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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 Story Oct 16. 2019

나의 이십 대, 전부 너였다 베트남.

첫 취업에서 베트남항공 승무원으로 이직까지 모두 in Vietnam

나는 아름다운 나의 이십 대와의 작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29살의 직장인이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구분하는 것이 구식 사고방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주에서도 대운은 10년 단위로 바뀌지 않는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20대에 내가 어떤 것을 경험했고, 그로 인해 무엇을 얻었는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내게 이렇게 묻는다. 왜 베트남에 가게 되었냐고. 그리고 나에 대해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은 독일어는 아직 안 까먹었냐고. 그렇다. 나는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지만 갑자기 대학을 졸업한 해인 2014년 2월에 베트남으로 떠났다.


누구나 그렇듯 졸업반에는 눈물의 자소설을 짜내기 위해 밤을 새우고, 감감무소식인 영어 귀를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엄친아 얘기를 듣게 된다. 엄마 친구 아들, 이른바 엄친아는 베트남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 때마침 연수생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게시되었고 나 역시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다.


취업 준비 기간 동안 수많은 회사들은 나에게 잔인하게 불합격을 통보했고,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리던 합격은 순순히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 당시 나는 학원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알바시간에 정규직 불합격 통보를 받는 비참함이란. 그때부터 이미 내 베트남 일대기가 눈물로 얼룩질 것이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었을까.


불합격 통보로 우울한 마음을 겨우 달래고 며칠이 지나, 합격자가 연수원에 입소하지 않아 추가 합격 기회를 주겠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가진 건 자존심밖에 없는 나였기에 바로 입소하겠다는 대답 대신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 소식을 들은 엄마의 성화에 나는 곧장 다시 전화를 걸어 입소 의지를 전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이십 대를 함께한 "애증의" 베트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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