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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우 Dec 14. 2023

재밌으니 술술술 읽힌다

중학교 시절에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 『실미도』와 『퇴마록』이다. 그 흥미진진함이란, 밤새워 책을 읽을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영화로 실사화되고 난 뒤에는 그 흥미로움이 크게 반감됐다. 영화로 보니 크게 재미가 없었다는 말이다.    

  

왜 그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야기에는 여백이 많기 때문이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는 실록과는 다르다. 그림으로 치자면 완성된 정밀화가 아닌 스케치에 가깝다. 


때문에 독자/청자는 이야기의 여백을 자기 나름대로 채워간다. 색깔을 입히고, 밝고 어두운 구석들의 차이를 주며, 거칠고 부드럽게 하는 나머지 작업들을 채워가게 된다. 


이런 말을 꺼내놓은 이유는 결국 이야기가 인터랙션, 즉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거다. 그리고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면 이야기의 재미는 증폭된다. 


가만히 듣고 있는 것보다는 ‘대화’가 재밌지 않나. 일방향적인 정보전달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소통을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이야기라는 점이 핵심이다. 


쉽게 말하면 영화로써의 실미도를 통한 인터랙션이, 소설로써의 실미도를 통한 인터랙션에 못 미쳤던 거다. 그래서 재미가 반감된 거다.


앞서 지적해 왔던 것처럼 병원마케팅에서 자랑 나열식의 콘텐츠는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 


왜 재미가 없을까. 인터랙션이 없는 거다. 일방향적으로 정보만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잘난 척이 되게 심한 상대가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있는 경우라고 보면 된다. 


영업부는 아니지만 간혹 영업지원을 나갈 때가 있다. 여러 차례 나가면서 얻은 인사이트 중 하나는 영업을 잘하는 사람은 일종의 인터랙션, 즉 상호작용을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실록을 읊조리듯, 우리 회사의 장점을 완벽히 프레젠테이션 하는 게 잘하는 영업이 아니더라는 말이다. 


클라이언트와의 인터랙션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자기 말만 하다 돌아왔다면 그 미팅은 100% 실패한 미팅이다. 클라이언트에게는 상당히 ‘지루한’ 미팅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병원마케팅을 시작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터뷰’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다뤄지는 질문들은 의도적으로 환자의 입장에서 질문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환자와의 인터랙션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환자가 궁금해할 법한 내용에 대한 답변을 이야기로 발굴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한 번은 강남의 대형성형외과 출신 원장님이 지방으로 내려가서 개원을 하게 되신 적이 있었다. 인터뷰 질문을 준비하면서 환자들이 무엇을 가장 궁금해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중에 하나가 강남대형성형외과에서 근무하던 성형외과 전문의가 왜 지방 소도시에 와서 개원을 하는가. 혹시 어떤 사고가 터졌다거나 문제를 일으킨 의사가 아닌가 등 여러 의구심을 지역주민들이 가져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서 인터뷰 과정에서 이에 대한 원장님의 생각을 물었고 그것을 정리했다. 


내용을 간추려보면 이렇다. 강남의 치열한 경쟁적 상황 때문에 수술을 잘하는 병원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을 잘하는 병원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아쉬웠다.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어서 강남을 떠났고 이곳에 왔다. 


그리고 그 치열한 상황이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염증을 느끼게 됐다. 경쟁이 좀 덜한 이곳에서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집중하는 진정성 있는 진료를 해나가고 싶다. 이것이었다.


내가 말하는 이야기로써의 콘텐츠가 재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야기로써의 여백이 상상력을 촉발해 낸다. 강남의 분주한 거리와 바쁘게 운영되는 화려한 성형외과가 오버랩되고, 연이은 수술을 마치고 녹초가 된 의사, 고뇌하는 모습, 그리고 새로운 결심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상상되기도 한다. 


만약 사진이 없는 텍스트로만 구성이 돼있다면 글의 어투나 내용이 주는 느낌으로 원장님의 얼굴을 나름 떠올려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이다.   


박장대소를 유발하는 재미를 추구하자는 것이 아니다. 환자와 인터랙션을 하자는 말이다. 이야기를 통해 환자의 상상력을 촉발하고, 환자와 일종의 공감대를 형성해 내자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콘텐츠가 재밌어진다. 환자들이 읽고 싶어지는 콘텐츠가 된다.


원장님들께 콘텐츠에 이야기가 꼭 필요하다고 하면 간혹 “누가 그렇게 긴 글을 읽나요? 그냥 예쁜 이미지가 좋아요.”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다. 


이미지가 중심이 되는 인스타그램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최근의 트렌드를 보면 알 수 있듯 틀리지 않은 말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약간의 구분이 필요하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흥미 위주의 단순 소비성 콘텐츠와, 본인의 소중한 몸에 관련된 ‘특정 필요’를 가진 잠재고객으로서의 환자에게 제공되는 콘텐츠로써의 성격은 좀 다르다는 것이다.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를 원하는 경우라면 예쁜 이미지 정도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구체적인 치료에 대한 정보는 ‘말과 글’이 충분히 필요하다. 


대학병원 대해 불만을 갖는 환자들의 이유가 무엇인가. 30분 대기하고 3분 진료한다는 점이 불만이지 않은가. 충분히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인터랙션 하고 싶어 한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우리는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인터랙션이 가능한 이야기로써의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재밌게 술술술 읽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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