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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파파야 향기 Apr 23. 2022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이번 한 달 나의 목표는 글을 많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쓰는 것이다. 어디에 쓰든 상관없이 하루에 5줄 이상 글을 써서 차곡차곡 글감을 모으는 일을 하려고 한다. 이런 작은 습관을 들이다 보면 글 쓰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 기대로 야심 차게 시작했다.


펜으로 끄적이다 보면 다이어리 한 페이지 이상 쓰게 될 때도 있지만 요즘 내가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에 여러 플랫폼에 쓰다 보면 글 쓰는 것보다 검색으로 딴짓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 마음을 잡고 글을 쓴다고 해도 자연스럽지 않고 뭔가 딱딱하게 변하곤 한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 펜으로 쓰면 뭔가 글을 쓰고 공부를 하는 것 같은데 노트북으로 글을 쓰면 뭔가 일을 하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는 더더욱 디지털 환경에서 글을 쓸 일이 많을 텐데 노트북을 보면 자연 반사적으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니... 나는 나의 노트북으로 일이 아닌 글을 쓰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사람이 참 요상한 것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하면서도 매일 쓰려고 생각하면 잘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노트북 빈 화면에 커서만 깜빡거린다. 그러다가 또 뭔가 쓰기 시작하면 막 써지는 것이 글이라는 참 신기하다. 뭘 쓸까, 어떻게 하면 진솔하게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창 밖을 보니 어여쁜 봄빛들이 나를 부른다.


봄이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의 봄이다.


커피잔 옆에 놓인 수첩에 메모를 하려다 보니 거기에 적어 놓은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시를 읽는 순간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그래, 내 주변의 자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봄날이다.

오늘은 흘러가는 봄을 그저 바라보려 한다. 나의 짧디 짧은 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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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번 봄에는 비장해지지 않기로 해요

처음도 아니잖아요

 

아무 다짐도 하지 말아요

서랍을 열면

거기 얼마나 많은 다짐이 들어 있겠어요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해요

앞날에 대해 침묵해요

작은 약속도 하지 말아요

 

겨울이 와도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보지 않기로 해요

봄을 반성하지 않기로 해요

 

봄이에요

내가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봄

금방 흘러가고 말 봄

 

당신이 그저 나를 바라보는 봄

짧디 짧은 봄

 

우리 그저 바라보기로 해요

 

그뿐이라면

이번 봄도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유병록,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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