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온 백수
최근 약 6달 간 다니던 광고 대외활동이 끝났다.
주요 프로젝트가 광고주들에게서 과제를 받고 광고 기획을 하는 것이다 보니 매일이 고달픈 나날이었다.
전혀 관심도 없던 자동차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했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브랜드를 위한 광고를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실제 광고주 앞에서 경쟁 PT를 하다보니 밤 새는 건 예삿일이고 한 번은 30시간동안 자지도 못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기똥찬 아이디어가 안 나와 안 피우던 담배를 피우기까지 하던 활동이었다.
그런 일이었던만큼 끝나는 날 분명 후련해야 할텐데, 수료증을 받으며 느낀 것은 막연한 공포였다.
지금껏 내 생활의 한 축을 이루던 생활이 하나 사라진다는 것.
이제 다시 아무것도 없는 백수 생활로 돌아간다는 것.
그런 공포.
이런 공포를 나는 이전에도 느낀 적이 있다.
바로 군대를 전역할 때의 기분. 기분 좋기는 커녕 막막하고 찝찝하기만 하던 그때의 기억.
딱 그 때의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의 원인은 내심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이룬 것이 없던 것에 대한 변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던 나'라는 변명거리는 없어지고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남은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무얼 해놓을 걸, 차라리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후회가 드는 것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옛날 누군가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무언가에 속하지 않은 나는 내 삶을 온전히 내 책임으로 맡아 행동하고 살아야 한다. 자기주도적이란 말과 정극단에 있는 나에겐 이 책임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눈을 돌리기 위해 공부할 것을 찾고, 참가할 활동을 찾아왔다.
사람들이 내게 요즘 뭐하냐고 물을 때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라는 변명거리를 댈 수 있도록.
'그때는 이걸 하느라', '저때는 저걸 하느라'를
'그때는 이걸 이뤘지', '저때는 저걸 이뤘지'
라고 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일까, 정말 행동에 알맹이가 없었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알 수 있다. 이런 변명거리라도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
공허한 자유 앞에 맨몸의 단독자로 서기엔 나는 겁쟁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명거리를 찾을 것이다. 앞으로도 분명히.
이 변명들이 쌓이고 쌓여 성장으로 이어질지,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이어질지 아는 것은
훗날의 나에게로 미뤄두련다.
지금의 나는 당장의 상황에 가장 필요한 변명을 찾고 있을 뿐이다. 오픽이란 이름의 변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