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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나 Nov 21. 2022

돌덩이는 잘못이 없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돌덩이에 대한 고찰

※ 영화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놈의 돌’     

모든 사건은 기우 친구 민혁이 산수경석이라 부르는

그놈의 돌덩이를 갖다 주면서 일파만파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돌이 가져온 나비효과.     


반지하에서 생존의 끝에 몰린 절망적인 상황에서

돌덩이 하나가 집에 들어온 이후로

식구 전원이 어쨌든 취업을 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사실 돌 덕분이었다기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식구들의 절박함이 더 큰 동력이었겠죠.     


돌은 희망, 행운, 기적의 상징인 것으로 비쳐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기우의 돌에 대한 사랑은 점점 맹목적이 되어 갑니다.

돌은 처음에 행운의 상징이었으나 기우는 점점 그 돌 자체에 집착합니다.     

기우네 집 창문 앞에 상습적으로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을 보고

기우가 처음 들고 나가려는 것도 그 돌입니다.

‘이 행운의 돌과 함께면 난 천하무적이야’

‘이 돌로 사람을 내리쳐도 이 돌만은 날 지켜줄거야.’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기택의 만류로 돌을 다시 내려놓는 장면을 보고

아직은 기우가 많이 미치지는 않은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홍수가 난 반지하 집에 들어간 장면에서 

돌이 기우 앞으로 붕 떠오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돌은 물에 뜨지 않는데도, 

그 장면에서는 돌이 스윽 하고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기우는 돌이 자꾸 자신에게 들러 붙는다고 말했지만,

그 때부터 기우는 현실과 상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일종의 정신병적 상태가 된 것입니다.

돌이 떠오르는 것처럼 묘사한 장면은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고 혼란되어 있는 

기우의 왜곡된 지각을 잘 보여줍니다.     


돌덩이는 무한한 희망과 가능성을 상징하는 듯 했지만 

기우가 돌에 맹목적으로 집착할수록 

점점 기우를 무겁게 짓누르는 존재로 작동됩니다.     

체육관에서 기우가 기택과 누워서 대화를 나누고

돌을 꼭 끌어안고 웃는 장면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 같습니다.

희망을 계속 끌어안고 있지만 

그 희망이 오히려 무겁게 기우의 몸을 짓누릅니다.     


박사장네 집 지하벙커에 내려갈 때도 

기우는 그 돌을 들고 갑니다.

문광과 근세를 없애버리기만 하면,

지금 누리고 있고 앞으로 꿈꾸는 희망을 계속 꿀 수 있습니다.

그 둘은 애초에 내 계획에 없던 존재고,

내 꿈을 가로막는 골칫거리나 장애물로만 보이기에 

없애 버리려는 것이죠.     

사실 그들을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무겁고 다루기 힘든 돌보다는 

칼, 도끼 등 좀 더 치명적인 도구들을 갖고 가는 게 

그 목적을 성공시킬 확률이 높습니다.

기우는 아마도 

‘이 행운의 돌과 함께 해야만 내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어’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기우는 이 돌에 맞아 죽을 뻔합니다.

희망이 점점 부풀어져 허황된 망상이 되고

결국엔 스스로를 해치는 큰 화가 되어 돌아온 것이죠. 


영화가 끝나가는 시점 ‘근본적인 계획이 생겼다’고 하며

기우가 그 돌을 시냇물에 가져다 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우의 정신병적 상태가 점차 정상으로 돌아온 듯 보였습니다.

근본적 계획이란 돈을 모아서 그 집을 사는 것인데

사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죠.

정신병적인 상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현실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정말 기택과 다시 만나 가족으로 지낼 수 있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방법이 그것 뿐이었을까요?

기우가 처한 상황은 큰 딜레마로 보이고

어떤 점에서 기우의 판단은 지극히 정상적일 수도 있어 보였습니다.     


남북 이산가족도 참담한 생이별이지만,

이런 생이별이 또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지금부터 매달 100만원씩 차근차근 50억 쯤을 벌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아빠.

그리고 아빠가 보낸 편지를 인지한 직후

바로 썼지만 부칠 수 없는 답장.


슬픔을 넘어 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었습니다.     


돌이 상징하는 것을 제가 한 마디로 요약해보자면

‘신분 상승의 꿈’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크면 클수록 그것을 가진 자를 짓누르고 오히려 파괴시키는 것.     


"작금의 사회에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것은 망상이고 정신병이다.

그런 희망을 품는 것은 오히려 큰 화가 되어 돌아올테니 꿈도 꾸지 마라."

     

봉감독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데서 그친다기보다는

이런 메시지가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서글픔과 안타까움을 영화를 통해 함께 나누고 싶지 않았을까요.     


봉준호 감독은 그 서글픈 현실을 돌덩이 하나에 대입해 이야기합니다.     


봉준호의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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