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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샐러리맨 Mar 16. 2023

주 69시간 제도의 진짜 목적은?

주 69시간 근로제도 변경안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난리다.


근로시간과 임금은 추구하는 방향이 상극이다. 

근로자들은 당연히 근로시간을 최소화하려 하고,

사용자들은 임금을 최소화하려 하기 때문에, 

이 중간에 `선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다. 선의란, 정부가 현재 공유하고 있는 묻지마 칼퇴, 나만의 충전시간 등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이다. 근로 관련 법을 개정할 때는 이런 선의가 안 통하기 때문에 반드시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여야 한다.


계약된 업무량 혹은 시간보다 근로를 덜하고 임금을 다 받아가려 하면 도둑넘이고, 이경우 회사에서 업무 태만 등으로 경고하거나, 평가를 낮게 준 다음 해고하는 경우도 있고, 더 많은 경우가 저성과를 사유로 여러 수단들(전보, 직무 변경 등등)을 써서 알아서 나가라고 할 것이다. (권고 사직)

근로를 더했는데, 임금을 덜 주면 사용자가 도둑넘(임금 체불)이고, 노동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 부분은 시간 없고 돈 없는 근로자들에는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대한민국의 사무직들이 초과근로수당을 제대로 받아갈 확률은 별로 없다. 대기업군들을 제외할 경우 제로에 가깝다. 이건 이유가 있다. 사무직 근로의 경우 실제 근로와 비근로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출근하자마자 매일 화장실 30분, 그리고 일과 중 담배 피우러 6번 정도 가서 10분씩만 머물러도 8시간중 90분이 날아간다. 여기에 점심시간에 30분 더 쓰면 2시간이 날아간다. 사용자는 이 부분이 억울하다. 그리고 이런 직원 주변에서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실 사례이다.)

사무직의 일상적인(?) 1시간 정도의 초과근로는 아래와 같다.

아침에 30분 정도 일찍 출근하여 컴을 켠다. 종료 후 퇴근을 30분 정도 늦게 한다. 

솔직하게 이정도 가지고 초과 근로 했다고, 그래서 초과근로수당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무직 직원은 별로 없는데, 전혀 없진 않은 모양이다.

모 중소기업의 직원 몇 명이 컴 로그인-아웃 기록 및 출퇴근 카드 기록, 그리고 해당 시간에 이메일상 업무지시 등을 근거로 하여 초과근로수당을 체불하였다고 노동부 및 노동위원회에 진정고소고발조치 하였고, 풍부한(?) 근거자료로 인해 체불임금을 지불한 오너 사장은 깊은 빡침에 아래와 같은 조치를 내렸다.


업무시간 준수 및 업무시간에 금지사항 : 

화장실 금지

흡연 금지 

회의 이외 회의실 잡담 금지 

사적 업무(은행 등) 금지 

회사 컴 사적인 용도로 사용 금지

위 시간 사용은 사전 보고 후 사용하며, 이 시간은 근로시간 공제

보고 없이 무단 이탈 적발시 징계조치 및 근로시간 공제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조치이니 근로자들로서는 할 말이 없고, 이후 사무실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벌해 졌다고 한다.


살벌한 얘기 하나 더.

30분 일찍 와서 하는 업무준비시간은 명확하게 근로시간으로 명시되어 있다.

필자가 모 화학관련 중소기업에서 근무할 당시 생산직군의 임금이 상당히 높았는데, 이중에 정년퇴임후 계약직으로 재고용되신 분들이 몇 분 있었고, 그 분들 중 집에서 할 일이 없는 원거리 거주중인 분이 1시간 30분 전에 와서 사무실에서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체력단련장에서 운동도 한다.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막상 이분이 근태카드를 찍고 들어오면 근로가 아니라고 주장할 논리가 미약하다. 화학공장 특성상 긴 라인생산이다 보니 근로자의 동선을 일일이 통제할 수가 없다. 작은 기업이라서 다른 조치(대기 장소, 출퇴근 카드 별도 인식 등등)를 할만한 여건이 안되어 할 수 없이 그분에게 늦게 오도록 몇차례 말씀을 드렸는데, 그분은 잠도 없고, 교통체증 피해서, 즉 자기가 좋아서 나오는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그렇지만 당시 회사는 이미 노동부 불시 감사를 통해서 `업무 준비시간에 대한 시정조치`를 명 받았기에 결국 취한 조치는 30분 이전 출입이 안되도록 조치하였고, 그분은 이전보다는 조금 늦게 오시긴 했으나, 30분 정도 주차장의 차 안에서 대기하다가 들어오시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주 69시간제 변경 관련 인터넷상 돌고 있는 가상 근무표이다.


위 표의 맹점은 매우 많다. 30여년 경력의 인사 실무자로서 견해는 이렇다.

나만의 휴가, 충전 타임을 2주에 걸쳐 3~4일씩 가질만한 여건이 되는 회사는 장담하건대 10%도 안된다. (그것도 매달)

일단 업무 인력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회사가 인건비 비중을 낮추고자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해 가는데, 감히(?) 한주도 아니고 2주를 그렇게 장시간 공백이 생기면 다른 직원들이 죽어 날 것이고, 결국 무언의 압력과, 비자발적인 선의(?)에 의해 직원은 어리버리 출근할 수밖에 없다. 어리버리 출근이란, 정시출근은 아니고, 재택근무형태가 될 수도 있고, 전화 회의 혹은 전화 업무등 어떤 형태로든 업무를 할 것이라는 얘기다. 

매일 얼굴 보며 일하는 동료들, 더구나 직속상사들이 고생할 것을 뻔히 알면서 맘 편하게 휴가를 주욱 갈만한 멘탈도 없을 뿐더러, 이후의 눈치 없음에 대한 후폭풍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결국 나만의 휴가, 충전 타임, 묻지마 칼퇴는 사진 속의 공허한 꿈이고, 앞의 야근 및 토요일 근무만 법적으로 보장받게 될 것이다.


당연히 사용 가능한 연차조차 다 못쓰면서도, 노동법에 보장된 미사용 연차휴가수당마저 `휴가사용촉진 조치`라는 방법에 의해 박탈되어 결국 휴가도 다 못 가고, 돈도 못 받는 근로자가 태반인게 현실인 대한민국 월급쟁이 사회에서 야간 및 휴일에 일 더했다고 장기 휴가를 맘 편히 갈 거라고 믿는? 혹은 우기는 정부 관료들은 현장의 얘기를 `많이 더` 들어야 한다. 


정부가 모르고 벌인 일이라면 그래도 실수라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텐데, 인사 전문가가 본 이번의 주 69시간 파동의 실제 원인은 `선의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적은 명확하다. 사용자들의 탈법 리스크 줄이기이다. 나만의 휴가 충전 타임이 목적이 아니라, 주 52시간 한도 위반이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워 노동부에서 터는 회사마다 위반사업장으로 적발되니 사용자들의 이 리스크를 없애고자 발의했고, 여기에 붙인 구호가 나만의 휴가, 충전 타임, 묻지마 칼퇴 등등의 허울 좋은 명분들이다. 


사용자 좋으라고 만든 제도를 가지고 근로자를 위한 척 하게 되니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의도한게 뻔한 다른 목적에 좋은 미사여구를 붙여 설득하려 하는데, 

대한민국의 2천만명 정도 되는 근로자들 중 

절반 정도인 1천만명 정도는 들을 수록 화가 나는 주 69시간 변경안

900만명 정도는 별 관심도 없는 변경안,

그리고 나머지 모든 인사업무 담당자들과 사용자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변경 안이 이번 파동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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