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컨설팅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할 당시 유독 치과의사분들과 인연이 깊었다. 그중에서도 특정 학교 출신 원장님들과 그랬다.
인연이 깊었다는 말이 단순히 가깝거나 친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분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다는 얘기다. 치과 개원이 많기도 했고, 그분들의 치과가 잘 되어서 소개를 많이 받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그분들의 치과가 잘 된 것이 내 실력 덕분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개원의 원장님들과의 미팅 과정에서 호기롭게 병원의 성공을 장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돌이켜보면 꽤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그건 내 실력이 아닌 그분들의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여러 면에서 이미 성공할 준비가 돼 있었다. 병원 입지가 남달랐고, 열정도 대단했다.
특히 그분들은 ‘잘 되는 치과의 장점을 자기화’하는 데 명수였다. 어떤 치과가 그렇게 해서 잘 됐다고 하면 지체하지 않고 그것을 본인의 상황에 나름대로 흡수하여 자기화했다.
다른 치과의 것을 흡수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거부감이 없었다. 사실 거부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지향했다.
이에 반해 전통적으로 치과의사를 많이 배출해 온 특정 대학 출신 원장님들과의 인연은 그리 깊지 못했다. 클라이언트가 많지 않기도 했고, 간혹 진행되더라도 그리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그분들은 치과의사로서의 프라이드가 남달랐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측면이 있었다. 병원마케팅이란 것이 필연적으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들 수밖에 없는 작업인데 그것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프라이드가 침해될 수 있는 일들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던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앞서 인연이 잦았던 특정 학교 출신의 원장님들이 유능한 사업가 같다고 한다면 이분들은 올곧은 학인 같았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각각의 매력이 있었다.
다만 성공적인 개원이란 목표만을 따로 떼어 이야기하자면, 개원 당시에는 어떤 것이든 수용하고 흡수할 수 있는 ‘개방성’ 있는 태도가 필요한 측면이 있다.
필요하다면, 좋은 것으로 생각된다면, 지체하지 않고 그것을 흡수해서 자신의 병원에 적용하는 자기화의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마 번성의 이유를 다룬 한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질문을 했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로마인이 대제국을 건설하여 오랫동안 번영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로마 이야기》를 펴낸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번성의 이유를 ‘개방성’이란 말로 표현했다. 정복한 국가의 민족, 종교, 문화를 말살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수용하고 흡수한 것이 1,000년 이상 로마가 번성했던 이유라고 말한다.
혹자는 제국으로써의 영토확장이 하드웨어적 M&A라면, 이와 같은 타문화의 장점을 흡수하고 자기화한 것에 대해 소프트웨어적 M&A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상당히 신속하고 효율적인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을 비유한 이야기다. 이것은 앞서 인연이 잦았던 특정 학교 출신 원장님들의 에티튜드와 일맥상통한다.
로마 번성의 이유가 개방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내가 만나왔던) 특정 학교 출신 원장님들의 성공 역시 그분들의 열려있는 태도, 즉 ‘개방성’이 성공의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개원을 처음 준비하는 분들은 정보가 많지 않다. 봉직의로 수년간 근무하면서 어깨너머로 보고 들어온 간접적인 경험들에 제한돼있다.
이렇게 부족한 정보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그것은 잘 된 치과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필요한 것들을 신중히 자기화해가는 것, 그것이 개원을 앞둔 분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에티튜드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잘 된 경험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