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오는 아이들과 유학가는 아이들
배영. 내게 참 난제인 영법이다.
도통 늘지를 않는다.
수영을 배운지, 대략 3개월이 되어가는데. 배영에서 멈춰버렸다.
소그룹 강습이다 보니, 강사가 나름 영법을 잘 가르쳐 주지만, 누워서 가라앉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몸은 경직되고 발차기는 되질 않는다.
헤엄쳐 나가질 못하니까 뒤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여간 민폐가 아니다.
참 갑갑하다. 그래서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배영을 스킵하고 바로 평영으로 가든지 아니면 잠시 쉴까 생각 중인 상황.
이 수영장의 장점은 수영이 끝나고 사우나를 이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식 사우나.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땀을 낼 만큼 강도 높은 운동을 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게다가 땀구멍이 막혔는지, 왠만큼 운동의 강도로는 땀방울을 구경할 수도 없다.
나 같은 사람이 기분 좋게 땀으로 노폐물을 뺄 수 있는 방법은 건식 사우나가 최고다. 뜨거운 열감을 견딜 수만 있다면.
이 센터를 3개월 남짓 다니고는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식 사우나 안으로 입장했던 시간은 최근 2주 정도.
워낙에 활동성, 친화력이 전무하기도 한데다가 방패복 하나 걸치지 않고 북적이는 여탕과 사우나 속으로 인입하는 데에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 일테다.
나는 환경에 대한 적응도가 아주 느린 편이다.
일주에 2~3회 같은 시간대에 수영을 가는데, 수영이 끝나고 건식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면, 내 또래 혹은 나보다 나이 많은 그 무리의 ‘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동네에 오랜 기간 수영과 헬스를 다니다 보니, 무리가 지어졌을 테다.
매일 이 곳으로 출근하는 탓에 감히 전우애를 함께 나눈 동료라고 자칭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저기서 인사 소리가 내 귀를 한가득 메운다.
‘언니~ 언니~~’
나만 홀로 이방인이 되는 찰나이기도 하다.
두어평 남짓 작은 공간.
숨이 콱콱 막힐 것 같은 뜨거운 열감.
그 좁디 좁은 공간 안에서 소그룹으로 모여진 무리는 뜨겁고 힘든 시간들을 ‘수다’라는 방편으로 대신하게 된다.
나는 그 어느 한구석 의자에 의지한 채, 뻘쭘하게 기대어 모래시계가 두어번 왔다갔다 할 때까지 뜨거운 열기를 참아내면, 오늘의 독소 청소는 끝이 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본의 아니게 그녀들의 이야기가 내 귀안으로 쏙쏙 들어온다.
물론, 그 공간 안에 해당 인물들은 계속 바뀌어가지만, 주제는 동일하다.
학원과 아이들 이야기.
나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같은 학원 동일한 선생님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다른 얘기를 듣다보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도 알게 되고, 생각치 못했던 공부 방법도 듣게 되니, 모래시계 왔다갔다 한계치는 무시하게 된다.
“언니! 그 반도 애들 전학 많이 오나? 우리 반은 2학기 들어서 벌써 5명이나 왔어. 가뜩이나 학급에 애들수도 많은데.”
“왜 안그렇겠어. 이제부터 시작이지. 6학년 돼 봐라. 더 많이 들어올껄?”
“나도 말로만 들었지. 고학년 때 이리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애들이 많을 줄은 몰랐네. 어쨌든, 정신없게 됐어.”
“유학도 많이들 나가지 않니? 여기서 한국 교육으론 안되겠다 싶은 애들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나가는게 맞는 거니까. 들어오고 나가고 그러는 학년일거다.”
“안그래도 우리애 친구도 지금 SSAT준비하더라. 미국명문사립은 지금 나이에도 제출하라고 한데.”
최근 나의 둘째아이 반에도 3명 정도가 전학을 온 모양이다.
“엄마! 2학기 들어서 벌써 3명이나 전학을 왔는데. 걔네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글쎄.. 잘생겼다?”
“에잇. 모두 공부를 잘하는 것 같더라.”
학급 발표시간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느라 여념이 없다고 했다.
