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이야기 십리길
괴산의 산막이옛길을 걷기 위해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2시간여의 운전 끝에 산막이옛길 주차장에 도착할 무렵 빗방울이 들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반갑지 않은 비이지만 요즘 가뭄을 생각하면 반가워해야 할 비입니다.
수리시설이 좋지 않던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거의 국가적 재앙에 가까웠지만 요즘은 수리시설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게 사실이지요.
그래서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임금은 그것도 자신의 부덕이라고 해서 자책하고 기우제를 지냈다지요.
그런데 오늘의 위정자는 영화 놀이하고 빵 투어 하고...
태평성대를 스스로 누리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아무튼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연속 3년 가뭄이 들어서 논농사를 포기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논농사 포기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대부분의 끼니는 배급받은 밀가루 죽이나 메마른 땅에서 수확한 메밀죽등으로 때웠으니까요.
괴산의 산막이옛길은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의 십리길을 말합니다.
괴산호를 끼고 걷는 옛길과 3개의 산봉우리를 잇는 등산로로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산막이옛길이 생겨나게 한 괴산호는 1957년 우리나라 자력으로 건설한 최초의 댐 이라이지요.
수력발전을 겸한 다목적 댐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발전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가 지역을 지나 본격적인 옛길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명소는 고인돌 쉼터입니다.
그러나 실제 고인돌은 아닌 듯합니다.
아무튼 참나무와 밤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쉼터로는 최적입니다.
그래서 옛날 사오랑마을 서당의 야외 학습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하지요.
그 고인돌 쉼터 옆에는 튼실한 연리지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가지가 아니라 몸통이 붙었기 때문에 연리목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얼마큼의 세월 동안 서로 부둥켜안고 있어야 한 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서로를 품어주며 살아가는 연리목의 자태가 튼실하고 아름답습니다.
고인돌 쉼터를 지나면 바로 소나무동산으로 이어집니다.
산막이옛길의 실질적인 시작점인 셈이지요.
그동안 몇 방울씩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습니다.
흐리기만 한 날씨 덕분에 무더운 여름날의 트레킹을 상쾌하게 시작합니다.
우리의 재래종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이 소나무 숲길은 등잔봉 정상까지 이어집니다.
그 운치 있는 소나무 숲길을 잠깐 오르다 보면 첫 번째 괴산호 조망점이 나옵니다.
첫 번째 전망데크에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괴산호의 연한 청자색의 물빛이 예술입니다.
그 전망대를 지나면 '출렁다리' 길과 정사목'길로 다시 나뉩니다.
그러나 그 길들은 어느 쪽으로 가든지 다시 합류합니다.
그러니까 스릴을 즐길 것인가?
그냥 평범한 길을 걸을 것인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일단 정사목 길로 갑니다.
정사목입니다.
이름처럼 좀 거시기 하긴 합니다.
'음양수'로 불리는 이런 소나무는 천년에 한 번, 혹은 10억 그루에 하나 정도 나올 수 있는 확률이라고 하지요.
이 정사목을 보면서 남녀가 함께 기원을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정사목을 지나 언덕을 내려서면 나오는 노루샘입니다.
옛날 노루 등 야생동물들이 목을 축이던 옹달샘이었다지요.
동화 속 옹달샘을 연상케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노루샘 아래에는 '연화담'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벼농사를 지었다는데 지금은 연못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한 땅 떼기에 벼를 심어야 했던 우리 선조들의 고달팠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물 걱정은 없었을 듯합니다.
다시 그 연화담 아래에 있는 천혜의 조망점입니다.
남매바위 위에 세워진 忘世樓(망세루)라 불리는 전망대입니다.
忘世樓(망세루).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시름이 잊히고 자연과 함께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지요.
평일이라서 한적해서 더욱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세상을 잊는 셀카 놀이를 맘껏 즐깁니다.
망세루에서는 앞쪽 군자봉과 옥녀 봉등 줄지어 늘어선 산 그림도 멋있지만 괴산호의 물빛도 일품입니다.
오늘 괴산호의 물빛은 청자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은은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망세루를 돌아 나오면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산길과 산막이옛길로 나뉘는 지점이지요.
우리는 산길로 올라서 옛길로 돌아오기로 하고 산길로 오릅니다.
산길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르지는 않는 듯 잡초 사이로 가늘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가늘게 이어지던 잡초 길이 다시 소나무 숲길로 바뀝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자연스러운 곡선미를 뽐내는 소나무 숲길을 오르는 기분.
숨은 턱까지 차지만 기분은 더없이 좋습니다.
가파른 오르막은 계속되고 오르는 중간 가끔씩 나타나는 조망점에서는 아름다운 괴산호 조망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지요.
오늘 산행 목적지인 등잔봉은 높이가 450m로 비교적 낮은 산입니다.
그런데도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어서 초반 난이도가 아주 높은 산입니다.
7부 능선쯤에 올라서면 나오는 삼거리입니다.
힘들고 험한 길과 편하고 완만한 길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편하고 완만한 길을 택합니다.
편한 길을 택하는 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니까요.
우리에게 선택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도 벌써 세 번째 큰 선택을 합니다.
어떤 철학자는 인생은 B와 D 사이 C라고 했지요.
여기서 B는 Birth, D는 death, C는 choice의 처사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저 아래 괴산댐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너머 옹기종기 흩어져 있는 산골마을 풍경이 그림 같습니다.
