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첫마음을 가졌는가>
"전화번호 뒷자리가 어떻게 되시죠?"
"6348이요"
"정의준 씨?"
"네"
내가 작년에 세상을 떠나 보낸 남동생의 이름을 들을 수 있는 마트에서의 대화다.
물건을 사고 나서 포인트를 적립할 때마다 확인하는 직원을 통해 듣게 되는 남동생의 이름.
이제는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어서... 잊지 않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마트에서 동생의 이름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포인트 적립자 이름을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이렇게라도 동생을 기억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그냥 두기로 했다. 그후 나는 마트에 가면 이렇게 동생을 추억하게 됐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아마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절대 바꾸지 않을 것 같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에일 듯 아팠단 마음이 어느덧 무뎌지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 대화를 미소로 넘기고 있다.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겠다.
동생이 떠나기 전에 내가 가졌던 마음,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마음을 다시 찾아 기지개를 켜야겠다.
첫인상을 남길 기회는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
첫사랑의 떨림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첫마음을 새길 시기는 한 번 밖에 오지 않는다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좌우되지 않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무력한 일상 속에서도 나 살아있게 하는
그 첫마음을 가졌는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때나
화려한 빛에 휘청거릴 때나
눈물과 실패로 쓰러졌을 때나
나를 다시 서게 하고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힘
나의 시작이자 목적지인 첫마음의 빛
일생 동안 나를 이끌어가는 내 안의 별의 지도
떨리는 가슴에 새겨지는 그 첫마음을 가졌는가
- 박노해, <첫마음을 가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