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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Sep 26. 2022

유명산의 유명한 숲과 계곡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산행기 제91화 유명산

전국에는 유명한 산들이 많다.

그 산들을 우리는 말 그대로 유명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실제 산 이름이 '유명산'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유명산에 오르기 위해 코스모스 꽃이 하늘하늘 피어있는 상쾌한 가을 길을 달려 아침 일찍 유명산 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침 8시 10분.

그러나 휴양림 주차장은 9시에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외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걸어서 휴양림으로 들어간다.



휴양림 입구에 들어서자 유명산의 유명 계곡이 모습을 드러내고 도로변의 성미 급한 벚나무는 벌써 단풍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자연휴양림이 조성된 구간을 지나간다.

유명산 휴양림은 우리나라 최초의 휴양림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 명성에 걸맞게 규모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산행이 목적인 내게는 휴양림의 압도적인 규모와 편의 시설들이 모두 그림의 떡이다.

그냥 지나쳐 등산로 찾기에 바쁘다.



규모가 크다 보니 등산로 초입 찾기도 쉽지 않다.

휴양림 내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방댐이 나오고서야 비로소 등산로가 나온다.

사방댐 바로 위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계곡길, 이어서 나오는 두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능선길이다.



나는 능선길로 올라서 계곡길로 내려올 요량으로 능선길을 택했다.

유명산 산행의 보편적인 정석 코스를 택한 셈이다.



등산로는 초입부터 제법 가팔랐다.

그리고 본격적인 산길에 들어서면 쭉쭉 뻗은 잣나무 숲이 잡목 숲으로 바뀌어 간다.



다시 잡목 숲을 20분쯤 오르면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길은 외길인데 산악회 리본은 왜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까?

물론 광고 효과도 있겠지만 티끌도 모이면 쓰레기가 되고 환경오염이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능선길에 올라서자 숲은 이제 완전히 잡목 숲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나무가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잡목 숲이다.



600m 지점.

그리 긴 거리를 오른 건 아니지만 쉼 없이 오르기만 하기 때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래서 쉬어가려고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왁자지껄 산악회 회원들이 들이닥친다.

조용한 휴식은 물론 호젓한 산행도 이제 끝난 듯하다.



우리나라 산악회의 특징.

왁자지껄, 음담패설, 음주, 먹방...

높은 산은 비교적 마니아층이 오르기 때문에 덜 그렇지만 특히 비교적 만만한 산에서는 더 그렇다.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조금 더 오르자 숲 안개가 자욱하다.

멀리 산 밖에서 보면 운무가 산속에서는 안개처럼 보인 것이다.



산 안개가 가득한 잡목 숲 속에 금강송 한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말 그대로 독야홍청(獨也紅靑)이다.

나무의 색이라고 믿기지 않는 붉은색이다.



9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는데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거기에다 습도까지 높아서 땀이 여름 산행보다 더 났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땀수건이 없다.

손수건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오랜만에 홀로 산행 준비를 하다 보니 빠트린 게 많다.

그중에서도 스틱과 손수건 없이 산행한다는 건 정말 생각도 못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더라고 손수건 없는 오늘따라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아무튼 산에서는 하찮은 것 하나도 준비하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렇게 습도가 높아서 땀 때문에 낭패를 당하긴 했지만 은은한 산안개가 무미건조하기 쉬운 9월의 산 풍경을 운치 있게 하고 있었다.



이제 뿌리의 길을 지나간다.

등산로에 드러난 나무뿌리가 마치 혈관이 얽히듯 얽혀 있다.

땅속에 있어야 할 뿌리가 모두 드러나 있다.

저 나무들은 과연 얼마나 더 버텨낼까?




사실 나무들이 이렇게 뿌리를 앙상하게 드러내게 된 이유도 인간에게 있다.

등산로가 아니었더라면 낙엽이 덮여 있어서 흙이 파여 나가지 않도록 해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러지고 상처가 나도 꿋꿋이 살아가는 나무들에게 사람들은 무엇일까?

훼방꾼.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닐 것이다.

나무는 상처가 나고 부러지면 외부로부터 세균을 막는 자기 방어벽을 스스로 만든다.

그 자기 치유력을 발휘해서 피부 생장을 통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드러난 뿌리를 스스로 어떻게 할까?



이제 그렇게 300M쯤 이어지던 뿌리의 길이 끝나고 바위 길이 시작된다.



나무에게는 미안하지만 바위 길보다는 뿌리의 길이 백번 낫다.

숲 속에 고사목 한 그루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동물 같다.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고통이지만 바위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生도 고통이다.

문득 원효대사가 했다는 '생사가 다 고통이다'는 말이 생각났다.

"태어나지 말라.

죽는 것이 고통이니라.

또한 죽지도 말라.

태어나는 것이 고통이니라."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낸 나무는 가지도 예사롭지 않다.

굵은 마디의 나무를 보면서 문득 힘들게 살아낸 어느 농부의 주름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무도 금수저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평탄하게 산 나무가 있는가 하면 민초들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나무도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잠깐의 바위 길이 끝나고 길은 다시 흙길로 이어졌다.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정상 아래에 도착했다.