산행 시작 40여 분 만에 등잔봉 정상에 섰습니다.
등잔봉 정상은 흙산인데도 워낙 뾰족하게 솟아 있어서 조망이 좋습니다.
특히 앞쪽 괴산호 방향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은 일품입니다.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동강 느낌의 괴산호 건너편으로는 군자봉과 옥녀봉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등잔봉 (450m)은 옛날 한양에 과거시험을 보러 간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서 등잔불을 켜놓고 치성을 드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매일 쓰던 '등잔'이란 말이 어느새 나에게도 생소해졌습니다.
그나마 요즘 아이들은 등잔이라는 단어를 알기나 할까요?
오른쪽에 가야 할 목적지 산막이마을이 보입니다.
저 마을을 왜 산막이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설명이 필요 없는 풍경입니다.
등잔봉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가던 길을 다시 갑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능선길이라서 산책하듯 사뿐사뿐 걸으면 됩니다.
아니 걷기만 좋은 게 아닙니다.
능선이 토성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양쪽 조망을 보면서 걸을 수 있어서 더욱 좋은 능선입니다.
그렇게 괴산호와 옥녀봉을 조망하며 쉬엄쉬엄 걷다 보면 어느새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도착합니다.
한반도 지형 왼쪽에 괴산댐이 보이고 가운데 과수원, 그리고 오른쪽으로 산막이마을이 보입니다.
한반도 지형이라고는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조금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한반도 지형을 앞에 두고 점심을 먹습니다.
그런데 다시 비가 몰려 오렸는지 바람이 거세지고 그 바람에 땀이 식으면서 추위가 엄습해 옵니다.
그래서 느긋하게 먹어야 할 점심을 서둘러 먹고 일어섭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그래도 산행하기에는 불편함이 없을 만큼의 비입니다.
그래서 비옷을 꺼내 입고 다시 계속되는 능선길을 걷습니다.
산불 고사목입니다.
언젠가 산불이 났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꽤 오래되었는지 새로 심은 소나무가 제법 자랐습니다.
이윽고 괴산호 전망대에 도착합니다.
여기서도 한반도 지형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괴산호 전망대에서는 조망만 멋진 게 아닙니다.
다양한 모양의 소나무도 일품입니다.
굵어진 빗방울 때문에 천장봉까지 오르고 하산하려던 원래 계획을 변경해서 이곳 괴산호 전망대에서 산막이 마을로 하산합니다.
등산로는 전망대 바로 옆으로 가파르게 나 있습니다.
하산하는 중에 만난 나리꽃입니다.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서 산막이 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는 극심한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계단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하산 시작 30여 분 만에 산막이옛길과 만납니다.
이제 잘 가꾸어진 옛길을 따라 걷습니다.
조금 특이한 모양의 물레방아입니다.
방아머리가 소머리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옛길은 거의 신작로처럼 조성해 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화나무 등이 나무 터널을 이루고 있어서 여름에 걷기에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드디어 산막이 마을로 들어섭니다.
여느 마을처럼 마을 입구에는 거대한 당산나무가 지키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고사목이 되어 있지만 조선시대부터 200여 년간 이곳을 지켜온 당산나무라고 합니다.
그 200여 년 동안 수많은 마을의 애환을 지켜보았을 당산나무는 죽어서도 지금은 모두 떠나고 없는 마을을 주인 없는 집을 지키듯 쓸쓸히 지키고 있습니다.
거의 빈 땅으로 남아있는 산막이 마을입니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다고 해서 산막이 마을이라고 했다지요.
지금은 마을의 상징인 고사목이 된 당산나무가 옛 마을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을 뿐 실제 주민이 살지는 않는 듯합니다.
당산나무 못지않은 밤나무 고목도 빈 마을을 말없이 지키고 있습니다.
나무는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는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듯합니다.
그나마 몇 집 남아있는 집들은 모두 식당과 카페입니다.
하긴 그분들이야말로 어쩌면 이 마을의 주인이겠지요.
아무튼 마을인지 식당거리인지 구분할 수 없는 동네길이지만 그 길을 걷는 기분은 도회지에서는 맛보지 못할
묘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마을길을 지나고 역시 옛 마을 터였을 잡초만 무성한 공터를 지납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엔 꽤 컸던 마을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 공터를 지나자 웬 산골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기와집이 나옵니다.
수월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수월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노수신이 을사사화 때 유배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노수신은 이후 선조 때는 다시 관직에 올라 영의정까지 했다지요.
뭐 본직에 있을 때보다는 어림도 없겠지만 고관대작들은 귀양 와서도 권세를 누렸던 듯합니다.
이 산골 깊숙한 곳에 이만한 집이면 대궐이나 다름없었을 테니까요.
귀양이 아니라 휴양이 아니었을까요?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만 불쌍한 세 상인 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수월정까지가 산막이옛길의 종점입니다.
수월정에서는 연하협 구름다리로 연결되는 충청도 양반길1코스와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내친김에 연하협 구름다리까지 걷기로 합니다.
그 충청도 양반길 1코스와 산막이옛길 돌아가는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루겠습니다.
*트레킹코스:주차장 ㅡ망세루 ㅡ등잔봉 ㅡ한반도지형 전망대 ㅡ괴산호 전망대 ㅡ진달래동산 ㅡ산막이마을(3시간,점심시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