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나오라 그래!”
음식점 같은 곳에서 문제가 생겨 언성이 높아지면 간혹 들리곤 하는 말이다. 앞에 직원이 있어도 굳이 사장을 찾는 이유는 뭘까.
이건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과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사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병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환자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환자가 어떤 인격적 결함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신체 어딘가에 불편한 문제가 생겨서 온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것이 방문한 환자의 마음이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책임과 권한을 가진 의사와 이야기하고 싶은 환자의 마음은 거의 절대적이다.
특히 일반 의원급 병원에서의 의사는 책임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사장’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환자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줄 수 있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아무리 간호사가 친절하고, 상담실장이 조리 있는 말로 상담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결국 책임과 권한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의사와의 카운슬링이 병원 선택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문제적으로 보이는 것은 현재 병원 마케팅의 콘텐츠 대부분이 화자(Narrator)가 불분명해 보이거나 책임과 권한 그리고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마케터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마케터는 마케팅의 전문가이지, 의료영역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환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책임과 권한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의사의 목소리가 콘텐츠의 화자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환자들이 듣고/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환자들이 반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강남역 인근에 개원하시는 성형외과 원장님과 마케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원장님은 젊으셨고, 첫 번째 개원이셨다. 건물 하나에 2-3개씩 성형외과가 난립해 있는 강남에 개원하는 이유를 물으니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동안 강남에서 오랫동안 봉직의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친근하고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 개원지 선택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병원의 콘셉트를 물으니 역시 없었다.
그리고 개원지 선택의 이유나 병원의 콘셉트를 묻는 것이 남사스럽다는 듯 “성형외과가 이렇게 많은데 우리같이 조그만 개원 성형외과에 누가 수술하러 오겠어요!”라고 나무라듯 말하시며 싸구려 쁘띠 주사 같은 것들을 대폭 할인해서 병원 운영을 해나가겠다고도 얘기하셨다. 그게 그 원장님의 병원 콘셉트였다.
나는 이런 방향성에 대해 반대했다. 이미 그런 싸구려(?) 쁘띠 주사를 박리다매 형식으로 하는 콘셉트의 네트워크 병원이 이미 여럿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차별화’가 필요했다.
수 천 개의 성형외과가 자리한 강남역 한복판에 30평 남짓의 작은 성형외과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게다가 작은 개원 성형외과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되는 예산의 폭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대형광고기획사가 엄청난 광고 예산을 가지고 체계적인 캠페인을 벌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딱 한 발이 남은 권총을 가진 것이다. 이 한 발이 빗나가면 기회는 다시없었다. 그때 여러 업체들의 콘텐츠를 모니터링하면서 인사이트로 얻은 생각이 이거였다.
“(비전문가인 마케터가 아니라) 전문가인 의사의 목소리를 콘텐츠에 담아내자.”
그때 시작한 것이 원장님과의 인터뷰였다. 거기에는 택틱한(전술적인) 병원의 자랑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현장감 있는 원장님의 스토리를 담아냈다.
마케터가 디자인하고 텍스트 작업을 하고 콘텐츠를 최종 송출했지만, 실제 콘텐츠의 내레이터는 전문가인 원장님이었다. 각자 본래의 자리로 찾아 돌아간 것이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원장님의 역할을 대신(?) 했던 마케터의 병원 자랑은 종료됐다. 원장님은 본인의 콘텐츠를 성찰적으로 발설해 주시면 됐고, 마케터는 발굴된 원장님의 좋은 콘텐츠를 예쁘게 포장해서 소비자들에게 선물처럼 제안하는 역할로 돌아갔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앞서 마지막 남은 총알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한 발은 목표지점을 관통했다. 콘텐츠에 환자들이 반응한 것이다. 개원 첫날 그것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재수술 환자가 4명이 잡혔고, 개원 첫 달의 매출은 생각보다 높았다.
강호동이 씨름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 샅바를 잡으면 상대방의 몸에 대한 정보가 읽혔다고 한다. 허리가 강한지, 종아리 근력이 강한지, 어깨 근력이 강한지. 상대 선수의 내공이 몸으로 읽혔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다. 병원마케팅의 콘텐츠는 해당 영역의 전문가인 의사로서의 내공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래서 직접 나와야 한다. 의사로서 몸으로 익혀오고 축적해 온 내공을 콘텐츠에 ‘직접 나와서’ 마음껏 발산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원장님의 내공을 환자들이 콘텐츠를 통해 몸으로 마음껏 느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직접 나와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원장님들께 이 말을 꼭 당부하고 싶다.
“환자가 의사의 샅바를 잡아볼 수 있게끔 모래판으로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