유명산도 정상을 향한 마지막은 역시 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이제 이 계단만 오르면 정상이다.



2시간 10분 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안내판에는 1시간 30분쯤이면 오를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실상은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벌개미취가 반갑게 맞아주는 정상은 유명산이라는 이름과 달리 평범했다.

862m라는 제법 높은 산인데도 정상에서의 볼거리는 거의 없다.

육산의 전형적인 정상 모습이다.

유일한 볼거리는 용문산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 정도다.



건너편에 용문산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용문산은 내가 두 번쯤 올랐던 산이기도 하다.

아무튼 산정에서 내가 올랐던 또 다른 산을 보면 언제나 감회가 새롭고 스스로 대단하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파노라마로 담아 본 용문산 능선이다.

유명산과 용문산을 연계 산행한다는 산객들도 제법 있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하다.

그 용문산 능선 끝부분에 한국의 마터호른이라는 별명이 붙은 백운봉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리고 남한강과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방향이다.

 활공장에선 패러글라이더들이 한 마리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다.

공포, 자유, 스릴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다.

이보다 더 짜릿한 스포츠가 있을까?



유명산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그런데 산이 유명해서 유명산일까?

아니면 이름이 있는 산이란 뜻의 유명산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유명산은 원래 이름이 없는 산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이 산을 오른 산악회 회원 중에서 '진유명'이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붙여 '유명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좀 싱겁긴 하다.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산은 계획했던 대로 유명계곡 방향으로 한다.



하산 시작과 동시에 가을의 운치를 더해주는 억새길과 꽃길이 이어지더니 금세 길이 험해졌다.



그런데 하산하던 중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지금도 이런 산객들이 있다니...

소나무 숲 사이로 고기 굽는 몰지각한 산행객들이 보였다.



계곡길의 하산 초반은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그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소나무도 고단한 삶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유명산은 나무들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많은 수종의 나무 중에 하나인 물푸레나무다.

물을 푸르게 한다는 뜻을 가진 나무다.

껍질을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껍질에서 나오는 수액은 안약으로도 쓰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쓰임새는 살벌한 곳에 많이 쓰였던 나무다.

서당의 회초리는 물론 옛날 죄인을 다루던 곤장으로도 쓰였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다양한 나무들과 함께하는 사이 길은 이제 너덜길로 바뀌었다.

말 그대로 너덜너덜 지겨운 길의 시작이다.



그렇지만 너덜길 옆으로는 아름다운 계곡이 시작되고 있었다.

유명한 유명계곡이 시작된 것이다.



졸졸거리는 듣기 좋은 물소리와 함께 걷다 보니 계곡과 계곡이 만나는 합수점이 나왔다.

용문산에서 발원한 계곡물과 유명산에서 발원한 물이 만나는 합수점이다.

그래서 수량은 더욱 많아지고 길은 비교적 완만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하산해야 할 거리는 2.7km에 이른다.

그것도 극심한 너덜길이다.

너덜길은 체력을 두배로 소모시킨다.

아차 하면 발목을 삘 수도 있어서 신경을 바짝 써야 하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몸의 중심을 잡아야 해서 오르막길 못지않게 힘들다.

뿐만 아니라 발 디딜 바닥을 봐야 해서 고개도 아프다.



그렇지만 계곡엔 아름다운 소(沼)가 연신 지나가고 있다.

소는 우리말로 늪이나 물웅덩이를 말한다.



그중에는 이름이 있는 소도 있다.

마당처럼 넓어서일까?

마당沼라는 소도 있다.



계곡 옆은 아찔한 암벽이다.

올라갈 때 대부분 육산이었던 능선길과는 완전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지형이다.

같은 산인데도 달라도 너무 다른 지형이다.



암벽 위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튼실하게 살아낸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꿋꿋이 살아내는 것.

그 모습이 사람이나 식물이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했다.



무슨 버섯일까?

화려하면 독버섯이라는데.

누군가 채취해가지 않은 것을 보면 식용은 아닐 것이라 짐작은 간다

아무튼 먹음직스러운 아름다운 색감의 버섯이다.



이제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를 지나간다.

또 다른 유래는 주변의 바위가 용이 승천하는 듯하다는 뜻에서 그리 불렸다고 하는데 후자가 더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박쥐소를 지나면서 지겨우리만큼 지루했던 너덜길이 끝이 났다.

여기서부터는 주차장까지 300 여 m.

그래서 사실상 산행이 끝나는 지점이다.



무려 5시간 30분의 산행이 끝났다.

3시간 30분으로 안내되어 있는 코스를 두 시간이나 더 걸려서 끝낸 셈이다.

물론 다른 산들에 비해서 긴 시간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힘들었던 산행이었다.

첫째 이유는 땀수건과 스틱이 없었고, 두 번째 이유는 워낙 짧은 시간으로 안내되어 있어서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심마저 준비하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오랜만에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하나를 완등 했다.



*산행코스: 유명산 자연휴양림 ㅡ능선길 ㅡ정상(2km)ㅡ계곡길 ㅡ마당소 ㅡ용소 ㅡ박쥐소 ㅡ휴양림(4.3km)

총 6.3km 사진 촬영 포함 5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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