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한 강의에서 마가복음이 쓰인 과정에 대해 재밌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노파심에 첨언하자면 마가복음은 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서의 일부이다.
핵심은 마가복음이 쓰인 시기인데, 예수라는 분이 죽고 난 뒤에 30년 뒤에나 마가복음서가 쓰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공간의 공백은 무엇으로 메꿀 수 있나. 어떻게 그 긴 시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생생하게 마가복음은 성서의 일부로 쓰일 수 있었나.
당시 그 강사의 말로는 “입에서 입으로” 그러니까 ‘입소문’을 통해 계속해서 구전되어 그 이야기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분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지는 사실 비전문가인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30년이라는 공백을 이야기로 메꿀 수 있다는 대목에서만큼은 내가 특별히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 지금에서는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유통기간은 30년이라고 해도 특별히 이상할 이유가 없을 만큼 길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병원을 홍보하는 콘텐츠들을 살펴보자. 많은 경우 앞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이야기’가 아니라 ‘자랑하기’에 빠져있다.
노골적인 자기 자랑은 때때로 거부감이 들뿐만 아니라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다. 휘발되고 만다.
나는 군시절을 우리나라의 최동북단인 거진이란 바닷가에서 근무했다. 30명 단위의 작은 막사 생활을 했는데, 그 작은 공간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면 의례 있는 희로애락이란 게 담겨 있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고생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여러 에피소드들이 참 많기도 했다.
그중 기억나는 일 중에 하나가 ‘소대장의 가는 날이 장날 사건’이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당시 우리 소대장이 철책 안 바닷가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던 중이었다.
물론 군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사의 관리자였던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또 워낙 깊숙한 곳이라 뭐라고 할 사람이 자주 찾아오기도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속담 있지 않은가.
“가는 날이 장날이다.”
그날은 장날이었다. 초소 생활 내내 없던 소령의 순시가 있었다. 당시 근무자였던 나는 입으로는 ‘충성!’이란 구호를 외쳤지만, 마음으론 ‘어서 피해!’를 소대장에게 텔레파시 보내듯 일갈했다.
하지만 벌어진 상황은 내가 어쩔 도리가 없었고, 그저 한창 물놀이 중인 소대장이 있는 철책 방향으로 소령이 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역시 ‘장날’이었다. 소령은, 이런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나름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소대장의 물놀이가 벌어지고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리곤 주저함 없이 그 아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연신 발장구를 치는 해맑은 소대장이 있었다. 소령은 내게 짧게 물었다.
“저 *끼 뭐야?”
소대장은 허겁지겁 올라와서 관등성명을 댔고, 이후에 시말서 비슷한 걸 썼는지는 나는 모를 일이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사실 이 일은 이야기한 것처럼 나의 군생활 중 발생한 일이다. 그리고 그때는 16년 전이다. 그런데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게 포인트다. 앞서 마가복음서의 작성 시기와 예수님의 죽음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30년이라는 공백이 이야기의 구전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건 의도적으로 인지하려고 하지 않아도 수십 년 전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곧잘 꺼내어 늘어놓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구전을 통해 30년의 공백이 메워졌다는 사실에 대해 특별히 의구심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그 소대장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나지만 정작 그 당사자의 이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지워지고 만 것이다.
참치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길다고는 하지만, 이야기의 유통기한에 비하면 참치 통조림의 유통기한은 ‘참치 앞에 멸치 수준’이다.
병원 마케팅을 진행해 오면서 꽤 여러 업체들의 마케팅을 진행하며 주변 경쟁병원의 콘텐츠들을 모니터링해 왔지만, 크게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지 않다. 다만 인터뷰를 통해 스토리를 발굴했던 원장님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내 몸 어디가 아프면 어떤 병원을 찾아갈지 이미 마음속에 정해둔 상태이다. 실제로 구강 우측 하부에 비스듬히 올라온 나의 매복 사랑니에 충치가 생겨 발치를 고민 중인데 떠오르는 분이 한 분 계신다.
인터뷰를 통해 사랑니 발치에 대한 치과의사로서의 나름의 소신 있는 스토리를 들려주었던 한 원장님께 가서 발치를 부탁드릴 예정이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프로그램으로 방영됐던 『이야기의 힘』이 똑같은 제목으로 책이 발간됐다. 그 책의 비교적 앞머리에 “인간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세 가지 이유”란 주제를 다루면서 가장 첫 번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서술해 두었는데 그것으로 이번 주제를 마치려 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기억을 잡아두기 위함’이다. (…)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어릴 때는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로부터 그를 더 강하게 기억하게 되었고, 에디슨이 전구를 완성할 때까지 수만 번이나 실패했고, 품속에 알을 품어 부활시키려 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그를 절대 잊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