역사 시간에도 선생님의 질문에 서로 앞다퉈 답을 말하고, 영어 시간에는 유창한 발음으로 교과서를 읽는다고 한다.
진정, 타지역에서 우수한 아이들이 이제 대치에서 제대로 붙어보고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잘하는 애들이 차고 넘치는데, 타지에서도 몰려온다 생각하니 갑자기 경각심이 내 등을 쓸어내리는 듯 했다.
또 다시 비교 아닌 비교로 내 아이의 설 곳을 재는 마음에 조급해졌다.
최근 우리집 막둥이는 영어학원에 들어가 첫수업을 마치고 왔다.
가져온 교재와 과제들을 일일이 체크하는 와중에, 지난 6개월 집에서 다졌던 학습 시간에 대한 반성과 깨우침, 그리고 격려의 의식이 행해지기도 했다.
그간 최선을 다해 입학레벨테스트를 본 결과, 아이는 본인이 원하던 학원의 가장 낮은반 레벨과 그 다음으로 우리가 고려했던 차선책 학원의 중간 반 레벨이 나왔고, 아이와 끝장토론 끝에 차선책 학원을 선택했다. 수업도 들어보고, 과제도 해 보면서 아이는 어제 저녁 나에게 살며시 말했다.
“엄마! 처음이라 약간 어려운 감이 있긴 하지만, 해볼만 한 것 같아. 이 단계를 극복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거란 확신이 들어.”
노력의 결과를 떠나, 아이가 스스로 학습에 대해 말하며 의지를 다진다는 것이 내게 큰 뭉클함으로 다가왔다. 여타 지역에서 아무리 우수한 아이들이 몰려오더라도 내 아이가 이렇게 조금씩 성장할 수만 있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아이에게 무한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맘에 울컥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입시에 제대로 붙어 보겠다는 희망으로 들어오는 전학생이나 한국 입시 경쟁에 절망을 보며 짐을 싸는 아이들.
두가지 선택길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첫째를 해외 입시로 보내본 경험이 있었던 바로 비추어 볼때, 국제학교나 조기유학이 그리 간단히 생각하고 시작할 일은 아니다.
‘대학만 들어가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공부시키는 부모가 아니라면, 아이 인생 전체를 살피고 멀리 보는 게 맞다고 본다. 유학으로 해외 대학입학, 그리고 영주권 문제와 취업 등 제대로 알아보고 확인해 봐야 한다. 단지 한국입시에서 도피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고, 아이가 유학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들의 부모들은 적극 추진한다. 나 역시 이런 큰 그림으로 시작되는 유학이라면 적극 찬성한다.
주변의 대부분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향후 영미권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고, 여러 루트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이미 구비한 친구들이다.
나이가 이른 조기유학을 보내는 아이들은 대부분 외국인학교 조건인 3년을 채우고 들어와 한국에서 국제학교 또는 외국인 학교를 보내려고 하는 계획들도 많이 있다.
사실 SAT(미국수학능력평가)나 그밖에 AP, IB과정의 학원들, 뿐만아니라 ESSAY를 준비하는 것 조차도 한국 교육시스템, 다시말해 압구정과 대치동의 학원 시스템은 전세계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미국,중국 아이들도 기나긴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이 곳에 들어와 SAT학원을 다닌다는 말이 있겠는가.
그렇게 준비해서 해외 대학을 목표로 하여 글로벌인재로 성장하려는 구체적인 그림이 있다면,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경제적 여건과 자격 요건이 구비되어 있다면 시도해 볼 만한 입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고 도피하는 심정으로 섣불리 해외 입시를 치루려고 발을 들인다면, 비용은 비용대로 들어 부모의 등골은 휘고, 아이는 아이대로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입학 제도에 많이 고생할 확률이 크다.
이 곳에 서서히 시원한 바람으로 노크 하고 있는 가을의 초입.
제대로 한국 입시를 붙어보고자 전입되는 아이들과 해외 유학으로 전출되어 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꼬마도 새로운 영어 학원에 진입하여 또 다시 한단계 위로 치닫기 위한 도전을 시도하는 계절로 각인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