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ing Holiday At Derby
더비라는 곳을 향하면서도 '더비가 어떤곳일까?' 라는 생각을 하지않았다. 그저 지평선 넘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려 정착할 곳을 찾아2800km를 달려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웬 허름한 동네에 더 허름한 쉐어하우스였다. 내가 취업하기로 한곳은 호주 전역에 있는 슈퍼 IGA라는 곳의 Bakery였다. 시급은 23.5불 한화 19천원 정도 된다. 빵집 점원의 시급치곤 나쁘지 않다. 이미 2800km를 달려오는 길에 가지고 있던돈을 모두 소진했기 때문에 잔고는 0원. 돈을 못벌면 여행은 끝이난다.
바로 다음날 부터 일을 시작했다. 빵을 자르는법, 포장하는법, 계산하는법 등 난생처음 제과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호주에 온지 2주가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호주말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호주에 왔을때, 당연 호주가 영어권 문화라는것을 알고 왔다. 미드에 미쳐 살았던 덕분에 회화엔 자신이 있었고 일을 하는데는 소통에 별 문제가 없을줄 알았다. 근데 이들의 영어는 내가 듣던 영어가 아니다. 정말 호주말이 있나 싶었을 정도로 말이 이해가 안됐다. 빠를 뿐만 아니라, 뭔가 말을 굉장히 성의 없이 막 말하기 때문에 미드와 영드에서 듣던 말들이 아니다!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애들도 호주애들과 대화가 잘안된다)
그래서 거의 일을 감으로 하기 시작했다. 계산이나 물건을 찾아주는데는 하루정도 지나니까 적응이 됐다.
3일이 되던날 사장이 왔다. 호주사람이다. 호주말에 강제 적응이 되갈시점, 사장이 이것저것 지시를 했다.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사장은 내가 대답을 하지않아 자기말을 못알아 듣는줄알았나보다. 그러더니 일과가 끝날시점 매니저에게 해고하라고 했다. 그래서 3일째 되는날 짤렸다.
사실 말을 좀 아꼈다. 나도 호주사람의 영어를 잘 이해 못했지만, 그들도 나의 액센트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의기소침했던것. 그렇게 2800km를 돌아 찾아온 직장에서 3일만에 해고가 되었고, 3일치 일한 급여 500달러를 가지고 뭘 어째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퍼스에서 이력서를 20장정도 복사해서 가져왔기에, 일단 이 촌구석에 일손이 필요해 보이는 모든곳에 이력서를 넣어봤다. 병원, 호텔, 바, 수영장, 요양원 등 10장을채 돌릴수 없는 작은마을 이었지만 분명 내가 일할 곳은 있겠지..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다. Juniper라는 요양원으로 정부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설이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시급이 좋은 직장이기에 조금 간절했다. 빠른 시간안에 면접을 볼수 있었고, 다행히 매니저가 인도사람이었다.(호주사람과의 대화보다 이민자들과의 대화가 훨씬 수훨했다.)
"요양시설에서 일해 본적있나?" -Abins-
"한국에서 군대를 요양병원에서 2년간 복무했다"
"환자가 난동을 부리면 어떻게 대처하나?" -Abins-
"포박한다(restrain)"
"절대 그러면 안된다. 간호사를 부르거나 매니저를 불러야 한다!!"
실제로 나는 군대를 서울 보훈병원에서 복무를 했고, 간호조무사와 같은 업무를 했기에 요양사 업무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다만, 일에 대한 간절함이 면접에서 조금 성급한 대답을 하게 만들었다. 연락을 준다는 말과 함께 아쉬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일을 못한다면, 떠나야한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날 Juniper에서 연락이 왔다. 와서 일을 하란다. 다행히 '경험' 이란것에 좋은 가치를 둔것 같다. (사실 12월부터 근로자들의 홀리데이 시즌이라 일손이 부족하다.)
근로계약서를 쓰는데 일자리 타입에 세가지가 있다. Casual 과 fulltime, 그리고 하나는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우리나라로 치면 Casual은 비정규직 Fulltime은 정규직이다. Casual job 은 근로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반면, 시급이 20%높고 fulltime은 정규 근로 시간이 보장(주30시간)되며 기준시급이 24.79달러이다.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여서 Casual로만 근무가 가능했다. 시급은 무려 29.8$(기준시급+20%), 오후 근무를 하게되면 15%가산되어 33$ 토요일 이나 공휴일 근무시 50% 가산되어 42$ 일요일 근무시 75%가산되어 48$ 주 35시간 이상근무시 오버타임 200% 가산되어 79$로 주말에 너무너무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직장이었고, 제발 일을 많이 시켜주길 기다려지는 근무환경.
물론 캐쥬얼 잡이라 Weekly schedule 엔 2~3일 근무만 적혀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일을 배워가기 시작했고, 일이 없는날은 집에서 죽어라 미드만 보던생활 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Derby라는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처음 살던 쉐어하우스는 방 2개 짜리 낡은 집에 한국 남자 셋이 살았다. 이동네에는 한국인이 우리 셋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일자리를 잡았던 베이커리의 매니져와 내가 오면 떠나려던 경상도 아이, 그리고 서핑보드들고 사막으로온 나.
경상도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왜 호주말을 못알아듣는지. 강한 억양의 경상도 말을 듣다 보면 한국말도 이해가 안갈때가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안정된 직장이 생기면서, 다시는 오기 힘들것 같지만, 꼭 한번 다시 가고 싶은 Derby에서의 삶이 시작됐다.