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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공작새 Nov 05. 2019

성장과 로봇, 그 사이에서 길을 잃다

철지난 영화리뷰 - 범블비


*스포 신경 안 쓰고 썼으니 안 보신 분들은 주의







트랜스포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폭발로 이리저리 흩어지는 로봇들의 부품들, 

눈이 못 따라갈 정도로 현란하게 움직이며 변신하는 기계 몸체,

국뽕에 잔뜩 차오른 미군 연출,

그리고 보다보면 어이가 없어지는 개연성. 


이 이미지들은 트랜스포머가 인기를 얻은 요인인 동시에 3편부터 시작된 지옥의 내리막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시리즈 리부트라는 대담한 기획으로 돌아온 범블비에는 저 요소들이 전혀 안 보였다.

 

이 변화에 대해선 말이 많았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존재 이유를 없애버렸다는 사람들과 시리즈 생존의 새로운 길을 찾았다는 사람들, 뭐 대충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굳이 꼽자면, 나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취향이 아니던 영화에서 취향에 가까워진 영화가 되었을 뿐이다. 



몇몇은 궁금해할 것이다. 로봇과 액션을 빼면 트랜스포머에 무엇이 남냐고. 

영화 '범블비'는 대답한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가 남는다'고.



소녀라 하기엔 꽤 큰 찰리와 커여운 범블비


영화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녀 '찰리'다. 

초반 사이버트론 행성에서의 대규모 전투나 범블비와 빨강이 파랑이 로봇과의 전투가 나오긴 하지만 마이클 베이와 달리 이 감독은 전투를 조미료 수준으로만 사용한다. 조금 더 과격하게 말하면, 범블비 대신 E.T나 셰이프 오브 워터의 괴물이 범블비를 대신했어도 상관 없을 만큼 작품의 포커스는 찰리의 성장에 맞춰져 있다. 


과거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죽은 이후, 찰리는 그때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은 그 슬픔은 잊은 듯이 새 아빠와 함께 즐거운 생활을 향유한다. 

사춘기의 소녀에게 있어 이 괴리감은 극복하기 힘들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 때문일까, 거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와도 찰리는 차고에 박혀 과거 아버지와 함께 수리하려 했던 차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밖에선 인싸 무리에 무시당하고, 집에선 소외감을 느끼던 그녀가 만난 것이 범블비다. 로봇과 소녀는 이런 류의 영화에 있어 왕도적이고 정석적인 절차를 밟아가며 친해진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 못 하지만, 이런저런 사고를 겪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는 관계가 되는, 뭐 그런 뻔하디 뻔한 전개 말이다. 


범블비를 쫓는 게 국가가 아니라 이 태극커플이란 점은 나름 클리셰를 벗어났을 수도...?


 수학의 정석 마냥 정석대로의 전개를 밟으며 마침내 사춘기 소녀 찰리는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하고 드라이빙을 하는 당찬 여자가 되며 영화가 끝난다. 


트랜스포머와 성장 영화라니. 분명 색다른 조합이다. 변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액션도 만족스러웠고(내 기준으론) 성장영화의 정석 플롯과 로봇들의 조합이 그리 이질감이 들지도 않았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라는 거다. 


성장을 영화 중심 주제로 가져왔으면 인물과 관계에 대한 충실한 묘사가 있었어야 했다. 범블비는 그런 디테일 없이 '성장영화'라는 플롯만 덜렁 가져와 버렸다. 


여주인공이  영화 내내 시종일관 가족들에게 틱틱 대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리고 선수까지 했었던 다이빙을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원인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결말부에서 지금껏 수리하지 못했던 차를 수리하는 데 성공하는 것에서 나타나듯 '아버지의 죽음'은 찰리를 묘사하는데 있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런만큼 어떻게 아버지가 죽었는지, 당시 찰리와 가족들은 얼마나 슬퍼했었고, 그런 슬픔 속에 어머니와 동생은 어느새 왠 아저씨랑 놀아나는 모습을 보며 홀로 아버지의 부재에 남겨진 찰리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대사로 넘어갈 뿐이고(심지어 난 영화 볼 때 모르고 지나쳤었다. 화장실도 안 갔다왔는데!), 이입에 중요한 과거와 현재의 대비는 나오지도 않는다. 과거랍시고 나오는 것은 '아빠와 찰리의 관계' 뿐이며 당시의 '가족'이 어땠는지는 나오지도 않았다. 즉, 영화는 현재의 가족관계만 보여주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찰리는 화기애애한 가족 관계를 망치는 성격 더럽게 예민한 사춘기 여자애로만 느껴졌다.


또한, 종반부 무너진 댐에서 하는 찰리의 다이빙은 완전한 성장을 상징한다. 문제는 다이빙의 계기인 범블비가 다이빙 트라우마의 이유인 아버지의 죽음의 극복에 분명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범블비가 다이빙 대회 테이프를 틀거나 아버지가 좋아하던 노래를 트는 등의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찰리가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역할을 한 것이 없다. 사실상 친구 구하려고 별짓거리  다 하다보니 모르는 새 아버지의 죽음을 극복해버린 것이다.


후반부 추격씬에서 가족의 조력으로 현재 가족간의 불화를 해결했다고도 볼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새 아버지와의 대화에 좀 더 비중을 넣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로봇액션과 성장영화 두 가지 토끼를 잡으려 했던 범블비는 애매한 영화가 돼 버렸다. 로봇액션을 원한 사람에겐 간만 보는 수준으로만 액션이 나왔을 '뿐이고, 성장영화라고 하기엔 구멍난 구석이 너무 많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평점을 내리자면 5점 만점에 3점은 주고 싶다. 되다만 성장이라곤 해도 거슬리진 않을 정도로 정석적인 내용이었고, 심플하게 바뀐 로봇들 디자인과 반만 자동차로 변신하는 모습이나 차체가 좁아지는 응용 변신 장면, 험비 버전 범블비 등등 비주얼적인 면에서 내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영화 출시 전까지만 해도, 아니 영화 출시 후에도 이 영화가 스핀오프인지 프리퀄인지, 아니면 시리즈 리부트의 시작점인지 말이 많았더랜다. 어쨌거나 결국엔 리부트로 확정이 난 모양이다.

리부트의 첫 출항은 평가와 흥행 모두에서 순풍에 올랐다.  다만 새 시리즈가 계속 순항할 지에 대해선 아직 의문이다. 단연 후속으로 예정돼 있던 옵티머스 프라임 솔로영화가 취소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리즈의 첫 편은 트랜스포머의 세계관은 맛보기만 보여준 채 한 소녀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결말에서 소녀와 로봇은 헤어졌고, 앞으로는 본격적인 로봇들의 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게 된다면 이후의 영화들은 분명 '범블비'와는 확연히 다른 색을 띠게 될 것이다.

만약 사이버트론과 디셉티콘의 전쟁으로 간다면 구 시리즈와 분명한 차별점을 가질 수 있을지가 문제고,

 '범블비'처럼 트랜스포머와 다른 컨셉을 합치는 형식으로 간다면 그에 걸맞는 작품성을 가질 수 있을지가 문제다. 아무리 컨셉이 독특하다 해도 작품성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조커'에서 아서 플렉이 브루스 웨인한테 '너네 엄마 마사' 하는 수준이 되버릴테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철지난 영화의 후속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조금은 기대가 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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