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주교 신자다. 평범한 계기로 신자가 되지는 않았다. 2018년 설 연휴 전날이었다. 응급실에 가서 머리를 열고 8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 보름을 있었다. 일반병실로 옮겨간 날이었다. 잠이 들었다 깨어나 실눈을 겨우 뜨니, 병원 특유의 흰 천장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물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잠시 후 희미한 형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모르는 이였다.
'왜? 아내는 어디 가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나의 손을 그가 잡았다.
"형제님…힘드셨죠?"
낮지만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신부님이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자세한 말씀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마디만큼은 또렸했다.
"주님의 아들이 되어 보시겠습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울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나에게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리처드 도킨스'와 '만들어진 신'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무신론자였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신부님은 세례를 주시고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주셨다. 대세였다. 천주교 신자가 되려면 6개월간 교리 수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 위급한 환자에게는 즉시 세례를 줄 수 있는데 내가 받은 것이 그 대세였던 것이다.
서울 강남의 역삼동 성당에 다녀왔다. 내가 다니는 성당의 총회장님 딸이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총회장님은 내게 각별한 분이다. 내가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 대부 역할을 해주셨다.
'아니, 대세라는 세례를 이미 받았다며?'
몰랐던 게, 대세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 도로 교리 수업을 들어야 한다. 퇴원 후 성당 신부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신부님! 저는 대세를 받았으니 교리 수업은 따로 안 받아도 되지요?"
은근슬쩍 한 마디 여쭈었다. 신부님은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대답하셨다.
"주님의 은총으로 건강을 회복했으니 교리 수업, 빠지지 말고 다~들으세요."
그해 성탄 세례일이었다. 신부님을 향해 걸어 나갈 때 대부 역할을 해주신 분이 바로 총회장님이었다. 내 실제 대부는 공교롭게 미국에 장기 체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총회장님은 내 뒤에 서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따스한 손길을 지금도 기억한다.
역삼동 성당의 그날 결혼식은 대성황이었다. 총회장님이 그간 어떻게 인생을 살아오셨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역삼동 성당은 내부 규모가 상당히 크다. 그 큰 성당이 하객들로 가득 채워졌다. 사제는 한 분도 아닌 다섯 분이나 오셨다. 성가대의 노래는 여기가 예술의 전당인가 싶게 수준급이었으며, 음식 또한 풍성하면서 맛났다. 신부와 총회장님의 얼굴은 참으로 밝았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넘쳐났다. 하객들의 인파를 헤치고 나오는 길에 뒤돌아 보았다. 성당의 웅장한 파사드가 눈에 들어왔다. 내 딸도 훗날 이런 곳에서 예식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하객으로서도 부러움이 느껴지는 그런 혼례식이었다.
요즘 가을 저녁 공기가 선선하다. 퇴근 후 동네를 한 바퀴 돌려고 홀로 가벼운 차림으로 나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별생각 없이 한참을 걷는데 어느새 내가 다니는 성당 앞이었다.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었다. 7시 반. 평일 미사 시간이었다. 운동복 차림이었기에 순간 망설였으나, 참례하기로 마음먹고 불쑥 들어갔다.
오늘은 신부님의 강론이 끝나고 특별한 순서가 있었다. 약식이지만 혼례식이 있었던 것이다. 신랑 신부와 그들의 친구 한 명씩 총 4명이 맨 앞에 앉아 있었다. 혼례식이라고 하기에는 신랑 신부의 차림이 너무나 수수했다. 신랑은 청바지를 입었고, 머리는 군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바싹 쳐올렸다. 신부는 신부화장은 고사하고 옅은 화장도 하지 않았다. 낡았지만 깨끗한 블레이저 상의에 머리는 노란 고무줄 두 개로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단출한 식을 올렸을까? 신랑의 본명은 대건 안드레아였다. 최근에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전기를 읽어서 그런지, 그의 이름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식이 끝나고 커플은 뒤돌아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손을 꼭 잡고는 신도들에게 허리를 한껏 굽혀 인사를 했다.우리 성당 평일 미사의 신도 수는 역심동 성당의 하객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박수 밖에 없었다. 작은 성당에 최대한 울려 퍼지게 조성진, 임윤찬의 앵콜 곡보다 더 세게 박수를 쳤다. 하느님의 축복이 성대한 식에만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커플은 몰디브로 신행을 다녀올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굳이 남들보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도 또한 없다. 그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 그리고 사랑으로 오래도록 함께 하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