클래식 축제래요. 차라리 트로트 마을을 만드는 게 낫지 않더래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동연이 기획자가 되었고, 여기에 거장 첼리스트 정명화가 클래식 마을을 만드는데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계촌은 트로트 마을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클래식 마을을 만들기는 했지만,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냉소적 반응도 많았다. 그러나 2022년의 축제가 기폭제였다. 그 유명한 피아노의 신성 "임윤찬"이 무대에 오른 것이었다. 마을이 생긴 이래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책 "예술마을의 탄생" 중에서 이동연/유시원
여름에 열리는 독일의 발트뷔네 콘서트
독일에 가면 매년 여름 발트뷔네 콘서트가 열린다. 발트뷔네는 숲의 무대라는 뜻이다. 야외무대 뒤에 정말 나무 숲이 있다. 베를린 필의 여름 야외 콘서트 장이다. 사람들은 편한 옷을 입고 공연장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해가 질 무렵 무대에는 연주자들이 등장하고 야외에서의 클래식 공연이 시작된다.
큰 아이가 어릴 때니 15년은 된 것 같은데, 압구정동의 클래식 음반 전문 매장이었던 "풍월당"에 한동안 자주 들락거렸다. 당시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클래식에 관심이 한창일 무렵이었다. 매장 한쪽에서는 최성은 풍월당 실장이 그때만 해도 귀했던 공연영상을 DVD로 재생하여 보여줬다. 그때 처음 본 것이 발트뷔네 야외 콘서트 장면이었다. 공연을 닫힌 공간에서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자연경관 속의 무대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관객들의 웅성이는 활기찬 모습과 해 질 녘의 공연장 분위기는 기존의 딱딱한 공연장 모습에 비하면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결국 나는 발트뷔네 콘서트 영상 전집 DVD를 사버렸다. 그 이후로 나온 블루레이에 비하면 다큐 영상과도 같은 화질이기에 자주 꺼내보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꺼내어 재생해 본다. 거장들 역시 평소와는 다른 태도로 지휘한다. 이를 감상하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한국의 발트뷔네, 계촌
계촌의 야외 콘서트 장은 발트뷔네 하고는 또 다르다. 일단 공연장이 평지에 있다. 아침부터 줄을 서서 손목에 차는 번호표를 받으면, 공연 시작 몇 시간 전에 각자 돗자리를 들고 와 자리를 잡는다. 나는 작은 아이스박스에 샌드위치를 싸와서 소비뇽 블랑과 곁들여 먹었다. 아내와 치어스~~ 하며 말이다. 분위기 탓이겠지. 3만 원도 안 되는 와인이 세상 맛있었다.
그날 조성진은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실제로 본 그의 연주실력이라니... 그저 압도적이었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아래의 앵콜곡이었다. 쓱 피아노 앞에 다시 앉은 조성진 옆에 지휘자였던 김선욱이 함께한 것이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두 피아니스트들은 호흡을 맞췄다. 내년의 계촌 클래식 축제에는 누가 오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